어른 눈높이에 맞춰진 '일기장 검사' 논란

[取중眞담] 국가인권위원회를 위한 변명

등록 2005.04.11 18:15수정 2005.04.12 0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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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국가인권위의 '초등학교 일기장 검사' 의견문 논란에 대한 11일자 <문화일보> 주중식 선생의 칼럼.

국가인권위의 '초등학교 일기장 검사' 의견문 논란에 대한 11일자 <문화일보> 주중식 선생의 칼럼.

오늘(11일) 오후 늦게 석간신문을 읽다가 한 칼럼에 유독 눈길이 갔다. 거창 샛별초등학교 교장인 주중식 선생님이 쓴 '일기지도 잘 하란 뜻이었는데...'라는 제목의 글이었다.

그 칼럼이 내 눈길을 사로잡은 건 두 가지 이유다. 그 글을 쓴 분이 주 선생님이란 것과 주제가 최근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초등학교 일기장 검사'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예전에 몇 년 동안 <우리교육>이라는 교육잡지 기자생활을 한 탓에 주 선생님이 어떤 분인지는 어렴풋이 알고 있다.

교대를 졸업한 그는 여러 해 동안 통영 섬마을에서 교편을 잡다가 1983년 거창 샛별초등학교에서 줄곧 어린이들과 함께 지냈다. <들꽃>이라는 학급문집을 꾸준히 냈고, 한국글쓰기연구회 회원으로 우리 말과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을 누구보다 앞장서 실천했던 선생님이다.

주 선생님이 11일자 <문화일보>에 쓴 글의 요지는, 국가인권위에서 낸 '초등학교 일기장 검사 관행 개선' 의견에 대한 오해와 이해였다. 애초 언론보도만 접했을 때는 인권위의 결정이 못마땅했는데, 찬찬히 인권위의 의견을 살펴봤더니 옳은 지적이었다는 것이다. 다음은 그 분의 칼럼 요지다.

"일기쓰기 지도 문제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가 어떤 결정을 내려 교육부에 권고하였다는 말이 참 못마땅하게 들렸습니다. 그렇더라도 국가인권위원회가 내놓은 결정문 '초등학생 일기장 검사에 대한 의견'을 찬찬히 읽어보기로 했습니다. 좀 낯설어 보이는 한자말은 우리말 큰사전에서 뜻을 찾아가며 읽고 또 읽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내놓은 결정 주문 그 어디에도 초등학교에서 일기장을 보아주는 것은 인권 침해이므로 하지 말라는 데는 없었고, 그 이유를 자세히 밝혀놓은 글에도 그런 말은 없었습니다.

판단 기준으로 들어놓은 우리나라 헌법과 교육기본법, 시민·정치 권리에 관한 국제 규약과 유엔 아동권리협약을 찾아내어 해당 조문도 낱낱이 읽어보았습니다. 하나같이 어린이를 더 소중하게 여기고 인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정신이 담겨있었습니다. 그런 잣대로 초등학교에서 지금까지 늘 해오던 일기장 검사 방식을 살펴보았다는 것입니다. 일기장 검사해서 상을 주는 식으로 평가하면 일기 쓰기를 강요하고 보이기 위해 쓰도록 조장하여 양심의 자유를 누르는 것이 되고, 이런 법 정신에 어긋나는 잘못이라는 것입니다. 옳은 지적입니다.


이번 결정은 '일기쓰기 지도 좀 제대로 해 보세요'하고 국가인권위원회가 교육부에 지도와 감독을 부탁하는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한편으로 이번 일을 겪으면서 글을 바르게 읽고 해석하는 것이 참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스레 깨달았습니다. 저도 언론 보도만 보고 듣고 이 문제를 섣불리 판단하였다면, 아마 이번 결정의 중심 생각이 무엇인지 바로 알지 못하고 국가인권위원회만 원망하면서 한동안 맥 빠진 채 있게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참 아찔합니다."


국가인권위에 던져진 억울한 돌팔매질에 동참


주 선생님의 글을 읽으면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물론 이번 일은 내 취재범위 안에서 벌어진 일은 아니다. 그러나 기자는 사회적인 이슈에 오감을 곧추 세워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국가인권위의 의견 전문을 읽지 않은 채 '편견'만으로 이번 사안을 바라봤다. 그런 탓에 이번 일을 단순히 국가인권위의 '오버'쯤으로 치부해버렸다. 국가인권위에 던져진 억울한 돌팔매질에 동참했던 셈이다.

국가인권위 의견문의 핵심은 "'강제적으로 작성된' 일기 검사와 평가는 어린이의 사생활과 양심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애초 '일기장 검사'는 매개일 뿐 어린이의 인권에 대한 문제제기였던 것이다. 어린이나 학생 등 미성년자의 인권 문제는 이전에도 체벌이나 학생회 활동 등을 둘러싸고 논쟁이 돼왔다. 그리고 더디나마 그들의 인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진전돼왔다.

또한 국가인권위는 초등학생들의 일기쓰기에 대해서는 좋은 생활습관을 만드는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교육효과라고 인정하고 있다. 다만, 일기검사를 통해 일기쓰기를 습관화할 경우 애초 목적과는 다른 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한 것이다.

많은 언론들이 이와 같은 '행간의 맥락'을 얼마나 정확히 독자들에게 전달했는지 의문이다. 국가인권위의 '일기장 검사' 의견은 충분히 논란을 불러일으킬만한 주제였다. 다만, 그 논란이 얼마나 핵심에 접근했느냐는 데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어린이들의 인권 문제를 자칫 어른들의 눈높이에서 '갑론을박'한 것은 아닌지 나 스스로 반성해본다.

다음은 지난 7일 국가인권위가 발표한 '초등학교 일기장 검사 관행 개선되어야'라는 제목의 의견 보도자료 전문이다. 미처 꼼꼼하게 읽지 못했던 분들에게 정독을 권하고 싶다.

국가인권위원회 "초등학교 일기장 검사 관행 개선되어야"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조영황)는 초등학교 일기검사 관행을 개선하고 초등학교의 일기쓰기 교육이 아동인권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개선될 수 있도록 지도.감독하라는 의견을 교육인적자원부장관에게 표명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본 건의 검토는 2004년 7월 '시상을 목적으로 한 학생들의 일기장 검사행위'에 인권침해 소지가 있는지 여부를 서울의 한 초등학교가 질의해 옴에 따라 이루어졌습니다. 현재 많은 초등학교에서는 일기작성의 습관화, 생활반성, 쓰기능력의 향상 등을 목적으로 학생에게 일기를 쓰도록 하고 일기장을 관행적으로 검사해 오고 있습니다.

국가인권위 검토결과, 초등학교에서 일기를 강제적으로 작성하게 하고 이를 검사·평가하는 것은 일기의 본래 의미와 성격에 비추어 볼 때, 아동의 사생활과 양심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크다고 판단했습니다.

아동이 △사생활의 내용이 외부에 공개될 것을 예상하여 자유로운 사적 활동 영위를 방해받거나 △교사의 검사를 염두에 두고 일기를 작성하게 됨으로써 아동의 양심형성에 교사 등이 실질적으로 관여하게 될 우려가 크며 △아동 스스로도 자신의 느낌이나 판단 등 내면의 내용이 검사.평가될 것이라는 불안을 제거하기 어려워 솔직한 서술을 사전에 억제하게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편, 소중한 삶의 기록을 남긴다는 점에서나 생활의 반성을 통해 좋은 생활습관을 형성하도록 할 교육적 측면에서 볼 때 아동기에 일기쓰기를 습관화할 필요성이 있다는 점은 인정되었습니다.

그러나 일기검사를 통해 일기쓰기를 습관화할 경우 △일기가 아동에게 사적 기록이라는 본래적 의미로서가 아닌 공개적인 숙제로 인식되도록 할 가능성이 커 오히려 일기쓰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습니다. △더구나 글짓기능력 향상이나 글씨공부 등은 일기를 통해서가 아니라 작문 등을 통한 다른 방법을 통하여 달성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일기검사의 교육적 목적은 아동의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양심의 자유 등 기본권을 제한하는 일기검사를 통해서만 성취될 수 있는 필수불가결한 것이라고 보기 어려워 방법의 적정성이나 피해의 최소성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이에 국가인권위는 초등학교에서 일기를 강제적으로 작성하게 하고 이를 검사·평가하는 것은 국제인권기준 및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아동의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양심의 자유 등 기본권을 침해할 우려가 크다고 판단하여 이를 개선하도록 의견을 표명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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