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을 서해에 집어 던질 뻔하다

중국행 배에서 만난 일본인

등록 2005.04.16 17:03수정 2005.04.16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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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갔다 와 보니 일본의 교과서 문제가 제법 시끄럽기도 해서, 중국 가는 선상에서 있었던 일을 몇 자 올립니다.

인천에서 청도까지는 약 18시간 정도 걸리는데, 남는 시간을 주체 못한 제가 배를 6번째쯤 돌고 있을 때였습니다. 몇 번 눈이 마주친 서양인과 한 동양인이 일본어로 얘기를 나누는 걸 듣고는 일본어가 조금 되는지라 얼른 끼어들었습니다.


술 좋아하는 한국인이 대부분 그렇지만, 기분이 좋아진 제가 당연히 한턱 냈습니다. 거기에 '조슈아'라는 캐나다인이 애지중지하고 있던 몰트 위스키를 푸는 바람에 거나하게 취해서 기분도 무척 좋았습니다.

일본인 아내가 있는 캐나다인, 한국인 아내가 있는 일본인, 독신인 한국인 세 명이 인천에서 중국 청도로 가는 배 위에서 일본어로 대화를 나누는 것은 아마 확률로도 계산이 안 될 정도로 엄청난 인연이었습니다. 가히 백년에 한번 장강 하류에서 내려오는 판자 구멍으로 눈먼 거북이 대가리를 내밀 정도였다고 생각합니다.

이 기분 좋던 상황이 바뀐 것은 비즈니스 때문에 중국을 방문하는 일본인 부인을 둔 조슈아씨가 잠에 들고였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중국 역사가 취미라고 한 저에게 일본 문화에도 제법 조예(?)가 깊은 것에 감명 받은 아베씨가 일본인으로는 드물게(알콜 탓도 있고 자기 부인이 한국인이라는 안심도 있었겠지만) 정말 일본인 답지 않게 '혼네(본심, 속마음)'을 저한테 꺼낸 것이었습니다.

아베: "그 당시 남경에 30만명이 있을 수 없었다."
자티(접니다): "3만명인지, 30만명이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왜 그 사람들이 자기 땅에서 일본인들에게 의해서 죽어갔는지가 중요하다. 남경이나 북경 노구교 옆에 있는 항일투쟁기념관(중국인민항일전쟁기념관)에 가 봐라. 거기에 진실이 있다(이 인간 때문에 원래 계획에도 없던 노구교를 가게 됐습니다. 노구교 옆에 있는 중국인민항일전쟁기념관도 보게 됐지요)."

자티: "혹 삼광(三光) 정책을 알고 있느냐! 때리고 부수고 죽이자!(삼광정책: 모조리 빼앗고, 모조리 불사르고, 모조리 죽이라)"
아베: "처음 듣는 얘기다."


자티: "일본 육군 참모부에서 만든 얘기다."
아베: (침묵)

아베: "우리도 피해자다. 미국도 우리 나라에 핵무기를 쏴서 많은 사람이 죽었다."
자티: "일본이 왜 피해자가 되는지 한국인인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나가사키에서 20만이 사망했는데 그 중 2만명이 재일한국인이었던 것은 알고 있느냐? 종군위안부 20만명 중 2000명만 되돌아 온 걸 알고 있느냐? 한국인 200만명과 중국인 2000만명이 죽은 걸 알고 있느냐?(기념관에서 확인하니 3700만명이었음)

아베: "한국은 왜 그런 것을 교과서에 실어서 일한 양국간에 우호를 해치는 지 이해가 안된다."
자티: (침묵) ('참을 인'자 세번이면 살인도 면한다는 공자(?)님 말씀을 떠올렸다)


자티: "그런 얘기는... (감정 조절을 위한 침묵)... 한국 교과서에는... 실려 있지 않다."
아베: (침묵)

아베: "종군 위안부는 돈을 벌기 위해 (그녀들) 자의로 한 거다."
자티: (이 극히 평범하고 일반적인 28살짜리 일본X을 서해에 집어 던지고 싶은 충동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이런 일은 일본에서 2년 일할 때에도 몇 번 겪었기에 적응이 됐다고 생각했는데도 피가 끓어서) (침묵)

아베: "한국도 베트남전쟁에서 민간인들을 죽이거나 하지 않았느냐!(자기 말이 먹혀 들어간다고 생각하면서 내 '침묵'을 오해하고 있음)"
자티: "맞다."

아베: "한국이 베트남에 사과했느냐? 왜 우리가 한국에 (사과를) 해야 하느냐?"
자티: "그건 분명한 한국의 책임이다. 진실을 알리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노력해 왔다. 한국에도 진실을 알리는 것을 방해하려는 인간도 있다. 왜, 베트남에서 미국이 패배했는지 알고 있느냐, 베트남에서 무장 투쟁(항프, 항일)을 한 군인은 지휘자급(영관급)에서는 중령 한 사람뿐이였고, 월맹의 경우 지휘자급 거의 다가 항일무장투쟁 경험자들이었다. 베트남 사람들이 사회주의, 공산주의자들 손을 들어준 것은 사회주의가 민주주의보다 우월해서가 아니라 지도자들의 높은 도덕성 때문이였다. 거기에 역시 '매국노(일본어 어휘가 딸려서 '자기 민족을 배반했던 인간'이라고 표현함)' 출신이며 일본 관동군 장교 출신인 '박정희'가 군인을 파견한 것이다. 그건, 우리 나라와 베트남의 문제다. 일본의 문제는 당신들이 해결해야 한다."

아베: "일본은 계속 사과해 왔다(그는 "베트남에서 미국이 진 것이 아니라 철수한 거다"라는 정말 일본인 같은 표현도 했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자티: "일본 정부는 정직한 사과를 한 적이 없다. 오로지 입놀림뿐이었다("네가 엉터리 역사를 배워 온 것이 바로 진정한 사과를 한 적이 없다는 증거다"라는 말을 하고 싶었는데, 감정을 진정 시키기 위해서 얘기를 못했습니다)"

아베: "종군 위안부는 언제나 돈 얘기뿐이다. 배상, 배상…."
자티: "종군 위안부가 언제나 얘기한 건 일본 정부의 사과였다. 배상은 그 뒤의 얘기다. 배상 배상 하는데 끌려갔던 종군위안부 20만명 중 몇 명이나 지금 살아 있는지 알고 있느냐?"

아베: (침묵)

아베: "과거는 잊어버리고 미래를 위해 사는 것이 중요하지 않느냐?"
자티: "어느 나라건 어느 민족이든 또 다른 나라에게 다른 민족에게 나쁜 짓을 해 왔다. 한국 역시 일본을 침략했던 적이 있었다(몽골의 일본 침략과 왜구를 퇴치하기 위한 대마도 정벌). 동북 아시아의 수많은 기마 민족과 중국과도 싸워왔던 것도 사실이다. 중요한 건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과거의 잘못된 점을 미래에 되풀이 하지 않으려는 것이다("과거가 없는 미래는 없다"는 글귀가 나중에 떠오른 것이 아쉽다)."

내 기억력과 많은 음주(맥주 6캔과 몰트 위스키 온더락 3잔 정도) 때문에 순서가 뒤바뀌기도 하고 표현도 엉망이었다. 또 충분히 논리적이지도 못했고, 가슴속 말도 정확히 표현할 수는 없었지만, 몇 시간 동안의 대화 내용을 간추린 겁니다. 아베는 상하이로 여행 간다고 했습닏. 중국인들 앞에서 '난징' 얘기를 한다면 올바른 역사를 배우지못한 죄로 여행을 끝내지 못할 텐데…. 부디 행운이 있기를.

참 빼먹은 대화가 있다. 중간 어디쯤에 있어야 되는데….

아베: "나는 전쟁이 끝난 후 태어난 세대다('나는 책임 없는 일이다'라는 뜻임)."
자티: "나도 그렇다('니들은 맨날 왜 그러냐'의 의미임)."

아베: "나는 한국에서 맞은 적도 있다."
자티: (침묵)(대화보다는 감정적 해결을 우선하는 어느 한국인의 모습이 떠올라서 한심하기도 했지만, 상황은 이해가 됐기에).

(가끔은 제가 너무 이성적인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냥 바닷물에 집어 던져 버렸어야 하는데.)

아베는 일본 극우도 안됩니다. 평범한 일본인의 모습이지요. 아베가, 왜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됐는지는 일본 교과서 문제를 보면 잘 알 수 있지요.

일본인들이 우리 나라를, 우리 민족을 우습게 여기는 건 바로 '친일청산'을 우리 힘으로 못했기 때문입니다. 미국이 그 기회를 주지도 않고 뺏어갔지요.

저는 상하이의 임시정부 건물에도, 중경의 임시정부 건물에도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돈이 없어서도 아니고 지리를 몰라서도 아닙니다. 건물 입구까지는 다 가봤습니다. 부끄러워서입니다. 그 분들 뵙기가….

"대동아 공영권이 실패한 것이 아쉽다"고, 달린 입이라고 떠들어 대는 아직도 존경(?) 받는 문인이 이 땅에 숨쉬고 있기 때문입니다. 총독부 고사포 상납한 사주가 '민족투사'였다고 떠들어대는 '할 말은 하는 신문'이 아직 이 나라 대표 신문이기 때문입니다.

왜 부끄러울까요? 계속 나열할까요? 압니다! 여러분들도 저처럼 부끄러워하고 계신 것, 여러분들도 저처럼 분노하고 계신 것. 고칩시다. 작은 것부터.

산동 평도에서 배 나온 기마민족 자티 올림

덧붙이는 글 | 일본의 극우화된 보통 일본인을 보며 '지일하자! 극일하자!'는 다짐이 얼마나 계속했는지 모릅니다. 

이 여행기는 2001년 2월에 했던 여행 일기 중 일부입니다. 2005년이 아니고 2001년입니다. 이번에는 독도 문제로 우리를 분노하게 만드는군요.

덧붙이는 글 일본의 극우화된 보통 일본인을 보며 '지일하자! 극일하자!'는 다짐이 얼마나 계속했는지 모릅니다. 

이 여행기는 2001년 2월에 했던 여행 일기 중 일부입니다. 2005년이 아니고 2001년입니다. 이번에는 독도 문제로 우리를 분노하게 만드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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