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 하 반장

등록 2005.04.18 15:11수정 2005.04.18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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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 손잡이를 아이들의 그림으로 장식하여 놓아 아이들의 맑은 모습을 엿볼 수 있다 ⓒ 정호갑

<홍반장>이라는 영화를 재미있게 본 적이 있다. 마을의 아침 청소에서부터 크고 작은 일을 비롯하여 모든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일꾼이기에 부쳐진 이름 홍 반장. 그는 못하는 것이 없다. 공인 중개사, 인테리어, 중국집 철가방, 카페 가수 등 그야말로 엔터테인먼트다. 다재다능한 그에게 마음이 끌리기보다는 그에게서 나는 사람 냄새에 마음이 더 간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늘 제자리에서 자기 일을 그저 묵묵히 하는 사람이 있기에 세상은 살만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낯선 땅 북경에도 홍 반장 아니 하 반장이 있다. 하태복. 그는 현재 북경한국국제학교 미술 선생님이다. 그가 북경한국국제학교에 오고 난 뒤부터 학교의 모습이 많이 달라졌다고들 여러 선생님들이 말한다. 복도의 빈자리, 계단을 미술 공간으로 바꿔 놓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아이들의 숨결을, 꿈을 학교 곳곳에 느낄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언제 이것이 꾸며진지는 모른다. 어느 날 보면 그렇게 꾸며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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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복 선생이 북경한국국제학교 복도 공간을 살려 <엉뚱한 미술 공간>으로 꾸며 놓았다 ⓒ 정호갑

그는 아이들에게 몸으로 느끼는 교육을 할 수 있도록 많은 배려를 하고 있다. 계절이 바뀌면 학교 근처의 미루나무 숲으로 아이들을 안내하여 자연의 숨소리를 듣게 하고, 주말에는 조각 공원으로 데려가서 아이들에게 예술 감상 기회를 주기도 한다. 저녁에는 아이들을 불러 넓은 공터에서 함께 박쥐를 관찰하기도 한다.

그는 일을 찾아하고 즐기면서 한다. 실내의 틈을 꾸며내는 그의 기발한 아이디에 많은 사람들이 놀라워한다.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할 법도 한데 홀로 한다. 느릿한 충청도의 말씨에는 정이 듬뿍 묻어있지만 그의 머릿속은 최신 컴퓨터가 내장되어 있어 또 다른 예술 공간을 꾸미고 있다.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홀로 자전거를 타고, 때로는 걸어서 북경 구석구석을 다닌다. 그리고 난 뒤 괜찮은 곳이 있으면 꼭 사람들을 데리고 간다. 그와 함께 다닌 곳이 루쉰 박물관, 중국 미술관, 송장 화가 마을, 대산자 미술거리 등등이다. 함께 다니면 작품에 대한 설명뿐 아니라 그에게서 나는 맑은 향기를 맡을 수 있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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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저녁에 아이들과 함께 박쥐 관찰을 하기에 앞서 박쥐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는 하태복 선생님 ⓒ 정호갑

그는 북경에 대해 많은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알려주고 싶어 하며 자기가 가진 것을 나눠 쓴다.

북경은 전기를 충전카드에 충전시켜놓고 쓰는데 그는 미리 예금된 전기충전카드를 따로 구입하여 놓고 있다. 자기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북경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러한 제도를 몰라 갑자기 전기가 끊어지게 되었을 때를 위하여 준비하여 놓고 있는 것이다.

두려움과 기대감으로 낯선 북경 땅을 밟은 사람을 위해 그는 집 안내는 물론이고 아줌마 구하는 것에서부터 어려운 일을 맡아 해 줄 준비된 사람같이 보인다. 그에게 말하면 대부분 해결된다. 그는 남의 어려움이나 부탁을 그냥 보지 않고 흘려듣지도 않는다.

무엇보다 그의 마음 씀씀이가 낯선 땅에 사는 외로움을 잊게 하여 준다. 기쁜 일과 슬픈 일이 있을 때 그는 늘 그 자리에 있다. 기쁜 일에는 예쁜 화분 하나 들고 들어서서 함께 기쁨을 키우고, 슬픈 일에는 손을 슬며시 잡으며 같이 눈물 흘린다.

하 반장. 그가 북경에 있기에 많은 사람들이 낯선 곳에서 사람의 정을 잃지 않고 살 수 있으며, 그가 학교에 있기에 아이들의 아름다운 숨결과 맑은 꿈을 간직할 수 있다. 하지만 이제 그의 머리에도 흰 머리가 늘고, 웃을 때는 세월의 흐름이 보인다. 오늘 그의 얼굴이 보니 하회탈을 닮았다.

남을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 옆에 있다 보면 그것이 나에게도 전염될까 봐 오늘도 그의 곁에 다가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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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 배우고 가르치는 행복에서 물러나 시골 살이하면서 자연에서 느끼고 배우며 그리고 깨닫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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