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녹색 피라미드 (78회)

등록 2005.04.27 07:09수정 2005.04.27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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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들어가세요."

채유정이 두 발을 앞으로 내밀어 먼저 들어갔다. 김 경장은 입구를 들키지 않기 위해 파헤친 칡더미와 풀잎을 들고 왔다. 안으로 들어서며 그것으로 입구를 가렸다.


안은 칠흑과 같이 어두웠다. 주변을 더듬어 가자 동공이 곧 어둠에 익숙해졌다. 그리고 주변의 사물들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모든 사물은 희미하게 보일 뿐이었다. 김 경장은 매고 있던 배낭에서 휴대용 소형 플래시를 찾아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사방을 비춰 보았다.

맨 먼저 쳐다본 것은 천장 부근이었다. 묘실 벽과 천장이 만나는 네 모서리에는 각기 큰돌로 대들보를 만들어 놓은 게 보였다. 일층 겹침 형태로 천장 돌과 만나도록 설계된 것이다. 천장에는 거대한 크기의 개정석(蓋頂石)을 얹어져 있었다. 김 경장이 그 돌로 된 천장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게 꽤 무거울 것인데."

"족히 몇 십 톤은 될 겁니다. 이렇게 거대한 돌을 얹었음에도 무덤이 무너지지 않고 5천여 년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사람들의 건축 기술이 얼마나 뛰어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증거예요."

둘은 랜턴을 비추며 좁은 횡혈식 석실로 들어섰다. 그 석실의 네 벽은 화강암을 다듬어 벽을 6단으로 쌓아올려 놓았다. 각 벽의 위 부분에는 벽면과 평행으로 굄돌을 놓고 그 위에 커다란 판석 한 장을 덮어 놓은 게 보였다.


주위는 이상하리 만치 조용했다. 호각을 불고 경적을 울리던 공안의 소리와 개가 짖어대는 소리가 현실적인 힘을 잃고 4차원의 공간을 통과한 듯 왜곡되고 굴절되어 윙윙거리는 묘한 소리로 변해 있었다.

한 여름인데도 피라미드 안의 공기는 서늘했다. 이 안으로 들어오기 위해 흘렸던 땀은 이미 식어 있었고, 어디선가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았다. 미세한 공기의 흐름이 느껴지는 것이다. 채유정이 손에 침을 묻혀 들어 보였다.


"어딘가 밖으로 통하는 출구가 있는 것 같아요."

"다른 곳으로 나갈 수 있다면 공안의 추적을 피할 수 있겠죠?"

"그것보다는 얼른 그 유물을 찾아내야 해요."

김 경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석실 내부를 뒤지기 시작했다. 석실의 사방은 돌 블록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그 돌은 무척 컸으며 무게 또한 상당해 보였다. 돌 블록 사이에 빈틈이 없을 만큼 촘촘히 쌓여져 있었다.

바닥에는 고운 먼지만 뽀얗게 쌓여 있을 뿐, 아무 것도 놓여 있지 않았다. 천장에는 돌 블록 대신 거대한 크기의 개정석(蓋頂石)을 얹어 놓았다. 그 개정석 가장자리에 20여 개의 구멍이 나 있는데 기둥을 박았던 흔적으로 보였다. 그 기둥은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지붕으로 얹혀진 석판에는 벽면과 만나는 곳에 동그랗게 돌아가며 홈이 파여 있다. 외부의 습기나 빗물이 안으로 스며들지 않도록 설계한 것 같았다. 주위를 둘러보던 채유정이 다소 실망스런 어투로 말했다.

"여긴 예전에 누군가 들어왔었던 것 같네요."

"박사님이 여길 발견해 들어오기 전에 다른 사람이 먼저 발굴하고 들어왔던 게 분명해 보이네요."

"그렇다면 중요한 유물은 모두 가져갔겠군요."

"그 도굴을 막기 위해 어느 시대에서 이 피라미드에 흙을 입히고 나무를 심어 놓았을 겁니다."

"만들 당시에는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비슷한 모양이었다는 건가요?"

"그런 것 같습니다. 만들어진 시대 또한 서로 비슷한 것 같아요."

둘은 이야기를 하면서 벽을 더듬고 바닥을 뒤져 유물을 찾았다. 하지만 석실 내부는 이사간 빈집처럼 설렁한 채 숨겨둘 만한 공간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공간을 찾기 위해 벽을 누르고 차보았으나 끄떡도 하지 않았다.

둘은 조금씩 지쳐갔다. 랜턴의 배터리가 수명을 다해가면서 주변을 비출만한 도구도 얼마 남지 않았다. 암담했다. 채유정은 바닥에 털썩 주저앉으며 벽에 기대었다.

"어떡하죠?"

"여기까지 온 이상 빈손으로 돌아갈 순 없습니다. 반드시 그 유물을 찾아서 나가야만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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