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밥에 척척 걸쳐먹는 갓김치의 맛

<음식사냥 맛사냥 18> 코끝 톡톡 쏘는 감칠맛 '여수 돌산 갓김치'

등록 2005.04.28 16:11수정 2005.04.29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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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맛 없을 땐 쌀밥 위에 돌산 갓김치 얹어 드셔보세요 ⓒ 이종찬

"자기, 갓김치 좋아해?"
"갓김치? 그것 참 좋지. 근데 갑자기 웬 갓김치?"
"아니, 백화점 직원들이 단체로 갓김치를 주문한다기에."
"갓김치 하면 여수 돌산이잖아."
"체! 그 땜에 물어보는 거야."

지난 18일이었던가. 오후 3~4시쯤 갑자기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날 오후에 여수에서 택배가 하나 올 테니까 잘 받아두라고. 하여튼 돈만 있으면 참 좋은 세상임에 틀림없다. 굳이 여수까지 가지 않더라도 창원에서 전화 한 통화나 인터넷 쇼핑으로 그 유명한 여수 돌산 갓김치를 쉬이 시켜먹을 수 있으니.

갓김치가 한창 맛이 좋을 때다. 갓김치는 배추김치처럼 금방 버무려 곧바로 먹는 김치가 아니다. 갓김치를 금방 버무려 먹으면 갓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향과 매운맛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맛도 별로 없고 금세 질리게 된다. 그런 까닭에 예로부터 갓김치는 장독 속에 넣어 푹 익혀 먹어야 제 맛이 나는 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갓에는 사람 몸에 필요한 칼슘과 비타민, 단백질, 무기질 등 각종 영양분이 다른 채소보다 훨씬 많이 들어 있다. 특히 갓을 김치로 담그면 갓 스스로 효소작용에 의해 만들어진 항균성 물질이 갓김치의 발효작용을 억누르기 때문에 오랫동안 저장해도 쉬이 삭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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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에서 택배로 날아온 돌산 갓김치 ⓒ 이종찬

명의 허준의 <동의보감>에 따르면 "갓은 성질이 따뜻하며 맛은 맵지만 무독(無毒)하다. 그 따뜻하고 매운 맛으로 인체의 담을 제거하고 기(氣)의 유통을 돕고 한(寒)을 몰아내고 속을 따뜻하게 하니, 신장의 사기(邪氣)가 제거되며 구규(九竅, 사람의 몸에 있는 아홉 구멍)를 통하게 한다"고 적혀 있다.

갓은 우리나라 어디서든지 잘 자라는 채소다. 갓은 독특한 향과 매운 맛 때문에 병충해마저도 거의 없다. 그런 까닭에 갓은 다른 채소처럼 화학비료를 뿌리거나 농약을 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자연산 그대로다. 그저 텃밭에 씨앗만 뿌려두어도 제 스스로 아주 잘 자란다는 그 말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갓' 하면 가장 먼저 여수 돌산이란 낱말부터 먼저 떠올린다. '아귀찜' 하면 경남 마산이 절로 떠오르고, '생갈치' 하면 제주도의 그 푸르른 바다가 먼저 떠오르는 것처럼. 근데, 왜 하필이면 우리나라 곳곳에 흔히 널린 갓 중에서도 여수 돌산에서 나는 갓을 으뜸으로 치는 걸까.

며칠 전, 우리 집에 여수 돌산 갓김치 택배를 보낸 M식품 홈페이지에는 "전남 여수의 특산물 돌산 붉은 갓은 한반도 남단의 따뜻한 기후와 바닷바람이 어우러진 알칼리성 토질에서 자라기 때문에 다른 지역의 갓에 비해 독특한 향기가 나고 섬유질이 적어 부드럽다"고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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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돌산 갓김치는 오래 두어도 쉬이 시지도 않고 향도 쉬이 변하지 않는다 ⓒ 이종찬

돌산갓영농조합 홈페이지에는 "돌산 갓김치는 장기간 보관하여도 쉽게 시지 않으며 계속 독특한 향이 남아 있다"고 적고 있다. 또한 일반 김치는 시간이 지나면 젓산발효로 시게 되지만 돌산 갓김치는 쉬이 시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신 뒤에도 독특한 향이 남아있어 오히려 식도락가들이 별미로 즐겨찾는다고 되어 있다.

돌산 갓김치를 담그는 방법은 별로 어렵지 않다. 재료는 돌산에서 나는 붉은 갓과 쪽파, 마늘, 멸치액젓, 고춧가루, 소금, 생강만 있으면 된다. 그저 배추김치를 담그듯이 갓에 소금을 뿌려 한 시간 가량 절인 뒤 멸치젓갈과 고춧가루, 다진 마늘, 다진 생강, 쪽파를 넣고 버무려 소금으로 간만 맞추면 그만이다.

맛 더하기 하나. 갓김치의 감칠맛을 결정하는 것은 멸치젓갈. 멸치젓갈은 멸치젓의 양과 같은 물을 붓고 중간불에서 오래 달인 뒤 고운 채에 걸러 멸치진국을 만들어 쓰는 것이 좋다. 하지만 맞벌이로 바쁜 사람들은 멸치젓을 달이지 않고 그대로 갈아서 사용해도 된다. 멸치진국에 생새우를 갈아넣는 것도 맛의 비결.

맛 더하기 둘. 갓김치는 뭐니뭐니 해도 장독에서 잘 익히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갖은 양념에 잘 버무린 갓김치를 장독에 넣고 그 위에 우거지를 덮어 돌로 눌러 그늘에 두는 것이 감칠맛을 내는 비결. 갓김치는 담근 지 오래 두어도 그 맛에 큰 변화가 없으나 15일에서 20일 사이에 꺼내 먹는 것이 가장 맛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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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에는 사람 몸에 필요한 칼슘과 비타민, 단백질, 무기질 등 각종 영양분이 다른 채소보다 훨씬 많이 들어 있다 ⓒ 이종찬

인터넷 주문으로 나흘 만에 택배로 날아온 여수 돌산 갓김치. 돌산 갓김치의 가장 큰 매력은 씹으면 씹을수록 코끝을 알싸하게 맴도는 독특한 향기와 혓바닥을 톡톡 쏘며 달착지근하게 달라붙는 기막힌 감칠맛이다. 게다가 아삭아삭 부드럽게 씹히는 맛도 끝내준다. 일반 갓김치처럼 질기다는 그런 느낌은 그 어디에도 없다.

여수 돌산 갓김치는 막걸리 안주로도 그만이다. 허연 막걸리를 쭈욱 들이킨 뒤 갓김치 한 조각을 입에 넣으면 막걸리가 남긴 텁텁한 맛이 금세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다. 입 안에는 갓김치 특유의 매콤하면서도 새콤달콤한 맛이 혓바닥을 마구 농락하면서 또다시 시원한 막걸리를 부른다.

하지만 잘 익은 여수 돌산 갓김치는 뭐니뭐니 해도 금방 밥솥에서 퍼낸 더운 쌀밥 위에 척척 걸쳐 먹는 그 맛이 가장 좋다. 특히 입맛이 없다느니, 온몸의 기가 빠진 것처럼 나른하다느니 할 때 매콤한 갓김치를 쌀밥 위에 얹어 한입 넣으면 금세 입맛이 되살아나는 것은 물론 갑자기 온몸에 힘이 펄펄 솟아나는 것만 같다.

"돌산 갓김치 다 먹었어?"
"아니, 아직 조금 남았어."
"뭘 그렇게 아껴먹고 있어. 주문하면 금방 또 오는데."
"그럼 이번에는 물김치나 절임김치를 한번 시켜 먹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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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돌산 갓김치는 코끝을 알싸하게 맴도는 독특한 향기와 혓바닥을 톡톡 쏘며 달착지근하게 달라붙는 감칠맛이 기막히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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