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 기 묵어 보셨니껴?"

<음식사냥 맛사냥 17> 봄철 맞아 제맛 오른 '울진대게'

등록 2005.04.26 15:40수정 2005.04.26 17:20
0
원고료로 응원
a

울진 대게를 손에 든 채 뿌듯한 미소를 짓고 있는 태욱(4)군 ⓒ 이종찬

대게가 제철을 맞았다. 봄이 점점 깊어지면서 한창 물이 오를 대로 오른 대게들이 사람들을 부르고 있다. 지금 울진 죽변항에 가면 온통 눈에 띄는 게 대게다. 앞을 바라보아도 뒤를 돌아보아도 옆을 힐끔거려도 온통 어른 손바닥만한 대게들이 긴 대나무 발을 꼼지락거리며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목을 붙잡는다.

대게는 몸통이 크다고 해서 대게라 부르는 것이 아니다. 울진사람들이 '기'라고 부르는 대게는 빛깔이 마른 대나무빛과 비슷하고 몸통에 달린 8개의 다리가 마치 대나무처럼 쭉쭉 뻗어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한자어로 대게를 '죽해'(竹蟹)라 부르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대게는 빛깔에 따라 황금색과 은백색, 분홍색, 홍색 등 4가지로 나눈다. 그중 진짜 대게는 황금빛이 짙은 '참대게'와 '박달게'다. 이 지역 사람들이 '빵게'라 부르는 게는 참대게와 박달개의 암컷을 부르는 이름이다. 참대게와 박달게의 암컷은 수컷보다 몸집이 훨씬 작고 크기 또한 진빵만 하기 때문에 그리 부른단다.

a

울진 죽변항을 마주 하고 있는 대게 전문점 <돌섬식당> ⓒ 이종찬


a

어른 주먹만한 싱싱한 대게 한 마리가 2만 원 ⓒ 이종찬

저지방 고단백 식품 대게. 대게는 예로부터 사람 몸에 필요한 필수 아미노산이 골고루 들어 있어 성장기 어린이나 노약자에게 아주 좋은 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한방에서도 대게는 성질이 차가워 해열이나 숙취 해소, 가슴 답답증, 열병 등에 아주 좋다고 한다. 하긴, 대게가 오죽 사람 몸에 좋았으면 이 지역에서 '기 묵고 체한 사람 봇봤니더'라는 유행어까지 나돌고 있겠는가.

"이곳 울진이나 영덕이나 꼭같은 바다에서 잡아오는 꼭같은 대게니더. 사실, 영덕이 대게의 본고장으로 알려진 것은 수월한 교통수단 때문이었니더. 193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서울이나 대구, 포항, 안동 등의 대도시로 해산물을 나르기 위해서는 울진보다 영덕이 편했다 아이니껴."

지난 23일(토), 울진 죽변항에서 만난 남효선(47) 시인. 울진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울진에서 살아가고 있는 남 시인은 대뜸 "울진 기 먹어보셨니껴? 울진에 와서 기를 맛보지 않고 가면 두고 두고 나를 원망할 것"이라며,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이윽고 지금 손님들 모시고 갈테니 얼른 대게 예닐곱 마리를 삶아놓으라고 말한다.

아름다운 죽변항을 마주 바라보고 있는 대게전문점 '돌섬식당'. 돌섬식당 들머리 유리어항에는 싱싱한 대게들이 물 반 대게 반으로 빼곡히 들어차 있다. 손으로 물 밖으로 나온 대게 한 마리의 등을 살짝 누르자 긴 대나무 발들을 이리저리 꼼지락거린다. 마치 '어서 날 잡아잡수' 하는 투다.

a

요즈음 울진 대게 드셔 보셨나요? ⓒ 이종찬


a

잘 삶은 대게, 대게는 양념장이 필요 없고 그냥 먹으면 된다 ⓒ 이종찬

예닐곱 평 남짓한 식당 안에 들어서자 오십대 중반 쯤으로 보이는 아주머니 한 분이 대구를 다듬다가 남 시인과 나그네들을 번갈아 바라보며 반갑게 맞이한다. 남 시인이 턱짓을 하자 주방으로 들어간 아주머니가 이내 잘 삶은 대게(한 마리 2만원) 예닐곱 마리를 커다란 알루미늄 쟁반에 담아 탁자 위에 올린다.

"기(대게)는 껍질만 빼고 다 먹을 수 있니더. 다리살을 먹을 때는 기 다리의 맨 끝마디를 부러뜨려 슬쩍 당기면 살이 쭈욱 빠져 나오니더. 몸통 이 거는 두껑을 연 뒤 겉껍질을 요렇게 하나만 벗기고 먹으면 되니더."

아주머니의 말씀대로 대게의 다리살을 쭈욱 빼내 입에 물자 달착지근하면서도 독특한 감칠맛이 혀끝을 마구 농락하기 시작한다. 달착지근하게 쫄깃쫄깃 씹히는 이 기막힌 맛.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음식도 있다니. 양념장도 필요없다. 그저 다리 끝마디를 손으로 부러뜨려 쭈욱 삐져나오는 살을 입에 물면 그만이다.

어디 그뿐이랴. 게 두껑을 열어 먹는 몸통살은 다리살보다 훨씬 더 부드럽고 감칠맛이 좋다. 게다가 초록빛 게장이 묻어 있어 달착지근하면서도 독특한 맛이 묻어난다. 갑자기 모두들 말이 없다. 아니, 말 대신 대게 다리를 입에 물고 쪽쪽 소리만 열심히 내고 있다. 소주 몇 잔 권할 틈도 없이 대게 서너 마리가 순식간에 사라진다.

a

잘 삶은 대게는 달착지근하면서도 감칠맛이 뛰어나다 ⓒ 이종찬


a

대게는 껍질만 빼고 모두 먹을 수 있는 저지방 고단백 식품이다 ⓒ 이종찬

예닐곱 마리나 되는 대게의 긴 다리가 몇 개 남지 않았을 즈음 아주머니가 금방 가마솥에서 퍼낸 뜨끈뜨끈한 쌀밥을 식탁 위에 올린다. 그리고 초록빛 게장과 몸통살만 조금 남은 대게 두껑에 고소한 내음이 술술 풍겨나는 참기름을 몇 방울 톡톡 떨어뜨린다. 이제 게 뚜껑에 뜨근뜨끈한 쌀밥을 한 번 비벼먹어보라는 투다.

게뚜껑에 쌀밥 몇 수저 올려 쓰윽쓱 비비자 하얀 쌀밥이 이내 연초록빛으로 물든다. 절로 침이 꼴깍 삼켜진다. 누가 뺏어라도 먹을까 얼른 연초록빛 쌀밥 한 숟가락을 입에 떠넣자 씹을 틈도 없이 그냥 꾸울꺽 삼켜진다. 이 독특한 맛! 이 맛을 뭐라고 해야 할까. 입 속으로 쏴아 하고 밀려드는 파도의 맛이라고 해야 할까.

"기를 찔 때는 배를 위쪽으로 놓고 쪄야 하니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맛난 기의 게장이 다 흘러나오고 마니더. 그리고 기가 완전히 익을 때까지 솥두껑을 열면 절대 안 되니더. 기를 찌는 중간에 솥두껑을 열면 몸통 속 게장이 다리살 쪽으로 흘러들어 다리살이 검게 변하고 마니더."

성이 '이가'라고 말하는 돌섬식당 아주머니. 이씨 아주머니는 대게는 잘 쪄야 제맛이 난다며, "속살을 씹을 때 달착지근하면서도 담백한 맛이 감도는 것이 잘 쪄낸 대게"라고 말한다. 이어 집에서 대게를 쪄서 먹고 싶을 때는 대게의 배를 눌러보아 단단한 것을 고른 뒤 되도록 빨리 조리해서 먹어야 제맛을 즐길 수 있다고 귀띔한다.

a

몸통살을 빼먹고 남은 초록빛 게장에 참기름 서너 방울 떨어뜨려 뜨근뜨끈한 밥에 비벼먹는 그 맛은 정말 끝내준다 ⓒ 이종찬


a

오징어 내장과 대구 내장에 된장을 풀어 만든 '된장찌지개'는 숙취해소에 그만이다 ⓒ 이종찬

돌섬식당에서 나오는 '된장찌지개'(3~4인분 1만원)의 그 시원한 맛도 잊을 수 없다. 오징어 내장과 대구 아가미, 대구 내장, 된장, 매운 고추, 마늘 등 갖은 양념을 넣고 만드는, 이름도 독특한 '된장찌지개'. 된장찌지개는 몇 수저 입에 떠넣는 순간 이마와 목덜미에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히면서 숙취가 절로 사라진다.

"기는 보름달이 뜰 무렵에는 살이 없고 물이 많아 물기(물게)라 하니더. 그때는 살아 있는 기 배를 눌러보모(눌러보면) 단단하지 않고 물렁물렁하니더. 그라이(그러니까) 기맛(게맛)을 제대로 볼라카모(보려면) 보름달이 하현달로 스러질 때가 가장 좋니더."

a

입 속으로 쏴아 하고 밀려드는 파도의 맛 ⓒ 이종찬

덧붙이는 글 | ☞가는 길/서울-원주-제천-영월-태백-효산-울진-죽변항-돌섬식당(054-782-3898) 
※동서울에서 울진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울진터미널에 내려 죽변항으로 가는 시내버스(30분)를 타도 된다.

덧붙이는 글 ☞가는 길/서울-원주-제천-영월-태백-효산-울진-죽변항-돌섬식당(054-782-3898) 
※동서울에서 울진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울진터미널에 내려 죽변항으로 가는 시내버스(30분)를 타도 된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파묘' 최민식 말이 현실로... 백두대간이 위험하다
  2. 2 이사 3년 만에 발견한 이 나무... 이게 웬 떡입니까
  3. 3 도시락 가게 사장인데요, 스스로 이건 칭찬합니다
  4. 4 '내'가 먹는 음식이 '우리'를 죽이는 기막힌 현실
  5. 5 제주가 다 비싼 건 아니에요... 가심비 동네 맛집 8곳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