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 참 뜻

안흥 산골에서 띄우는 편지 (109) 부처님 오신 날에

등록 2005.05.14 14:46수정 2005.05.15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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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궁이에 군불을 지피면서


요즘 들어 나는 자주 군불을 지핀다. 뜨거운 온돌에다가 지난 번 다친 골절부위를 지지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다. 아궁이에다가 땔감을 밀어 넣고 불쏘시개에 불을 붙이면 곧 활활 잘 타오른다. 장작에 불이 한창 타오를 때는 ‘탁, 탁’ 소리를 낸다. 그때 아궁이를 쳐다보면 온통 시뻘겋다.

아궁이를 지켜보면서 새 장작을 밀어 넣기도 하고, 더 잘 타도록 뒤집어주기도 한다. 타오르는 불길을 바라보면서 이런저런 상념에 빠지면 즐겁다. 그러면 금세 두세 시간이 후딱 지나가 버린다.

오늘 아침, 새로 펴내는 책의 마지막 원고를 출판사로 보내자 더 없이 허전했다. 책을 한두 번 내는 것도 아니지만 매번 그랬다. 남자라서 아이를 낳아보지 않았지만 아마도 임산부가 뱃속의 아이를 낳은 뒤에도 이런 기분이 아닐까 싶다.

갑자기 할일이 없어서 안채에 어슬렁거리자 아내가 내 글방 좀 치우라고 잔소리를 했다. 오늘 먼 곳에서 손님이 온다고 아내는 안채에 먼지 하나 없이 치워놓았다. 사실 나의 아주 좋지 못한 습관의 하나는 내 글방과 책상 위에는 어수선하기 짝이 없는 점이다.

그런데 오늘 오는 손님은 출판에 종사하는 분이라고 하니, 아무래도 내 글방에 들를 확률이 많을 것 같았다. 그래서 다시 내 글방으로 돌아와서 책상 위를 치우다가 그동안 쌓아놓은 폐지를 보니까 갑자기 군불을 지피고 싶었다. 아마도 무료하고 허전한 마음을 메우고 싶기 때문이리라.


안채 처마 밑에 갈무리해 둔 마른 솔가지와 장작을 한 아름 안아다가 아궁이에 넣고 버릴 폐지에 불을 붙여 솔가지로 옮기자 매운 연기를 내면서 잘 붙었다. 뽕나무 장작을 밀어 넣으면서 나는 깜짝 놀랐다. 뽕나무 마른 장작곁가지에 새순이 파릇파릇 돋아 있었다.

a 왼쪽은 아궁이로 들어간 뽕나무 장작, 곁 가지가 불붙기 직전. 오른쪽은 아궁이로 들어가기 직전의 뽕나무 곁가지 파릇한 새순 .

왼쪽은 아궁이로 들어간 뽕나무 장작, 곁 가지가 불붙기 직전. 오른쪽은 아궁이로 들어가기 직전의 뽕나무 곁가지 파릇한 새순 . ⓒ 박도

그 뽕나무는 지난해 늦가을에 텃밭 곁에서 베어 낸 것인데, 날마다 오후에는 늘 그 놈이 그늘을 지어서 텃밭 작물이 잘 자라지 않았다. 그걸 앞집 노씨가 보고서 베어버리라고 그런 걸, 아내가 멀쩡하게 산 나무를 베지 말라고 반대하여 그대로 두었다.


지난해 늦가을 땔감 준비하면서 앞집 노씨와 함께 마침 아내가 출타 중이라서 기계톱으로 벤 뒤 몇 토막 잘라서 슬그머니 처마 밑에 쌓아두었다. 그러고는 아내에게는 노씨가 베 버렸다고 아주 능청스럽게 둘러대었다.

그런데 아궁이에 들어간 뽕나무 마른 장작곁가지에서 파릇파릇한 새순이 막 불붙기 직전이 아닌가. 이럴 수가…. 이미 장작 앞부분은 불이 붙어 활활 타오르고 있다. 이제는 엎지른 물이었다. 새순은 곧 숨이 죽어버렸다. 새순은 곧 불길에 휩싸였고 , 잠시 뒤 아궁이에는 재만 남았다.

죄 많은 인생

군불을 지핀 방으로 돌아오자 자꾸만 새순이 눈에 아른거렸고, 내가 크게 못할 짓을 한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러면서 사람이 산다는 것은 죄를 지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옛날 할머니가 장독대 위에다가 정화수를 떠놓고 “천지신명이시여, 아무쪼록 죄 많은 인생 용서해 주세요”라면서 애면글면 빌었다. 어린 나는 할머니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저리도 빌까 그 의문이 풀리지 않았다.

내가 보기에는 할머니가 남에게 잘못한 일은 별로 없는 것 같은데도 말이다. 이순(耳順, 60)이 지난 뒤에야 그 의문이 풀린 것은, 할머니가 비는 죄는 바로 인간의 원초적인 죄이다.

사람이 사는 것은 살아있는 동식물을 잡아먹고 뜯어먹고 캐어서 먹고…. 무수한 동식물의 생명을 끊어놓았다. 그뿐 아니라 동식물들에게 숱하게 고약한 짓을 하고, 그들을 못살게 괴롭혔다.

a 지난 번 양양 산불로 재만 남은 현장

지난 번 양양 산불로 재만 남은 현장 ⓒ 박도

사람들이 저만 편케 살기 위해 땅을 파고 뒤집고 굴을 뚫어서 동식물들을 못살게 하고 그들의 보금자리를 뺏어버렸다. 그들에게 더 못살게 굴고, 그들의 보금자리를 더 많이 뺏은 사람일수록 더 잘난 사람으로 행세하고, 더 부자로 뻐기면서 산다.

몇 해 전, 강원도 동해안에서 산불이 난 현장을 지켜 본 일이 있는데, 산불이 난 자리에는 그야말로 잿더미뿐으로 사람의 실화(失火)는 큰 범죄임을 깨달았다. 내가 37년 동안이나 애써 줄기차게 피우던 담배를 하루아침에 끊어버린 데도 그 산불을 본 것이 한 계기가 되었다.

이런 사람의 원죄를 이미 이천사백여 년 전에 깨달은 석가는 온갖 부귀공명도 버리고, 모든 사람의 원죄를 당신이라도 대신 씻고자 일찍이 왕궁을 떠나 출가하였으리라.

사람이 산다는 것은 죄를 짓는 일이다. 오래 살겠다고 기도하지 말고, 가능한 죄를 덜 짓고 살도록 노력하는 게 부처님을 따르는 바른 행동이요, 부처님의 참 뜻을 바로 아는 일이 아닐까.

나무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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