멧새 좇아 신록여행

안흥 산골에서 띄우는 편지 (112) 멧새의 노랫소리를 따라서 떠나다

등록 2005.05.19 17:47수정 2005.05.20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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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매화산의 신록 (1)

매화산의 신록 (1) ⓒ 박도

맑고 향기로운 좋은 아침


안녕하세요, 아저씨. 좋은 아침이에요.

안녕, 멧새들아! 그동안 잘 지냈니? 정말 맑고 향기로운 좋은 아침이다.

네, 아저씨. 그동안 아저씨도 잘 지내셨어요.

그럼, 오늘은 이른 새벽부터 노래를 불러줘서 고맙다.

호호, 사실은 요즘이 저희들에게는 사랑의 계절이라서 서로들 짝을 찾고자 노래 부르는 일에 엄청 바빠요.


그랬군, 그래서 뻐꾸기도 요즘 아주 신이 나서 노래를 불러대더구나.

그럼요, 아주 뜨거운 사랑의 계절이에요. 이때를 놓치면 저희들은 자식을 얻을 수 없어요. 그런데 아저씨, 농사지을 만하세요? 보니까 올해는 밭두둑에 비닐도 덮지 않으셨네요.


a 풍취산의 신록 (1)

풍취산의 신록 (1) ⓒ 박도


너희들이 날마다 보다시피 영 말이 아니구나. 고구마는 올해도 순이 뿌리를 잘 내리지 않는구나. 정말 농사 쉽지 않네.

그럼요, 세상에는 쉬운 일이 없대요. 아저씨는 그래도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아이들 가르치는 일을 30년이 넘게 하셨잖아요. 농사일이 그보다는 쉬울 거예요.

글쎄다. 나에게는 이 세상에 쉬운 일이 하나 없구나.

그런 자세로 세상을 살아야 해요. 세상일을 쉽게 생각하면 오만하거나 교만해져요. 그게 가장 나쁜 거예요.

좋은 충고의 말을 들려줘서 고맙구나.

아니에요, 아저씨. 저희들 말에 귀를 기울려주신 아저씨가 더 고마워요. 그런데 아저씨는 왜 그렇게 욕심이 없으세요?

내가 욕심이 없다니…?

아무도 아는 이 없는 강원산골에 와서 아저씨 땅 한 뼘 없이 사시잖아요. 하기는 애당초 내 땅, 네 땅이 없는 세상이었지만….

너희들이 모르는 게 없구나. 그래, 오늘은 무슨 얘기를 하려고 조잘거리니?

a 오월의 훈풍에 부쩍 자라는 호밀

오월의 훈풍에 부쩍 자라는 호밀 ⓒ 박도

모든 생명체가 더불어 사는 세상

사람들의 탐욕을 얘기하고자 해요. 요즘 한창 새순이 올라오는 신록의 계절이지요. 이맘때면 사람들이 산에 올라서 산나물을 뜯어가곤 하지요. 그런데 요 몇 년 전부터는 사람들이 차를 몰고서 산 아래까지 와서는 산나물을 뜯어가는 게 아니라 숫제 훑어가요. 다음해를 위해서 조금 남겨두지도 않고, 심지어는 가지째 꺾어가는 이도 엄청 많아요.

옛날에는 산골사람들이 한 보퉁이쯤 뜯어다가 솥에다가 삶아서 채반에 말려 두고두고 밥반찬을 하였는데, 이즈음의 사람들은 욕심 많게 몇 보퉁이씩 훑어다가 차에다가 가득 싣고 가요.

아마도 사람들이 장사하려고 그러나 보다.

장사를 하더라도 내년을 생각해서 가지는 해치지 말아야지요. 그리고 맛있는 취나물이나 두릅 같은 연한 잎은 사람만 좋아하는 게 아니거든요. 사슴 산토끼 멧돼지 고라니들과 같은 산짐승들도 다들 좋아한답니다. 사람들은 산나물이 아니더라도 먹을 게 지천으로 많을 텐데 산짐승에게 양보하고 조금만 맛보면 안 되나요?

a 이제 곧 산골마을에는 송홧가루가 흩날릴 게다

이제 곧 산골마을에는 송홧가루가 흩날릴 게다 ⓒ 박도

내 너희들의 말을 세상 사람들에게 그대로 전하겠다. 이 세상은 사람만이 사는 세상이 아니고 모든 생명체가 더불어 사는 세상이라고.

고마워요, 아저씨! 오늘 이렇게 날씨 좋은 날 뭘 하실 거예요?

글쎄다.

오늘 같은 날은 글방에만 계시지 말고 저희들이 살고 있는 숲으로 오세요. 아저씨가 카메라를 가지고 오실 때는 저희들 모습 찍으려고 노리지 마시고, 아저씨가 좋아하시는 숲의 초록이나 담아가세요.

그래 알았다. 내가 좋아하는 초록이나 실컷 담으련다.

아! 정말 끝내주는 푸른 오월이에요.

정말 맑고, 푸르고 훈훈한 '계절의 여왕' 푸른 오월이구나. 너희들의 노랫소리에 좇아서 초록 여행을 떠나야겠다.

네, 아저씨. 저희들이 안내할 테니 조심조심 따라 오세요. 지난 겨울 처럼 다치지 마시고요.

그래, 알았다. 요 귀여운 멧새들아.

a 매화산의 신록 (2)

매화산의 신록 (2) ⓒ 박도




a 풍취산의 신록 (2)

풍취산의 신록 (2) ⓒ 박도




a 한적한 오월의 산촌 풍경 (1)

한적한 오월의 산촌 풍경 (1) ⓒ 박도




a 한적한 오월의 산촌 풍경 (2)

한적한 오월의 산촌 풍경 (2) ⓒ 박도



덧붙이는 글 | 그동안 연재해 오던 <안흥 산골에서 띄우는 편지>를 도서출판 지식산업사에서 단행본으로 펴냈습니다.

덧붙이는 글 그동안 연재해 오던 <안흥 산골에서 띄우는 편지>를 도서출판 지식산업사에서 단행본으로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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