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정통무협 단장기 187회

등록 2005.05.20 07:51수정 2005.05.20 13:59
0
원고료로 응원
그와 동시에 담천의의 검이 뽑혀 나오며 사내의 검과 마주쳐갔다.

까--강--!


검이 왜도와 부닥치는 소리가 연이어 들리며 삐쩍 마른 사내가 황급하게 뒷걸음쳤다. 하지만 담천의의 검은 이미 그의 허벅지를 베고 다시 그의 가슴을 그어내고 있었다. 병기가 길다는 것은 어느 정도 거리가 주어지면 매우 유리할 수 있지만 아주 근접한 거리에서는 오히려 불리해질 수 있는 단점이 있었다. 더구나 담천의의 검은 기이하게도 틈이 없다고 확신한 그의 도법의 약점을 무섭고 집요하게 파고들고 있었다.

“헉…!”

사내는 비명과도 같은 헛바람을 집어 삼키며 도를 일직선으로 세워 빠르게 수직으로 내리 꽂았다. 일도양단의 단순함은 한순간 가슴과 복부에 무방비의 허점을 드러냈지만 그것은 일종의 동귀어진의 수법이어서 담천의가 그의 가슴을 벤다면 그와 동시에 그의 도는 담천의의 몸을 가를 터였다.

담천의는 몸을 옆으로 돌리면서 다시 사선으로 그의 옆구리를 베었다. 깡마른 몸에서도 피가 솟구칠 수 있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었다. 순간 그의 전신을 향해 굴러오는 뚱뚱한 인물을 보았다. 동시에 삐쩍 마른 인물의 왜도가 연속적으로 허공을 비스듬히 그으며 그의 상체를 베어왔다. 삐쩍 마른 인물은 수비를 도외시하고 치명적인 공격에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나를 베어라. 그 순간 나도 너를 벨 것이다.


그의 도는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헌데 이게 웬일인가? 그의 도를 마주쳐내고 두 번이나 좌측으로 몸을 회전해 몸을 띄운 담천의는 등짝에서 느껴지는 맹렬한 고통을 느껴야 했다. 마치 바윗덩이가 자신의 등을 강타한 것 같은 아찔한 고통에 그의 입에서도 헛바람이 새어 나왔다.

“헉…!”


허공에 떠올려진 몸에 뚱뚱한 자의 둥그런 몸이 강타한 것이다. 이 뚱뚱한 자는 구르는 재주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마치 둥그런 바윗돌이 이리저리 날아 튕기 듯 쏘아 다니는 것이다. 급히 충격을 완화했다고는 하나 그의 기혈이 뒤흔들리고 고통에 감각이 무뎌지고 있었다.

대부분의 무인들이 내가 기공을 연마하는데 비해 일부는 외문무공에 정진하는 경우가 있었다. 철포삼(鐵袍衫)이나 금종조(金鐘躁), 태보횡련(太保橫練) 등이 그것으로 온몸이 철갑을 씌운 듯 단단해지면 어떠한 병기도 몸으로 막아낼 수 있고, 몸이 곧 무기가 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내공을 쌓아 금강불괴를 이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실 불가능한 일이었고, 그러한 육신갑(肉身甲)의 경지에 이른 자는 지금까지 없었다.

저 자의 모습으로 보아 그러한 외문기공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과는 다른 종류의 무서운 외문기공을 익혔음에 틀림없었다. 몸을 부드럽지만 질기고 강인하게 만든 것 같았다. 하지만 생각은 나중이었다. 그가 충격에 잠시 멈칫하는 순간 왜도가 그의 허리를 쓸어오고 뚱뚱한 자의 공포스런 몸뚱이가 그의 등을 향해 다시 쏘아왔다.

담천의는 다급한 마음에 다시 두 발로 뚱뚱한 자를 차려는 듯 보였다. 그것은 뚱뚱한 자의 의도에 딱 들어맞는 일이었고, 그의 발길질을 맞으며 그의 발목을 그의 푸짐한 살로 감싸게 되면 그의 몸은 매우 부자연스럽게 될 것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에 자신의 형제는 그의 몸을 벨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한 급박한 순간에 담천의는 그의 발이 뚱뚱한 인물의 몸에 닿기 전에 검을 사각으로 세우며 베어오는 삐쩍 마른 왜도를 비껴나가게 만들었고, 그의 몸을 살짝 비틀자 전신진기를 실은 그 왜도는 기이하게도 뚱뚱한 인물의 몸을 가르고 있었다.

“억…!”

뚱뚱한 인물은 기괴한 외문무공을 익혔지만 날카로운 왜도가 살갗을 가르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몸이 무기가 됨은 분명했지만 병기에 베어지지 않을 몸은 아니었던 것이다. 한줄기 선혈이 허공을 가르며 뿜어졌다. 삐쩍 마른 자는 자신의 실책을 깨달은 듯 멈칫했다. 그 순간 담천의의 양발은 뚱뚱한 자의 몸을 순식간에 세 번이나 난타함과 동시에 그 탄력으로 몸을 날리며 삐쩍 마른 자의 심장에 검을 박았다.

“…!”

너무나 순식간의 일이어서 제대로 알아 볼 수 없을 정도였다. 살아남은 자들의 눈에 공포가 어렸다. 차 한 잔 식을 정도의 시간에 여섯 명 중 네 명이 죽고, 한 명은 팔이 부러졌으며, 도 한 명은 동료의 검에 중상을 입었다. 잔인했다. 일을 벌린 담천의 자신도 스스로 잔혹하다고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이미 세상을 적으로 돌린 그에게 있어서는 이보다 심한 일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팔이 부러진 여인이 벌어진 광경에 멍하니 있다가 몸을 홱 돌렸다. 부러진 팔을 덜렁거리며 도망가려는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옆구리가 뜨끔해지며 벌렁 그 자리에 누어야했다. 담천의는 몸을 돌려 뚱뚱한 인물을 내려다보았다. 허벅지서부터 옆구리를 거쳐 가슴까지 길게 찢어진 그의 몸에서는 피가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허연 비계가 비집고 나온 곳도 있었다.

아마 그가 미리 부부로 보이는 저 남녀를 미리 공격했던 것이 성공하지 않았더라면 이 자리에서 피를 흘리고 누었어야 할 인물이 자신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이들의 공격은 치명적이었고 힘든 싸움이었다.

“…!”

동정을 할 수도 있으련만 담천의는 냉랭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이제 상황은 역전되었다. 이제 그는 알고 싶은 것을 얻어내야 했다. 피가 떨어지는 검이 뚱뚱한 인물의 목 부위라 생각되는 곳에 멈췄다.

“네 놈 이름은?”

탈색되고 있는 뚱뚱한 인물의 얼굴에 까만 점이 뒤룩거렸다.

“나에게서는 아무 말도 듣지 못할 것이다.”

“좋군. 비계 속에 부러지지 않을 정도로 강한 뼈다귀를 가진 모양이야. 지금부터 내 질문에 대답을 하지 않으면 이 검은 한 치씩 뚫고 들어가 네 목 뒤로 나올거야.”

“그런다고 해서 달라질 게 있을까? 차라리 한 번에 콱 박아 주는 게 어때?”

뚱뚱한 인물은 비록 중상을 입고 칼이 목에 닿아 있어도 여유로웠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야 인간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겠지만 이미 살 가능성이 없음을 깨달은 그에게 미련이 남아 있지는 않았다.

“네 이름은…?”

“…!”

스윽---!

검은 비계를 뚫고 목으로 스며들었다. 피가 배어나왔다.

“네 이름은?”

기다렸다. 상대가 차가운 검의 감촉을 불에 데인 듯 화끈한 느낌이 들 때까지 기다렸다. 하지만 비계 때문이었는지 아직 못 느끼는 듯 했다.

스윽---!

검 끝이 더 파고 들어갔다. 뚱뚱한 인물의 몸이 움찔하며 부르르 떨렸다. 이제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자신의 살에 검을 박아 넣는 자를 바라보았다. 아무런 표정이 없고, 눈빛 마저도 감정이라 할만한 것이 떠올라 있지 않았다.

“네 이름은?”

아무런 감정 없이 똑같은 말을 반복하는 인간은 정말 공포스러웠다. 자신이 할 때는 몰랐지만 당해보니 더욱 공포스러웠다. 이 자는 정말 조금씩 검을 박을 모양이었다.

“단숨에 죽여준다면… 컥….”

그는 말을 멈췄다. 또 다시 검날이 더 파고들었다. 고통이 밀려왔다. 조금만 더 찔러 넣는다면 기도(氣道)에 구멍이 날 것이다.

“조건은 없다. 네 이름은?”

“대두자(大肚子).”

대두자란 배불뚝이를 가르키는 말이었다. 대두자란 이름을 듣자 담천의는 어렴풋이 기괴한 두 인물을 기억해냈다. 아마 이미 죽어있는 저 삐쩍 마른 자의 이름은 수조자(瘦条子)일 것이다. 대두자가 뚱뚱한 사람을 놀리는 것인데 반해 수조자는 바싹 마른 사람을 놀리는 말이었다.

그들은 복건성(福建省) 출신이었고, 그 지역에서는 상대가 없다고 하는 괴물들이었다. 의형제로 그들은 엉뚱한 짓을 많이 저지르던 인물들이었는데 그들의 내력에 대해서는 그리 많이 알려지지 않은 자들이었다.

“적절한 이름이군. 어디선가 들은 적도 있는 것 같군. 누가 시켰지?”

갑작스럽게 공포가 밀려오는 바람에 자신의 이름을 말했던 대두자는 잠시 후회했다. 그는 이어지는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너 아니더라도 아직 저 여자가 있어.”

스윽---!

숨이 막혀왔다. 하지만 그는 마지막 한순간을 노리고 있었다. 죽더라도 해야 할 일은 반드시 해야 했다. 그는 눈을 크게 뜨고는 얼굴근육을 씰룩거렸다. 아마 자기 딴에는 여유 있게 웃는 모습을 보이려는 것 같았다. 담천의가 그 의미를 몰라 잠시 멈칫하는 순간 보통사람 허벅지 보다 굵은 그의 팔이 움직이는 듯 했다. 하지만 그의 팔은 잔경련을 일으키다 동작을 멈췄다.

담천의의 검은 이미 그의 목을 뚫었고, 그의 오른 손 팔목은 담천의의 발아래 깔려 짓뭉개지고 있었다. 통통한 손가락 사이로 검은 빛을 띤 비침이 삐져나왔다. 분명 독을 묻힌 비침이었다. 그는 급히 시선을 돌려 팔이 부러진 여자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이미 숨을 쉬지 않았다. 얼굴까지 퍼렇게 변한 여자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죽은 자는 말을 할 수 없고, 죽음은 모든 것을 덮기 마련이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와 저 인생의 후반기를 풍미하게 될지도 모를 무협작품을 함께하고자 합니다.

이 기자의 최신기사 천지는 만인의 것이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보수논객 정규재 "이재명 1심 판결, 잘못됐다" 보수논객 정규재 "이재명 1심 판결, 잘못됐다"
  2. 2 사유화 의혹 '허화평 재단' 재산 1000억 넘나 사유화 의혹 '허화평 재단' 재산 1000억 넘나
  3. 3 중학교 졸업여행에서 장어탕... 이건 정말 '세상에 이런 일이' 중학교 졸업여행에서 장어탕... 이건 정말 '세상에 이런 일이'
  4. 4 남자선배 무릎에 앉아 소주... 기숙사로 가는 내내 울었다 남자선배 무릎에 앉아 소주... 기숙사로 가는 내내 울었다
  5. 5 [단독] 조은희 "명태균 만났고 안다, 영남 황태자? 하고 싶었겠지" [단독] 조은희 "명태균 만났고 안다, 영남 황태자? 하고 싶었겠지"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