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신+정'은 있지만 '천신정'은 없다?

[取중眞담]천정배 법무장관 입각과 '천신정'

등록 2005.06.28 19:36수정 2005.06.28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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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열린우리당 창당운동을 주도했던 권력그룹 '천신정'의 천정배·신기남·정동영.

열린우리당 창당운동을 주도했던 권력그룹 '천신정'의 천정배·신기남·정동영. ⓒ 오마이뉴스

'천신정.'

잊혀진 이름이었나 싶었다. 그런데 최근 천정배 의원의 법무장관 내정설이 보도되면서 이 이름은 다시 화려하게 언론지면을 장식했다. 일부 언론들이 천 의원의 법무장관 내정과 신기남 의원의 정보위원장 선출 등을 두고 '천신정 부활'이라는 자극적인 제목을 뽑은 것.

천정배·신기남·정동영의 약칭인 '천신정'은 민주당 개혁운동과 열린우리당 창당운동을 선도했던 권력그룹을 가리키는 용어이기도 하다. 하지만 '천신정'은 정동영 장관의 총선 불출마와 천정배 의원의 원내대표 사퇴, 신기남 의원의 당 의장 사퇴와 지도부 경선 탈락 등을 거치며 무너졌다.

"천신정체제는 이제 없어졌고 그 부활도 실체가 없다"

그런데 천 의원의 입각과 신 의원의 재기 등을 계기로 '천신정 부활'이 회자되고 있는데 그 근거는 아주 단순하다. 첫째, 여권의 차기 대권주자인 정동영 통일부장관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났다(김 위원장을 만난 건 차기 대선주자군 중에선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에 이어 두 번째다). 둘째, 지도부 경선 예비선거에서 탈락한 신기남 의원이 국회 정보위원장으로 화려하게 재기했다. 셋째, 지난해 연말 4개 개혁입법 처리 실패를 책임지고 원내대표를 사퇴했던 천정배 의원이 법무부장관에 임명됐다.

특히 여기에 신 의원이 정보위원장에 선출된 데는 정 장관의 적극적인 추천이 작용했다는 소문까지 더해져 틀어진 '신정'의 관계가 복원된 것 아니냐는 관측까지 나돌았다. 즉 정 장관이 정세균 열린우리당 원내대표를 통해 신 의원을 정보위원장에 적극 천거했다는 것. 하지만 신 의원쪽에서는 정 장관의 천거설에 대해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며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겉으로 보면 '천신정' 각자가 모두 '잘 나가고' 있어 '천신정 부활'이라는 제목이 그럴싸하게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열린우리당 내부에서는 "천신정 부활의 실체는 없다"는 관측이 더 유력하다. 세 사람이 현재 동일한 정치적 이해관계로 뭉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할지도 모를 판이다.


좀 오래된 일이지만 지난 3월 15일 기자와 만난 신 의원은 천 의원에 대해 "제일 좋아하는 동료"라며 "그와의 의리는 잘 지켜나갈 것"이라고 애정을 과시했다. 하지만 정 장관에 대해선 '문희상 후보 지원설'을 거론하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정치적 이해관계나 인간적 의리의 측면에서 '천신'은 여전히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천 의원과 신 의원 부부는 지난 전당대회 직후 영화를 함께 관람하기도 했다. 하지만 '신정'의 경우 소원한 관계가 풀렸다는 어떤 징후도 없다. 개인적 만남도 전혀 없었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천신'으로 묶일 가능성이 있지만 '천신정'으로 묶일 가능성은 현재로선 거의 없어 보인다.


여권의 한 관계자도 "천신정체제는 이제는 없어졌고 그 부활도 실체가 없다"며 "천은 천, 신은 신, 정은 정, 각자 마이웨이(my way)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a 몇가지 과정을 거치며 무너진 '천신정 체제'가 당장 복원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지난해 5월 17일 의장직을 사퇴하는 정동영 현 통일부장관.

몇가지 과정을 거치며 무너진 '천신정 체제'가 당장 복원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지난해 5월 17일 의장직을 사퇴하는 정동영 현 통일부장관. ⓒ 오마이뉴스 이종호


천정배 입각을 보는 세가지 시선...'여권주자 다변화'에서 '호남 배려'까지

그렇다면 천 의원의 입각은 어떤 의미와 배경이 있는 것일까? 가장 설득력 있는 시각은 '사법개혁 적임자론'이다. 여당의 한 관계자는 "천 의원의 입각은 철저하게 노 대통령의 의지에 따라 이루어진 일"이라며 "그가 사법개혁의 적임자라는 관점에서 그의 입각을 봐야 한다"고 주문했다.

노 대통령은 청와대 직속으로 사법개혁추진위를 두고 검찰의 권한을 약화하는 방향으로 형사소송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천 의원이 검찰개혁은 물론 최근 쟁점으로 부상한 검경 수사권 조정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합한 인물이라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여권 대권주자군의 다변화 전략 차원에서 바라보는 시각이다. 즉 차기 대권주자군의 폭을 넓히는 차원에서 천 의원을 입각시켰다는 것. 이는 천 의원의 차기 대권도전설을 기정사실화하는 시각이다. 원내대표 사퇴 이후 여의도에 캠프를 차렸다는 얘기가 나돌았다는 점에서 그의 대권도전설이 전혀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다.

천 의원이 입각함으로써 여권의 차기 대권주자군은 김근태 보건복지부장관과 정동영 통일부장관에 천 의원이 추가됐다. 여기에 정보위원장으로 선출된 신 의원도 잠재적인 대권주자로 분류할 수 있다. 정치감각이 뛰어난 노 대통령도 이렇게 '대권주자 다변화'라는 측면을 고려했을 것이다.

이와 관련 열린우리당의 한 의원은 독특한 시각으로 천 의원의 입각 배경을 분석했다.

"천 의원의 입각은 노 대통령이 레임덕을 준비하고 있다는 징후다. 대권주자군을 다변화하고 이들 사이의 '견제와 균형'을 통해 레임덕의 속도, 권력이동의 속도를 최소화하려는 속셈이 숨어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 시각은 '호남배려론'이다. 열린우리당에서 멀어져 가고 있는 호남 민심, 특히 전남·광주의 민심을 달래기 위해 전남 신안출신인 천 의원을 입각시켰다는 것. 실제로 현재 주요 권력요직을 호남출신들이 차지하고 있다. 천 신임 법무장관(전남 신안)은 물론이고 김승규 국정원장 내정자(전남 광양)와 김종빈 검찰총장(전남 여천)이 모두 전남출신이다.

특히 노 대통령이 '영남출신 낙선자 챙기기'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와중에 호남출신인 천 의원이 입각해 묘한 분위기가 연출되는 느낌이다.

a 만세 부르던 천신정 
지난해 5월 원내대표에 당선된 천정배 의원과 정동영 당시 당의장, 신기남 상임중앙위원이 손을 들어 의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만세 부르던 천신정
지난해 5월 원내대표에 당선된 천정배 의원과 정동영 당시 당의장, 신기남 상임중앙위원이 손을 들어 의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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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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