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정통무협 단장기 214회

등록 2005.07.05 08:11수정 2005.07.05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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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연교는 고통스런 표정으로 숨을 크게 몰아쉬는가 싶더니 고개를 왼쪽으로 꺾었다. 이미 죽은 것이다. 몽화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어 들었다. 점차 우려하고 있었던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더구나 자신의 수족과 다름없다는 연교였다. 다른 마음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곤 똑똑한 그녀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


다시 실내로 돌아 온 세 사람의 표정은 침중했다. 특히 몽화는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사태는 그녀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했다. 누군가가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나머지 세 아이는 상관없을까?

"만약…."

몽화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

"당신이 이곳을 떠나기 전 당신에게 위험이 닥치면 나 역시 위험에 처해있을 거예요. 내가 당신에게 부탁했던 내 목숨이란 것은 그것을 의미해요."

그 때 자신에게 와달라는 말이다. 담천의는 고개를 끄떡였다.


"반드시 약속을 지키겠소."

그는 말과 함께 몽화를 바라보았다. 이제 몽화를 믿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녀 역시 알 수 없는 위험에 처해있고, 그것이 자신과 관계있는 일이라고 말한 그녀의 말에 신빙성이 있어 보였다.


"살수집단이라 자세한 내막을 알 수는 없지만 문주라면 둘 중 한 곳에 있을 거예요. 항주(抗州)의 열락장(悅樂莊)이 아니면 소주(蘇州)의 낭구가(娘舅家)죠."

열락장(悅樂莊)은 항주에서 유명한 도박장(賭博場)이었고, 낭구가(娘舅家)는 소주에서 일종의 대부업과 전당포를 겸하는 곳이었다.

"그들의 인원은 약 이백명 정도로 추산되고, 대두자 정도의 일급살수들이 절반 이상이라고 생각되고 있어요. 특급살수만 해도 이십여명이 넘는다고 보면 될 거예요."

이미 그녀는 담천의의 생각을 읽고 있었다. 누가 생각해봐도 결론은 하나였다. 그는 분명 살천문을 찾을 것이고, 살천문 역시 이미 그를 노렸던 만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힘에 대해 알려줌으로서 섣부른 행동을 하지 못하게 미리 경각심을 불러 일으켜 줄 필요가 있었다.

담천의는 마음이 답답해왔다. 대두자와 같은 일급살수가 백 명 정도라면 아마 일개 문파의 힘을 능가하고도 남을 것이다. 더구나 백년을 넘게 존재해 온 살수집단이라면 보이지 않는 힘이 더욱 무서울 것이다. 자신 혼자의 힘으로 그들을 상대하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했다.

"헌데 당신과 내가 공동의 흉수를 찾고 있다는 말은 무슨 뜻이오?"

"결론을 내리기 전에 몇 가지 더 확인할 필요가 있어요. 섣부른 판단은 본회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어요. 본회의 존립 자체를 뒤흔들 수 있는 일이예요. 당신은 지금 바로 떠나고 싶겠지만 며칠 정도 이곳에 있는 것이 좋을 것 같군요. 나를 위해서도 말이죠."

그녀는 솔직하게 부탁을 하고 있었다. 연교의 죽음이 그녀의 예상을 확신시킨 것 같았다. 담천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준비해야 할 것이 있었고, 섣부른 행동이 가져 올 치명적인 결과를 알고 있었다. 너무 단순한 생각으로 가장 확실한 끈인 강명 장군이 죽게 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는 좀 더 치밀하고 은밀하게 움직일 필요가 있다고 느낀 터였다.

"알겠소. 언제 쯤 당신은 당신이 추측했던 일을 확실하게 내게 알려 줄 수 있겠소?"

"빠르면 사흘… 늦으면 닷새 정도."

"닷새 동안 이곳에 더 머무르겠소."

그의 약속에 몽화는 희미한 미소를 베어 물었다. 내심 안심이 된다는 표정이었다. 담천의가 말을 이었다.

"상화아가씨를 보내 주시겠소? 아무래도 잠시 나갔다 와야 할 것 같소."

그 말에 몽화는 그가 어디 가려는지 알 수 있었다. 그는 구양휘를 만나려 하는 것이다. 그것 때문에 상화에게 자신의 모습을 바꾸고자 하는 것이다. 상화 역시 연교와 같을 수 있지만 섣부른 오해는 더 나쁜 결과를 가져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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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과응보(因果應報)라는 게 있기는 반드시 있는 모양이었다. 부상당한 동료들을 자신의 손으로 처리해야 했던 그는 내심 회의(懷疑)가 일고, 마음이 찜찜했지만 살수의 세계에서는 있을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에게 닥칠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돈에 팔려 살수가 되기는 했지만 육십 평생 후회해 본 적은 없었다. 그것은 자신에게 적합한 직업이었고, 조직에서는 풍요로운 삶을 보장해 주었다. 그 하나의 희생으로 그의 동생들과 조카들은 먹을 것을 걱정하지 않게 되었고, 그는 그것으로 홀로 산 외로운 삶에 대한 보상을 받았다고 생각했다.

비록 냉정한 세계였지만 자신은 한평생 자신이 속한 조직에 충성했다. 벌써 손을 털어야 했지만 조직은 그를 놔주지 않았다. 그에게는 특이한 재주가 있었다. 어려서부터 사냥꾼인 아버지를 따라 다닌 것이 도움이 되었는지 함정과 덫을 놓은 데에는 타의추종을 불허했다.

더구나 조직은 나이가 들자 그만한 대접을 해주었다. 화북에 거점을 만들고 간혹 가다가 있는 청부를 지휘하는 일이었다. 직접 살행에 뛰어 들 것도 아니었고, 조직에서도 그것을 바란 바가 없었다.

이번 일 역시 마찬가지였다. 자신에게 떨어진 음호는 이 일이 매우 은밀하게 진행되어야 하며 대단한 큰 청부임을 암시했다. 더구나 피치 못해 실패할 경우에는 이번 일에 뛰어 든 조직원 전부를 죽이고 귀환하라는 명령이 기재되어 있었다. 내키지 않는 일이었지만 살아 돌아 온 두 명을 자신의 손으로 죽이고 최대한 조심스럽게 귀환하던 중이었다.

헌데 자신의 조직이 있는 그곳을 눈앞에 두고 그는 자신을 기다린 누군가를 만났다. 그는 자신을 노리고 있었고, 그것을 알아챘을 때에는 자신 역시 자신이 처리한 동료와 같은 신세가 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사십년을 넘게 죽음 속에서 살아 온 자였다. 필살의 공격을 가까스로 피한 후 그는 그의 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는 필사적으로 뛰고 있었다. 조직이 자신을 죽이겠다고 마음먹었다면 이 중원 어디에도 안전한 곳은 없었다. 이미 과도한 출혈로 그의 기력은 점차 떨어지고 있었다. 임시로 살을 지져 출혈은 멈추었지만 곪을 가능성도 높았다. 그래도 살아야 했다.

(왜…?)

조직은 왜 자신을 죽이려 하는 것일까? 아니 이런 의문은 사실 필요 없는 것일지도 몰랐다. 살수에게 있어 죽음이란 항상 삶과 함께 존재하는 것이다. 숨을 쉰다는 것과 숨을 멈춘다는 의미나 차이는 너무나 가까워 구별하기 어려운 것이 그들의 세계였다.

하지만 그는 지금 죽기엔 너무 억울했다. 정말 조직이 자신을 죽이려 하는지 알고 싶었다. 자신은 잘못한 것이 없다. 이번 일은 급조된 것이었고, 청부 대상 두 명 중 한 명도 제거했다. 그것은 본래 의도했던 것과 다름없는 목적을 달성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왜 자신을 죽이려 한단 말인가?

조직이 원하는 일인가? 아니면 조직 중 누군가가 의도하는 일인가? 알고 싶었다. 죽는 것이야 이제 살만큼 살았으니 미련도 없었다. 아내를 얻은 바도 없으니 자식이 있을리 없고, 동생들이야 이제 살만큼 살고 있으니 여한도 없다.

하지만 그는 서둘지 않기로 했다. 이런 시기에 무언가 알기 위하여 조직원을 만나는 것은 자기 무덤을 파는 행위나 마찬가지였다. 아주 어리석은 풋내기나 하는 짓이었다. 비록 형제와 같이 믿을 수 있는 동료라 할지라도 말이다.

그는 어디론가 스며들어 조용히 지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조직은 언젠가 자신을 찾아내겠지만 숨는 것에 있어서는 평생을 살수조직에 몸담은 그였기에 최대한 시간을 벌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은 충분히 있었다. 완전한 몸을 만든 후에 조심스럽게 조직의 의도를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육십년을 살아 온 노련함과 살수 특유의 후각이 썩은 내를 맡고 있었다. 분명 자신을 죽여 입을 막으려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이유를 알기 전에 죽는다는 것은 너무나 억울한 일이었다. 그는 여전히 쉬지 않고 달렸다.

그는 얼굴에 검흔이 두 줄기가 나 있는 초로의 노인 - 용화사의 혈겁을 일으켰던 그 자들의 조장인 곽흔이었다.

(제54장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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