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치회' 막차를 탔다

즐거운 만원짜리 밥상

등록 2005.07.13 16:40수정 2005.07.14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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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신안군 증도에 갔다 마지막 배로 나왔다. 새벽부터 서둘러서인지 점심에 짱뚱어탕과 짱뚱어회를 먹었음에도 허기가 져서 광주로 운전할 힘이 없다. 송도선착장에 도착하자 주저앉고 싶었다. 아침에 보았던 싱싱한 장어, 민어 그리고 특히 눈앞에 어른거리는 것은 ‘병어’였다.

a 만 원에 감동을 준 즐거운 밥상

만 원에 감동을 준 즐거운 밥상 ⓒ 김준

사실 전라도에선 ‘병어’라고 하기보다는 ‘병치’라고 해야 맛이 난다. 광주의 대표적인 수산물 시장인 남광주시장에서 병치회를 먹긴 했지만 그래도 해마다 병치철이 되면 위판장에서 ‘짝’으로 사다가 나눠 먹는데 이번 봄철에는 그냥 넘겼다.


송도에 도착하니 여름철이라 어둠이 깔리지는 않았지만 벌써 8시가 훨씬 넘었다. 아침에 요란하던 중매인들과 공판장에 가득한 새우젓 통들도 어디론가 팔려가고 없다. 전장포를 비롯한 칠산바다에서 잡히는 대부분의 새우들이 모이는 송도어판장이다.

한때 어판장을 가득 메웠던 병치들은 이제 새우젓에 자리를 내주고, 머지않아 여름철 대표적인 횟감 ‘민어’가 대신할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임자도에 ‘민어파시’가 섰을 정도로 민어가 많이 잡혔고, 잡히는 즉시 ‘상고선’(운반선)으로 옮겨져 일본의 미식가들의 식탁에 올랐다. 임자도 타리 백사장에는 일본인 주재소가 들어서고 수십 개의 막사들이 들어섰고 일본인 게이샤들도 있었다고 전한다.

a 아침일찍 잡아온 고기를 어판장으로 옮긴다.

아침일찍 잡아온 고기를 어판장으로 옮긴다. ⓒ 김준


a 위판장에 올라온 민어, 키로에 3만원씩 큰 것은 9만원에 팔렸다.

위판장에 올라온 민어, 키로에 3만원씩 큰 것은 9만원에 팔렸다. ⓒ 김준

급한 대로 어판장 인근에 식당을 찾았지만 밥을 먹기는 어려웠다. 따뜻한 밥에 병치를 얻어 된장과 마늘, 약간 매운 고추에 싸서 먹는다.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돌았다. 하지만 너무 늦은 시각이라 송도 인근에서 꿈을 이룰 수 없었다. 입안에 침은 계속 쌓이고 허기는 지고.

차를 급히 몰아 지도 소재지로 나왔다. 이제 시간은 9시를 넘어 섰다. 늦은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과일가게 아주머니에게 밥 먹을 만한 곳을 물었다. 바로 옆을 소개해준다. ‘갈비탕’부터 시작해서 메뉴들이 즐비하다. 허기가 졌지만 들어가고 싶지 않다. 그놈의 병치 때문이다.

소재지를 두 번이나 돌고 들어간 곳이 허름한 식당이다. 주인들도 일을 마치고 늦은 저녁을 들고 있었다. 불쑥 들어선 손님이 반갑지 않을 것이다.


“밥 좀 먹을 수 있어요.”
“밥이 다 떨어졌어요. 어떡하죠.”

할 말이 없다. 밥이 없다는데 어떡할 것인가.


“병치 좀 사가지고 가려고 하는데요. 병치는 있어요.”
“병치 열 마리만 주세요.”

a 어판장을 가득 채운 새우젓

어판장을 가득 채운 새우젓 ⓒ 김준


a 끝물 '병치'들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끝물 '병치'들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 김준

나중에 안 일이지만 주인은 금년에 처음으로 중매인이 된 사람이었다. 그래서 ‘냉겨 먹을 줄도 모르고, 곧이곧대로’ 장사를 하고 있다고 한다. 장사를 한 셈으로 안주인은 밥을 먹고 있는 남편에게 얼음을 박스에 담고 채비를 해달라고 부른다.

겨우 씻고 밥술을 뜨고 있었던 모양인데 미안하기 그지없다. 그래도 어떡하랴, 이렇게라도 해서 병치를 사가지고 가야 할 것 같은데. 미안한 김에 한마디 더 붙였다.

“증도 갔다 나오느라 밥을 못 먹어 배가 고픈데, 병치 한 마리 썰어주고 아홉 마리만 넣어주세요.”

주인도 어쩔 수 없었던지 부엌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쌀 씻는 소리가 들리더니 압력밥솥 소리가 들린다. 뱃속은 더욱 야단이다. 이제 소원이 풀리려는 모양이다. 남편이 저장고에서 병치를 빼 오더니 날 보고 “아침에 송도에서 만난 사람이 아니요” 그런다. 카메라를 들고 어판장을 싸돌아 다녔더니 기억을 한 모양이다. 이젠 확실하게 성공한 듯하다.

30여분이나 지났을까. 쟁반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밥에 김치, 젓갈, 병치회, 마늘, 된장 등이 올라왔다. 정신없이 먹어댔다. 꿀맛이다. 밥 한 그릇과 덕자(큰 병치로 제사상에 오른다) 직전인 큰 병치를 혼자서 먹어치웠다. 주인도 놀란다. 병치를 그렇게 좋아하냐고. 병치를 너무 좋아한다. 이렇게 맛있는 병치회 아무래도 내년에나 되어야 다시 먹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밥값과 병치 값해서 일 만원에 소원을 풀었다. 운전 탓에 소주를 한잔 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지만.

덧붙이는 글 | 식당을 공개합니다. 지도읍 '대지식당(061-275-3773)', 주인이 막 송도어판장 중매인을 시작한 탓에 너무 바쁩니다. 병치, 민어, 농어, 홍어 등 활어를 주문하면 입금확인하고 택배로 배달한다고 합니다.

덧붙이는 글 식당을 공개합니다. 지도읍 '대지식당(061-275-3773)', 주인이 막 송도어판장 중매인을 시작한 탓에 너무 바쁩니다. 병치, 민어, 농어, 홍어 등 활어를 주문하면 입금확인하고 택배로 배달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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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동안 섬과 갯벌을 기웃거리다 바다의 시간에 빠졌다. 그는 매일 바다로 가는 꿈을 꾼다. 해양문화 전문가이자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사진작가이기도 한 그는 갯사람들의 삶을 통해 ‘오래된 미래’와 대안을 찾고 있다. 현재 전남발전연구원 해양관광팀 연구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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