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중·동의 "대~한민국"

[김종배의 뉴스가이드] 8.15 민족대축전과 태극기, 그리고 인공기

등록 2005.08.11 08:50수정 2005.08.11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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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지난 4일 동아시아축구대회 남-북 축구국가대표 경기에서 관중들이 대형 한반도기를 펼쳐들고 응원하고 있다.

지난 4일 동아시아축구대회 남-북 축구국가대표 경기에서 관중들이 대형 한반도기를 펼쳐들고 응원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조·중·동이 모처럼 한 목소리를 냈다. X파일로 분열상을 보이던 조·중·동의 논조가 일치된 지점은 '광복 60주년을 맞는 우리의 자세'를 다짐하는 부분이다. 조·중·동은 이렇게 다짐했다. 국기와 국호를 수호하라!

조·중·동은 광복절을 맞아 서울에서 열리는 남북축구대회에서 태극기를 흔들지도, '대한민국'을 외치지도 못하게 한 대회 주최측과 정부의 방침을 맹렬히 성토했다.

<조선일보>는 이렇게 통탄했다. "국권의 회복을 기념하고 나라의 자주와 평화와 통일을 기원한다면서 그 모든 것의 기초가 되는 국호와 국기조차 내세우지 못한다면 이런 행사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중앙일보>의 공격은 좀 더 직설적이다. "'대∼한민국' 구호 제창과 태극기 응원까지 원천 봉쇄하겠다는 것은 지나치게 경직되고 치졸한 처사다."

<동아일보>도 마찬가지다. "해방공간의 좌우 갈등과 분단의 비극 속에서도 우리가 이뤄낸 빛나는 성취를 기념해 온나라를 태극기로 뒤덮어도 모자랄 판인데, 더구나 스포츠의 현장에서 태극기도 흔들지 말고 '대한민국'도 입에 올리지 말라니 과연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8.15행사인가."

조·중·동의 날선 공격에 외롭게 항전한 곳은 <한국일보>다. <한국일보>는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8.15행사인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8.15민족대축전'은 광복 60주년을 맞아 남북 화해와 공존, 그리고 평화통일 의지를 다지는 축제마당이다."

광복의 민족사적 의미, '8.15민족대축전'이 통일 여정에서 차지하는 의미는 방금 인용한 <한국일보>의 사설 한귀절로 갈음하자. 조·중·동이 이런 의미조차 몰라서 "국기와 국호를 수호하자"고 외쳤다면 그건 희극성 비극일 테니까.


여기서 짚고자 하는 문제는 다른 것이다. 조·중·동은 "국기와 국호를 수호하자"면서도 이런 사실을 함께 적시했다. "그동안 남북 공동 스포츠 행사에서 단일기인 '한반도기'를 써 온 관례"(<조선일보>), 더 나아가 이것이 관례가 아니라 "2000년 6.15 선언 이후 남북 공동행사에서는 서로 국호와 국기를 쓰지 않기로"(<동아일보>) 합의한 것이며 "(이런)합의는 그동안 관례로 굳어졌다"(<중앙일보>).

이런 사실을 잘 아는 조·중·동이 왜 유독 '8.15민족대축전'에 대해서만큼은 다른 주장을 펴는 것일까? 이에 대해 조·중·동은 "그래도∼"를 운위했다. <중앙일보>는 "그렇다 하더라도… 순수한 체육행사를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접근"했다고 비난했고, <동아일보>는 "더구나 스포츠의 현장(인데)…"라고 말했다. 또 <조선일보>는 "대한민국 수도 한복판에서 광복절을 기념하면서…"라고 주장했다.


조·중·동의 이런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순수한 스포츠 행사가 그 이유라면 시드니 올림픽과 아테네 올림픽에서 남북이 공동입장하면서 높이 쳐든 한반도기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국기와 국호의 고유한 성격이 남이 갖지 못한 우리만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데 있다면 더 크게 문제 삼아야 하는 건 '수도 한복판'의 한반도기가 아니라 시드니와 아테네의 한반도기 였어야 한다.

a 지난해 11월 17일 저녁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06 독일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예선 몰디브와의 최종전에서 대형 태극기가 펼쳐지고 있다.

지난해 11월 17일 저녁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06 독일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예선 몰디브와의 최종전에서 대형 태극기가 펼쳐지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a 지난해 12월 4일 오후 반핵반김국민협의회의 주최로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열린 '4대 악법저지 범국민 궐기대회'에서 북핵저지시민연대 회원들이 국가보안법 폐지가 북한 김정일 위원장의 지시에 의한 것이라며 김 위원장의 사진과 인공기를 불태우고 있다.

지난해 12월 4일 오후 반핵반김국민협의회의 주최로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열린 '4대 악법저지 범국민 궐기대회'에서 북핵저지시민연대 회원들이 국가보안법 폐지가 북한 김정일 위원장의 지시에 의한 것이라며 김 위원장의 사진과 인공기를 불태우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물론 조·중·동이 단순논리를 펴는 건 아니다. <중앙일보>는 태극기와 한반도기가 동반 등장했던 동아시아 경기대회 남북대결의 경우를 거론했다. 운영의 묘를 얼마든지 살릴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꽤 합리적으로 보이는 주장이지만 그것에는 현실적 문제가 있다.

<한국일보>는 "태극기를 허용하면 인공기도 사용토록 해야 하는데 이는 또 다른 논란을 부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한민국'의 '수도 한복판'에 조·중·동이 말하는 '주적' 북한의 인공기가 나부끼는 것은 조·중·동이 그토록 강조해 마지않는 '국가 정체성'을 크게 훼손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인공기 게양을 막으면 '8.15민족대축전'은 열릴 수 없다.

이런저런 사정을 감안할 때 눈 딱 감고 이번 한번만 인공기 게양을 허용하는 게 해법이겠으나, 이 또한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인공기가 온전히 나부낄 것 같지 않은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일보>는 바로 이점을 우려했다. "반북 성향의 보수단체들이…(행사 반대 의견을) 폭력적인 방법으로 표출하는"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 이에 대해 <조선일보>는 공자식 처방을 제시했다. "인공기를 태우(는)… 행위는 자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상황이 그렇게 녹록한 것 같지 않다. 보수단체에 자제를 당부한 <조선일보>의 사설 바로 밑에 다음과 같은 제목의 5단 통광고가 실렸다.

"저주의 굿판·분열의 깽판을 거부하고, 8.15 정오, 대한민국 편은 서울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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