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추석 앞둔 어민들에게 보너스를 주다

바다의 쌀밥 '세하'

등록 2005.09.01 12:11수정 2005.09.02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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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을 가르는 경운기 소리가 요란하다. 여름의 끝자락을 붙잡고 갯벌을 보겠다는 아이들을 끌고 제주 바다를 건너온 친구와 함께 잠에서 깨어났다.


아이들은 전날 갯벌에서 뛰논 것이 피곤했는지 김공장을 개조해 만든 갯벌배움터 '그레' 구석 모기장 속에서 소꿉장난 하듯 자고 있다. 쌀쌀해졌다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을 밤공기와 모기 탓에 겨울용 이불을 둘둘 말고 피곤을 베개 삼아 아주 편하게 잠을 잤다.

새벽 5시쯤 되었을까. 아직도 밖은 어둠이 가시지 않았고 밝음과 어두움 정도만 확인할 수 있다. 계화도 사람들이 돌과 흙을 어깨에 지고, 머리에 이고 방조제를 쌓은 동진강간척지(계화도간척지) 계류지가 블랙홀처럼 어둠에 빨려들고 있다. 그들은 이 간척지를 박정희씨가 만들었다고 '기억'한다. 땅을 준다는 말에 숱한 사연을 안고 신천지를 찾아와 젊음을 묻은 간척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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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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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새벽을 깨우는 소리

도대체 이렇게 사물이 잘 확인되지도 않을 때에 어민들은 경운기를 몰고 어디로 가는 것일까. 손이라도 세워 같이 가고 싶었지만 일행이 있어 그냥 길가에 서서 경운기를 주시했다. 조금을 넘어 '무쉬', 물이 많이 들고 나지 않는 때인데….

새만금 갯벌에 눈길을 주기 시작한 지도 벌써 6년에 접어들고 있다. 이제 이곳 갯살림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알 수가 없다.


지금 철이면 어민들이 갯벌에 나가 '생합'을 캐거나 '세하'를 잡거나 둘 중 하나를 할텐데. 이렇게 이른 시간에.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자전거를 타고 살금마을 앞 갯벌로 나갔다.

어둠을 가르며 외줄기 강한 불빛이 갯벌을 쏘아보더니 경운기가 굉음을 울리며 다가온다. 경운기는 시멘트 길을 벗어나 갯벌에 들어 갈 때 속도를 좀 낮추는가 싶더니 다시 적응을 했는지 냅다 소리를 지르며 사라진다.


이곳 경운기들은 대부분 트럭처럼 화물칸에 포장을 둘러치고 뒤에 생합을 잡는 '그레'를 걸고 있다. 화물칸 안쪽에는 자리가 몇 개 있다. 자리라고 해봐야 사람이 앉을 수 있는 똬리나 부류식 김발용 부표를 잘 눌러 앉을 수 있게 만든 자리가 전부다. 덜컹거리는 경운기 속에 그보다 좋은 자리는 없다.

화물칸 지붕위에 평소 보지 못한 긴 그물이 얹혀 있다. 저건 분명 이즈음에 잡히는 작은 새우 '세하(細蝦)'를 잡는 것이다. 갯벌로 들어간 경운기는 내가 확인한 것만 10여대. 그렇다면 내가 일어나기 전에 들어간 것 등 확인하지 않는 것까지 생각하면 족히 20여 대는 들어갔을 것 같다. 이들 중에는 생합을 잡기 위해서 들어간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아침을 먹고 갯벌에 들어가기 위해 채비를 하는데 다시 경운기 소리가 요란하다. 식전에 갯일을 하고 돌아오는 모양이다.

어렸을 적 시골에 살 때 아버지는 어둠이 가시기 전에 밖에 나가 퇴비를 한 짐씩 해 놓고, 낮에 할 일 채비를 마친 후 아침을 드셨다. 아마 여름철 계화도 어민들도 그럴 것이다.

벌써 여기저기 간척농지에서 수확하는 콤바인 소리가 요란하다. 이미 바닥을 드러낸 곳도 있다. 이들은 아침을 먹고 논으로 나가 물 빼기를 할 것이며, 밭으로 나가 빨갛게 익은 고추를 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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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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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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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갯가 물속을 걷는 사람들

오후 3시 무렵 새만금 전시관 아래 아주머니 몇 사람이 방조제 안쪽 둑에 앉아 잠방잠방한 갯벌을 심상치 않는 모습으로 응시하고 있다. 몇 사람은 어깨에 뭔가 메고 물속을 걷고 있다. 그 모습은 흡사 도심 수영장에서 수영을 못하는 나이 드신 분들이 레인을 따라 물속을 걷는 모습이다.

다만 뒤에 그물이 아가리를 벌리며 따라가는 것으로 보아 어깨에 둘러멘 것은 뭔가 잡는 것이 분명하다. 자세히 갯벌을 보니 한 두 사람이 아니다. 밖에서 대기하는 사람이 4명, 들어가서 그물을 밀고 있는 사람이 4명, 모두 8명이다.

부안의 작당마을, 왕포마을, 계화도 어민들은 7월 하순부터 8월 말까지, 늦으면 9월 초순까지 '세하'를 잡는다. 돼지 삶은 고기 혹은 머리고기를 먹을 때 함께 먹는 새우젓, 그것이 '세하젓'이다. 그것이 요즘에 잡히는 것이다. '세하'는 두어 달 잠시 보이다가 사라진다.

세하젓은 어민들에게 '숱한 존재들'이다. 별로 돈 들이는 것 없이 재미를 가져다준다. 세하를 잡는 '끄는 그물'이 5만여 원쯤 할 터인데, 이들 어민들이 잡는 세하는 1kg에 8천원에서 1만여 원에 이른다. 운이 좋은 날이면 오늘처럼 오전, 오후 하루에 두 물때를 보기도 한다. 모항 근처의 왕포마을에서 이곳까지 세하를 잡기 위해 찾아온 어민은 부부가 각각 그물을 메고 잡는다.

이들 부부가 잘 잡는 날이면 60여kg을 잡는다고 한다. 산술적으로 계산해도 두 달 동안 큰 벌이다. 바다는 참 용하다. 추석을 앞둔 어민들에게 목돈이 들어갈지 어떻게 알았던 것일까. 매일매일 물때에 맞춰 나가 잡는 생합으로는 갑작스레 목돈이 필요한 명절 지내기가 부담스럽다. 세하잡이 두어 달은 명절을 지내기에 부족함이 없다.

자연이 어민들에게 주는 보너스랄까. 그래서 간척지 나락이 누렇게 익어가고 고추밭에도 손길이 필요하지만 새벽에, 해질 무렵에 갯가로 몰려드는 새우를 찾아 어민들이 그물질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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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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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바다의 쌀밥, 새우젓

전주콩나물국에 맛을 더욱 깊게 해주는 것도 이 작은 새우로 담근 세하젓 때문이며, 삶은 돼지고기도 바로 이 새우젓이 없으면 재미가 없다. 뜨거운 국물을 들이켜며 '아! 시원하다'는 말을 가능케 했던 것도 새우젓으로 간을 맞추기 때문이다.

이제 막 그물질을 시작한 왕포 사는 부부가 하얀 쌀밥 같은 세하를 한 움큼 집어 입안에 넣어준다. 짭짤할 것을 생각했던 것과 달리 달짝지근한 맛이 입안에 감돈다. 순간 작은 새우는 바다에서 나는 쌀밥이 아닐까 생각했다. 내가 봐도 기막힌 발상이다. 스스로 빙그레 웃으며 우쭐하며 새만금 방조제와 전시관을 빠져나왔다.

새우젓이라고 모두 같은 것은 아니다. 잡는 철과 생김새, 색깔, 쓰임새에 따라 달리 부른다. 이렇게 구별해 이름을 붙이고, 음식에 따라 구분하여 사용하였다는 것은 일찍부터 인간과 관계맺기를 해왔다는 것을 말한다. 도대체 언제부터 젓갈을 먹기 시작했을까.

이럴 땐 꼭 기록을 따진다. 〈삼국사기〉에 신라 신문왕이 왕비를 맞을 때 폐백음식에 '해'(醢)가 등장하는데 이를 젓갈의 시초라고 말한다. 고려시대까지 가정용으로 만들어 먹다가 조선시대 들어 상업용 젓갈이 만들어졌다고 알려져 있다. 이 무렵에야 비로소 황포돛배에 길쭉한 젓동이를 배에 싣고 강경 포구, 줄포, 영산포 등지로 가져가 육지로 날랐던 것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젓갈에는 식해(食醢)도 포함된다. 함경, 강원, 경상 등 동해안 지역을 중심으로 발달한 식해는 생선에 쌀밥과 소금을 섞어 숙성시킨 식품이다. 갯벌이 있어 소금을 쉽게 접할 수 있는 서남해안과 달리 소금이 귀한 동해안 지역에서 생선을 오래 두고 먹을 수 있게 한 선조들의 지혜가 돋보인다. 이 때 사용하는 생선에는 동해에서 많이 잡히는 가자미를 비롯해 명태, 도루묵, 멸치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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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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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새우젓은 크게 잡는 철에 따라 '봄젓', '오젓', '육젓', '추젓', '동젓'으로 구분하며, 이외 작은 새우로 담는 '세하젓', '자하젓', '고개미젓', '백하젓' 등이 있다. 봄젓은 주로 3-4월에 잡은 새우를 이용하며, 반찬용으로 좋은 오젓은 오월에 담근 것이다. 오젓은 살이 단단하지 않고 붉은빛이 돈다. 유월의 새우는 육젓이라 하는데 흰 바탕에 연홍색을 띠며 껍질이 얇고 살이 많아 새우젓 중에 제일로 친다.

가을 철 잡히는 추젓은 온갖 잡것이 섞여 있어 당장 먹기는 좋지 못하나 두었다가 모두 삭으면 김장때나 일 년 놔두고 젓국에 쓰기에 알맞다. 찬바람이 나기 시작해서 겨울에 잡는 동백젓, 동짓달의 것은 동젓이라고 한다. 이때 잡히는 생새우를 갈아 넣어 김장을 하면 김치가 시원하고 맛이 좋다. 그밖에 눈처럼 흰 새우를 삭힌 백하젓, 분홍빛이 나는 자하로 담근 건대이젓, 아주 작은 새우로 담근 고개미젓 등이 있다.

부안에서도 갯벌 일대에 좋은 세하가 많다. 곰소 인근의 작당, 왕포의 주민들도 이곳에 와 세하를 잡는다. 색깔이 좋고 알이 실한 이곳 세하는 다른 곳보다 kg에 많게는 3-4천 원을 더 받는다.

덧붙이는 글 | 생태계의 일부인 사람들은 아득한 삼한시대 이전부터 이 갯벌에서 백합, 칠게, 바지락 등과 함께 질퍽한 삶을 이어왔습니다.

그러나 개발독재의 망령인 건설자본과 정치꾼들은 서로 야합하여 자신들의 야욕을 채우기 위해 지역 주민들을 속여 지구의 허파이자 자궁이자 콩팥인 갯벌, 만생명의 모태인 만경, 동진강 하구역 갯벌을 파괴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참여정부 들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에 새만금사업을 반대하는 부안사람들은 죽음의 방조제를 터서 갯벌을 살리자는 뜻에서 갯벌배움터 '그레'를 열고 누구나 와서 "갯벌 생명이 죽어갈 때 우리 인간도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도록 있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을 알리고자 2005 새만금생명평화문화제 "갯벌에 울려 퍼지는 백합의 노래"를 준비합니다.

출 연 : 이성원, 소풍가는 날, 별음자리표, 박창근, 새만금 지역주민들
일 시 : 2005년 9월3일(토) 4시 / 7시
장 소 : 나들목 정림마당(4호선 혜화역  2번출구, 1호선 종로5가역 3번 출구)
티 켓 : 20,000원(예매) / 22,000원(현매)
예 매 : 문화가 숨쉬는 장터 Disc4U (www.disc4u.co.kr) 
주 최 : 새만금갯벌배움터 "그레" (www.nongbalge.or.kr)
주 관 : 문화를 생각하는 사람들 (www.artizen.or.kr)
후 원 : 도서출판 그물코. 바람과 물 연구소. 환경운동연합. 녹색연합. 풀꽃세상을 위한 모임. 환경과 생명을 지키는 전국교사모임. 젊은 에코페미니스트 공동체 꿈꾸는 지렁이들의 모임. 부안새만금생명평화모임. 전북새만금생명평화연대. 도룡뇽의 친구들. 문화가 숨쉬는 장터 Disc4U
문 의 : 문화를 생각하는 사람들 (017-224-9818)

덧붙이는 글 생태계의 일부인 사람들은 아득한 삼한시대 이전부터 이 갯벌에서 백합, 칠게, 바지락 등과 함께 질퍽한 삶을 이어왔습니다.

그러나 개발독재의 망령인 건설자본과 정치꾼들은 서로 야합하여 자신들의 야욕을 채우기 위해 지역 주민들을 속여 지구의 허파이자 자궁이자 콩팥인 갯벌, 만생명의 모태인 만경, 동진강 하구역 갯벌을 파괴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참여정부 들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에 새만금사업을 반대하는 부안사람들은 죽음의 방조제를 터서 갯벌을 살리자는 뜻에서 갯벌배움터 '그레'를 열고 누구나 와서 "갯벌 생명이 죽어갈 때 우리 인간도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도록 있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을 알리고자 2005 새만금생명평화문화제 "갯벌에 울려 퍼지는 백합의 노래"를 준비합니다.

출 연 : 이성원, 소풍가는 날, 별음자리표, 박창근, 새만금 지역주민들
일 시 : 2005년 9월3일(토) 4시 / 7시
장 소 : 나들목 정림마당(4호선 혜화역  2번출구, 1호선 종로5가역 3번 출구)
티 켓 : 20,000원(예매) / 22,000원(현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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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최 : 새만금갯벌배움터 "그레" (www.nongbalge.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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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동안 섬과 갯벌을 기웃거리다 바다의 시간에 빠졌다. 그는 매일 바다로 가는 꿈을 꾼다. 해양문화 전문가이자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사진작가이기도 한 그는 갯사람들의 삶을 통해 ‘오래된 미래’와 대안을 찾고 있다. 현재 전남발전연구원 해양관광팀 연구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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