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수사 급물살? 아직 모른다

[김종배의 뉴스가이드] 검찰과 언론은 'X파일' 어떻게 다루고 있나

등록 2005.09.14 09:55수정 2005.09.14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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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의 X파일 수사가 급물살을 타는 것 같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며칠 사이에 검찰에서 흘러나오는 뉴스를 종합한 결과라고 한다.

언론의 이런 진단이 맞다면 반길 일이다. 하지만 언론 진단에 무조건 고개를 끄덕이기엔 검찰의 지난 행적에 대한 기억이 너무 선연하다.

언론이 검찰의 X파일 수사가 급물살을 타는 것 같다고 보도한 근거는 몇가지로 추려진다. ▲검찰이 지난 6일 97년 대선 당시 삼성그룹 비서실 재무팀장이었던 김인주 삼성 구조조정본부 사장을 소환조사한 점 ▲김종빈 검찰총장이 어제(13일) 삼성 수사가 가능하다고 언급한 점 ▲검찰이 '삼성의 기아자동차 인수 로비 의혹'을 고발한 민주노총 관계자를 조만간 불러 고발인 조사를 하기로 한 점 등이 그것이다.

그럴듯한 얼개다. 여기에 세풍사건 수사내용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한겨레>는 홍석현 씨가 97년에 삼성이 이회창 씨에게 건넨 돈 가운데 30억을 착복했다고 보도했고, <오마이뉴스>는 삼성 돈의 전달 장소가 홍석현 씨가 거주하던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앞 주차장이었다고 보도했다.

세풍이 검찰의 X파일 수사를 견인하는 양상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세풍사건 수사과정에서 삼성의 자금 제공 사실이 확인됐으므로 독수독과론에 의하더라도 별개 단서가 있는 경우에 해당돼 법리적으로 수사 착수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김 총장의 말도 같은 맥락에서 읽을 수 있다.

삼성과 대선후보의 고리는 '기아차 인수로비'... 수사 제한, 뒷말 남길 것

여기까지는 해석차가 발생할 소지가 없다. 문제는 '플러스알파'다. X파일 내용은 이회창씨에 대한 삼성의 불법 대선자금 제공 혐의만이 아니다. '삼성의 기아자동차 인수 로비 의혹', 그리고 '떡값 검사 의혹'도 X파일의 주요 구성 요소다.


'떡값 검사 의혹'은 일단 제쳐두자. 검찰 조사가 수사가 아니라 감찰이고, 따라서 그 대상이 현직 검사로 국한돼 있는데 무슨 '급물살'이냐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일단 제쳐두자.

추가 의혹 가운데 특히 '삼성의 기아자동차 인수 로비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는 삼성의 불법 대선자금 제공 의혹 수사의 향방을 재는 바로미터다.


X파일 내용에 따르면 삼성이 대선자금을 제공한 대상은 '여야 모두'다. 또 대선자금이 오가는 과정에서 여야 대선 후보측으로부터 기아자동차 인수와 관련된 '말'을 들은 것으로 돼있다. 불법 대선자금 제공 행위와 그런 행위를 저지른 동기를 모두 드러내주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불법 대선자금 제공 대상자 '모두'에 대한 수사, 그리고 불법 대선자금 수수과정에서 오갔다고 의심 되는 '거래', 이 모든 게 총체적으로 규명돼야 검찰 수사가 제대로 이뤄졌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즉 삼성이 이회창씨에 제공한 대선자금 부분만 제한적으로 수사할 경우 검찰 수사는 두고두고 뒷말을 남길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검찰이 '삼성의 기아자동차 인수 로비 의혹' 고발인을 불러 조사할 계획이라는 뉴스에 주목할 필요는 있다.

하지만 이 사실만으로 검찰이 본격 수사에 돌입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검찰이 예정한 조사는 고발인 조사다. 고발인 조사는 검찰이 수사 의지가 없더라도 한번은 거쳐야 할 통과의례다. 단지 고발인을 불러 조사한다는 것 하나만으로 검찰의 수사 의지와 방향을 단정하는 건 무모하고 위험하다.

중요한 건 고발인 조사가 아니다. 피고발인인 삼성은 물론 이회창·김대중 당시 대선 후보와 그 측근에 대한 조사까지 이뤄져야 검찰 수사는 비로소 완결된다. 하지만 검찰이 거기까지 나아가리라고 예상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언론에서 사라진 '274'

하나 덧붙이자. 어느 순간부터인가 언론에서 '274'라는 숫자가 사라졌다. 안기부 미림팀의 불법 도청테이프 274개가 검찰 창고에 고스란히 보관돼 있는데도 언론은 274분의 1인 X파일에만 온통 신경을 쏟고 있다.

X파일이 거대한 제방을 무너뜨리는 바늘구멍의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계단을 한꺼번에 뛰어넘을 수 없다는 현실적 판단을 했을 수도 있다.

그렇다해도 언론의 소극성이 너무 심하다. 김총장이 어제 "(274개 테이프) 내용을 공개하는 것은 기본권을 침해하고 현행법(통신비밀보호법)에도 저촉되는 만큼 곤란하다"고 말했는데도 이에 토를 단 언론은 없다.

김총장 스스로 "증거로 쓸 수 없으니 수사 단서로도 쓰면 안된다는 견해와 증거 여부와 달리 수사 단서로는 쓸 수 있으니 국가적 이익을 고려해 수사를 해야한다는 견해도 있다"며 논란의 소지를 인정했는데도 재차 논란을 제기하는 언론은 없다.

'어떻게 될 것인가'에 관심을 쏟는 것 못잖게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공론화하는 것도 주요 책무라는 사실을 언론은 인정하지 않는 듯하다. "듣기 좋은 꽃 타령도 삼세번"이란 사고가 언론에 너무 넓게 퍼져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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