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당최 혼란스럽다

[김종배의 뉴스가이드] '대북 퍼주기', 하란 말이야, 말란 말이야?

등록 2005.11.04 09:20수정 2005.11.04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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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한나라당 의원총회에서 박근혜 대표와 강재섭 원내대표가 전교조 부산지부가 제작한 `반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교육 동영상 자료`를 시청한뒤 뭔가를 심각히 논의하고 있다.

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한나라당 의원총회에서 박근혜 대표와 강재섭 원내대표가 전교조 부산지부가 제작한 `반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교육 동영상 자료`를 시청한뒤 뭔가를 심각히 논의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의아하다. 그리고 혼란스럽다. 한나라당의 태도를 보면서 드는 느낌이다.

강재섭 원내대표는 지난 2일 "앞으로 한나라당이 '퍼주기'란 용어로 대북지원을 비난하는 것은 삼가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이 경제적으로 너무 기울어지면 통일이 불가능하므로 일정 부분 지원해야 한다, 따라서 대북지원을 '퍼주기'로 매도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또 이런 말도 했다. "우리가 한 건 해줬으니 북한도 한 건 해줘야 한다는 엄격한 상호주의를 지양해야 한다."

강 대표의 발언은 상당히 전향적이다. 그의 당내 위상을 고려할 때 무게감도 느껴진다. 한나라당 혁신위원회가 전략적 상호주의를 폐기하고 상호공존정책을 채택하기로 결정한 바도 있기 때문에 한나라당의 노선으로 봐도 무방할 것 같다.

그런데 이건 또 뭔 일인가? 같은 당의 김용갑 의원은 "정부가 국민 동의도 구하지 않고 대북전력 지원을 위해 빚까지 내겠다는 것이야말로 '왕퍼주기'"라고 주장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혼란

김 의원의 '소신'을 익히 아는 터라 '그러려니' 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가 않다. 이번엔 이규택 의원이 나섰다. "국채를 발행해 북한에 전기를 지원하겠다는 것은 집에서 애들은 쫄쫄 굶는데 은행대출을 받아 옆집을 돕는 격"이라고 말했다. 이 의원은 한나라당 최고 지도부인 최고위원 가운데 한명이다.

이들이 문제 삼은 것은 대북 전력지원이다. 이들이 몸담고 있는 당이 이미 동의한 사안을 당의 최고위원까지 나서 재차 걸고넘어진 것이다. 그래서 혼란스럽다.


이 뿐만이 아니다. 강정구 교수 파동을 접한 한나라당은 국가정체성을 지키겠다며 장외투쟁까지 선언했다. 이 광경을 지켜본 홍준표 의원은 적당히 하라고 했다. 국가정체성 지키기 구국운동은 선거용이라는 시각도 슬쩍 내비쳤다. 홍 의원은 상호공존정책을 채택한 혁신위의 위원장이었다.

홍 의원은 적당히 하라고 했지만 당 지도부는 10.26 재선거 직전까지 국가정체성 구국운동을 밀어붙였고, 선거 후에는 과녁을 전교조로 바꿔 제2의 국가정체성 지키기 운동에 돌입했다. 전교조가 국가정체성을 훼손하는 '주입식 이념 교육'을 하고 있다며, 그 사례로 이번에 문제가 된 'APEC바로알기' 공동수업 동영상 자료 외에 국가보안법 토론 수업 등을 들었다.


그리고 1부와 2부로 구성된 국가정체성 지키기 구국운동 대열 맨 앞엔 '퍼주기' 용어를 쓰지 말라고 말한 강 대표가 있었다.

어떻게 봐야 할까? 곁가지 발언을 걷어내고 당 지도부의 공식 입장만을 추리면 혼란스런 외양은 걷힌다. 대북 노선은 유연, 대내 노선은 강경이다. 북한에 대해서는 평화공존, 상호교류, 화해의 기조를 펼치면서도 남한 내 이념문제에 대해서는 강경기조를 유지하는 모습이다. 국가정체성까지 거론하면서….

가닥을 잡은 듯 했던 판단은 이 지점에서 다시 혼란에 빠진다. 국가정체성을 훼손하는 반국가단체의 몸통 북한과는 상호공존을 추진하면서도 '북한 추종세력', 즉 깃털에 불과하다는 남한 내 일부 인사와 단체에 대해서는 핏대를 올리는 처사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이해 못할 바도 없다. 한나라당이 주장하는 '국가정체성'이란 단어만 버리면 된다. 그 단어를 '정치적 이익' 정도로 바꾸면 머리 속은 말끔해진다.

전쟁과 전투

한나라당의 이런 행보가 오래 가지는 않을 것 같다. 개헌 국면이 조성되면 한나라당은 선택해야 한다.

여권은 헌법상의 영토조항이 개헌 논의에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한민국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는 헌법3조를 현실에 맞게 고쳐야 한다는 주장이다. 상호공존의 토대 위에서 교류협력을 확대해야 하는 현실을 감안할 때 영토조항은 족쇄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한다는 것이다.

한반도 주변열강도 이 점을 인정하고 있다. 맹방이라는 미국조차 한반도 평화협정을 운위하고 있다. 평화협정이란 게 뭔가? 남북한 공존을 전제로 한 것 아니던가.

또 있다. 절반이 넘는 국민도 영토조항 수정에 공감하고 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여론조사기관인 TNS에 의뢰해 전국 성인남녀 700명을 대상으로 지난달 31일 실시한 조사 결과 53%의 국민이 "남북간의 현실적 관계를 고려해 북한을 국가로 인정해야 하므로 (영토조항 개정에) 공감한다"고 응답했다.

좌우를 둘러보건 앞뒤를 둘러보건 영토조항 개정에 다수가 동의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나라당은 영토조항의 아들격인 국가보안법을 주력화기로 삼아 이념전을 치르고 있다. 전세가 기울고 있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국지적 전투에만 골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행위의 결과가 어떤 결과를 빚을지는 자명하다. 굳이 병법을 거론할 이유도 없다. 그 결과는 '고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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