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도시 부하라에 도착하다

[중앙아시아 여행기 7] 천년의 고도(古都) 부하라 1

등록 2005.11.28 13:24수정 2005.11.28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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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르칸트의 기차역 앞은 많은 택시와 버스들로 오전부터 붐볐다. 타슈켄트와 부하라로 가는 합승택시를 타는 사람들, 호객을 하는 운전기사들과 흥정을 하는 승객들 그리고 많은 시내버스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택시를 타고 부하라에 가기로 결정한 나는 부하라로 가는 합승택시를 골라 탔다. 가격은 30달러. 나 혼자 30달러를 내는 게 아니라 함께 택시를 타는 사람들과 나누어서 낸다.

대중교통이 많이 발달해있지 않은 우즈베키스탄에서는 도시에서 도시로 이동할 경우, 이런 식의 합승택시를 많이 이용한다. 이런 장거리 택시는 주로 대우의 티코나 넥시아(씨에로)가 많다. 차종에 따라서 요금도 차이가 있는데 보통 티코를 이용할 경우, 넥시아의 요금보다 5달러 정도 싼 편이다. 오전에 출발하면 오후에 도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중간에 식당에서 밥을 먹게 되는데 이때 운전기사의 밥값도 택시 승객이 지불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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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하라 가던 길에 점심으로 먹은 양고기 국과 삼사. ⓒ 김준희

부하라는 사마르칸트에서 서쪽으로 300 km정도 떨어진 도시다.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종교적인 도시이자 세계적으로 오래된 도시다. 실크로드의 주요 도시 중 하나기도 했기에 과거에는 수많은 대상숙소들이 있었다. '부하라'는 산스크리트어로 '사원'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현지인 2명과 함께 타고 사마르칸트를 출발한 택시는 오후 3시 경에 부하라 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다. 여기서 다시 택시를 타고 부하라 관광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라비하우스에서 내린 나는 배낭을 메고 근처에 많이 있는 B&B 호텔을 찾았다. 'Sasha & Son'이라는 이름의 작은 호텔에 들어서자 청바지를 입은 늘씬한 젊은 여인이 나를 맞아주었다.

"방 있어요?"
"예. 있어요"
"하루에 얼마에요?"
"35달러요"

너무 비싸다. 난 놀라서 되물었다.

"35달러요? 너무 비싸요."
"얼마 예상했는데요?"
"아침식사 포함해서 20달러요."
"잠깐 기다려보세요."

그녀는 안쪽으로 들어가더니 잠시 후에 열쇠를 하나 들고 나타났다.

"20달러짜리 방이 하나 있어요. 이쪽으로 와요."

2층으로 올라간 그녀는 방 문 하나를 열어서 나에게 보여주었다. 혼자쓰기에 적당한 작은 방이다. 침대가 하나 있고 냉장고, 에어컨, 화장실과 샤워실도 있다. 난 이곳에서 4일을 묵기로 하고 짐을 풀고 밖으로 나섰다.

내가 묵기로 한 숙소 앞에는 라비하우스(Labi Hauz)라는 이름의 연못이 있다. 17세기 초에 만들어졌다는 이 연못 주변에는 3개의 인상적인 건물, 노디르 디반베기 메드레세와 쿠켈다쉬 메드레세 그리고 노디르 디반베기 하나카(대상숙소)가 있다. 메드레세는 과거에 신학교로 사용되었던 곳인데 지금은 기념품 가게와 찻집으로 바뀌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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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못 라비하우스. 뒤쪽은 쿠켈다시 메드레세 ⓒ 김준희

라비하우스 주위에는 현지인들이 많았다. 나스레딘 동상 옆에는 할아버지들이 장기같은 것을 두고 있었고, 주위의 노천카페에서는 대낮부터 술을 마시는 아저씨들도 있었다. 그리고 노천카페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은 연신 물통으로 라비하우스의 물을 길어 나르고 있었다. 나는 노천카페의 한 테이블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부하라는 조용했다. 거창한 타슈켄트나 사람들로 번잡했던 사마르칸트와는 달리 이곳은 한적했다. 큰 대로도 없고 큰 건물도 없다. 돌아다니는 차도 별로 없다. 라비하우스 주위로 많은 유적이 모여 있는 이곳은 커다란 야외박물관처럼 도시가 온통 이슬람 유적과 건물들이다. 과거 약 400개에 육박하는 모스크와 메드레세가 있었다는 부하라는 이슬람 건물 수로만 따지자면 사마르칸트를 능가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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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디르 디반베기 메드레세 ⓒ 김준희

라비하우스 앞에는 나스레딘 호자의 동상이 있다. 당나귀에 앉아서 손을 들고 있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이다. 나스레딘 호자는 터키의 아나톨리아 반도에서 중앙아시아 동부까지 널리 알려진 해학적인 이야기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인물이다. 실존인물인지 아닌지 불명확한 이 인물은 특히 부하라에서 유명한 듯 부하라의 많은 기념품 가게에서는 그의 조각상을 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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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비하우스 앞에 있는 나스레딘 호자 동상 ⓒ 김준희

커피를 마신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본격적인 구경은 내일부터 하더라도, 오늘은 그냥 지도를 보면서 이 주변의 거리나 익혀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라비하우스에서 서쪽으로 가다보면 유명한 칼랸 미나레트와 미리아랍 메드레세 그리고 아르크 성이 차례로 나온다. 부하라는 작은 곳이다. 굳이 타슈켄트와 비교할 것도 없이 사마르칸트와 비교하기만 하더라도 이곳은 작은 마을 같은 그런 느낌이다. 라비하우스를 중심으로 하는 구 시가지를 산책하듯이 걷다보면 주요 유적을 모두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 한 아이가 다가왔다.

"펜!"
"펜?"

한 6살이나 되었을까. 이번에는 오른손으로 뭔가를 쓰는 시늉을 하며 같은 말을 반복했다.

"펜!"

처음에는 이게 무슨 뜻인지 몰랐다. 뭔가를 쓰는 시늉을 하기에 나더러 사인을 해달라는 뜻 인가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이 아이는 나에게 볼펜을 달라고 하고 있었다. 뜬금없이 웬 볼펜?

이 아이를 시작으로 해서 부하라에서 내게 볼펜을 달라고 하는 수많은 아이들과 마주치게 되었다. 타슈켄트와 사마르칸트에서는 볼 수 없었던 일이다. 하긴 그 도시에서는 어린아이들을 본 기억이 별로 없다. 작은 도시라서 그런지 부하라에는 동네를 뛰어다니는 아이들이 많았다. 예전에 누가 이곳에 와서 볼펜을 몇 다스 뿌리고 간 적이 있었는지, 이 아이들은 하나같이 나에게 볼펜을 달라고 하고 있다. 미로같은 길을 지나서 나에게 쵸르 미노르를 안내해준 아이는 끊임없이 '머니'를 요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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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개의 탑, 초르 미노르 ⓒ 김준희

처음에는 귀찮아서 '그냥 몇 백 원 주고 말까' 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곧 생각을 바꾸었다. 이 작은 곳에서 내가 돈을 주었다는 소문이 퍼지기라도 하면 그때부터는 정말로 피곤해지기 시작할 것이다.

이런 아이들을 보고 나니까 부하라의 또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라비하우스 주위에는 대형 버스들이 늘어서 있고 거기에서 내린 듯한 서양인 관광객들이 무리를 지어서 다니고 있었다. 사마르칸트보다는 작은 곳이지만 사마르칸트 못지않게 많은 볼거리가 있는 부하라. 수많은 외국인들이 관광시즌마다 들락거리는 이곳에는, 관광객들을 상대로 하는 기념품 가게와 상인들의 수가 사마르칸트보다 더 많아 보였다. 그리고 외국인들을 호객하는 아이들의 숫자도.

라비하우스 주위를 둘러보다가 굼바스라고 부르는 곳까지 걸어가 보았다. 굼바스란 고전적인 상가건물을 가리키는 용어라고 한다. 이슬람 양식의 둥근 돔들로 만들어진 낮은 건물이다. 이 안으로 들어가면 기념품 가게, 양탄자를 파는 가게, 먹을거리를 파는 가게, 약국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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굼바스. 좌측 뒤편으로 칼랸 미나레트와 미리아랍 메드레세가 보인다. ⓒ 김준희

이전에 대상들이 부하라를 왕래할 때는 이 곳이 상업시설의 중심이었을 것이다. 다양한 국적의 상인들이 오고가던 곳이라서 환전소의 역할도 했다고 한다. 지금은 커다란 바자르와 현대식 마켓들이 부하라의 곳곳에 있긴 하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굼바스는 멀쩡한 겉모습과 함께 작은 바자르의 역할도 겸하고 있었다.

다시 라비하우스로 돌아와서 노천 카페에 앉았다. 뙤약볕 속에서 장거리 택시를 타고오느라 피곤하긴 했지만, 숙소로 들어가고 싶지는 않았다. 조용한 라비하우스에 앉아서 우스꽝스러운 나스레딘 호자의 동상을 바라보면서 부하라의 분위기를 좀더 느껴보고 싶었다. 본격적인 부하라 구경은 내일부터다.

 

덧붙이는 글 | 2005년 7월부터 10월까지 4개월간 몽골-러시아(바이칼)-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키르키즈스탄을 배낭여행 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2005년 7월부터 10월까지 4개월간 몽골-러시아(바이칼)-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키르키즈스탄을 배낭여행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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