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벌이닷! 엎드려! 머리 박아!"

[동무들의 악다구니 12] 즐거웠던 '땅벌소탕대작전'

등록 2006.01.03 19:00수정 2006.01.04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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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전 여름 홍천 내촌면 어느 마을 사람들은 땅벌 애벌레를 농촌활동 온 여학생들에게 나눠줬다. 나그네였던 나는 먼발치에서 행여 내게도 고름마냥 징그러운 벌 새끼를 줄까봐 보신탕만 축내고 있었다.


몇 명은 기겁하며 도망갔지만 멋모르는 여학생 몇은 청년들이 단백질 덩어리라니 넙죽 받아먹는다. 지금도 그 생각만 하면 비위가 좋기로 소문난 나로서도 기억하고 싶지 않을 만큼 몸서리가 쳐진다. 아무리 몸에 좋다한들 여직 굼벵이를 입에 대보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런 땅벌이 겨울 경동시장에 가면 즐비하다. 한 덩어리를 망에 싸매놓고는 6만원을 부른다. 큰 것은 8만원, 때론 10만원을 호가하는 경우도 있다. 집 째 술에 담가먹거나 생강과 꿀에 재면 가래나 해소에 좋다고 하니 아마도 지금쯤 시골마을 땅이 파헤쳐진 건 땅벌집을 드러내고자 한 사람들의 욕심의 단면을 보여주는 달갑지 않은 광경이다.

어릴 적에 벌과는 친하다면 친하고 악연이라면 악연인 관계를 두루 쌓았다. 버찌 따먹다가 발에 50여 방 넘게 쏘여 학교에 가지 못했던 일에서부터 군 입대를 앞두고 친구와 둘이서 어른들 흉내를 내며 여인네 모자에 벌을 쓸어 담다가 100방이 넘는 벌에 쏘여 감나무에서 떨어지기까지 목숨을 걸도록 혼쭐이 났던 사건 등 일상에서 겪을 만큼 벌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막역한 사이라고나 할까. "허허" 벌을 생각하면서 웃음이 나오다니!

벌초할 무렵 여름 더위를 머금은 벌이 독을 한껏 품어 기승을 부린다. 그 무렵에 쏘이면 간장을 바르는 것으로도 모자라 중화시킨다며 간장을 한 바가지 제대로 들이켜야 하니 짠맛도 그러려니와 결코 몸에서 떠나지 않은 지독한 간장 냄새는 환각상태 직전의 절은 느낌으로 결코 지울 수 없는 고역이었다.

통상 일벌은 사람을 쏘면 똥구멍이 쏙 빠진다. 침도 커서 손으로도 쉽게 빼낼 수 있으니 돈 안 들이고 봉침 한번 맞았다고 생각하고 하루 이틀만 지나면 그만이다. 뜨끔한 아픔은 제들도 죽음으로써 화답하니 1:1로 비겼다. 따라서 여간해선 사람에게 큰 미움을 살 일은 없다.


a 땅벌이 있는 자리에 불을 놓고 황급히 도망가는 시골 촌놈들은 지금 무얼 하며 살고 있을까?

땅벌이 있는 자리에 불을 놓고 황급히 도망가는 시골 촌놈들은 지금 무얼 하며 살고 있을까? ⓒ sigoli고향-맛객

말벌과 대추벌 따위, 그리고 오늘 주인공이자 전라도에선 '땡끼벌' 경상도에선 '땡삐'로 불리는 땅벌은 송충이나 쐐기만큼만 따끔할 뿐 별다른 재앙을 주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한두 마리에 걸려 쏘였을 때를 가정한 것이다. 유일하게 땅굴에서 사는 요놈들이 배가 고파지면 상황은 180도 달라진다.

단지 베짱이처럼 게으름뱅이여서가 아니라 물어 나르는 꿀 양이 절대적으로 적어 제들 먹고 새끼까지 키우며 기나긴 겨울을 나기 위한 몸부림은 처절하다. 재래식 화장실을 제집 드나들 듯 분주히 오가는 것도 염분만 섭취하기 위한 행위가 아니다.


추위가 절정에 오르면 맥을 못 출 거라는 상식을 깨는 예상 밖의 요물이다. 죽기 살기로 추위를 견뎌가며 해가 잘 들이미는 노릇노릇한 잔디가 고루 깔린 언덕배기에 둥지를 틀고는 오가는 사람에게 해코지를 하기 일쑤다.

나락 다발을 나를 때부터 나뭇짐을 지고 다닐 때에도 전혀 흐트러짐 없이 공격 행위를 일삼는다. 그 때마다 괭이로 긁어서 추위에 떨도록 해보지만 무용지물이다. 청년들부터 아이들까지 회관이나 골방에 모여서 어디서 당했으며 한두 마리가 아니라는 둥 그 놈들이 못살게 군 여러 만행이 속속 보고 되면 원수 같은 땅벌소탕작전을 위한 모의가 시작된다.

어김없이 매양 그곳이거나 한두 곳이 추가될 뿐이다. 12월 크리스마스 무렵이든 1월 소한 때로 택일을 한다. 각자 소임이 맡겨지고 맑은 날 오후 서너 시쯤으로 시까지 받아놓았다. 짚다발 두 개를 들고 성냥 곽에 모자가 있는 옷을 단단히 채비를 하여서는 원정길에 나서니 오늘 한번 그 시절로 가보자.

병아리 오줌만도 못한 햇볕을 나눠 쬐며 한 무리 동무들이 집을 나섰다. 논바닥에 깔린 눈은 된바람에 일어나 소용돌이치듯 깨어 귓전을 마구 때린다. 삶은 물고구마에 김치를 얹거나 동치미 국물이 최고지만 악당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이 정도 추위쯤은 감수해야 하는 것 아닌가.

마치 전장에서 고지를 포위하기 위해 높을 포복을 하듯 자세가 낮춰졌다. 모두가 지목하는 그 지점이 가까워지자 서로 다가가지 않으려고 발을 빼는 모습이 역력하다. 누차 작전회의를 했건만 다들 한심하게 꽁무니를 빼는 꼴이라니.

"얌마 형근아, 니가 맨 먼저 가기로 했잖어?"
"가만 있어봐야. 상황은 좀 봐야 될 것 아니냐. 그러면 니가 먼저 가든가."
"이 새끼 지금 와서 딴말 하고 있네."
"알았으니까 좀 기다려봐."
"후딱 해치우고 와야지 미적거렸다가 도루묵 되겠담마."

한 해 거른 결과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마음을 추슬러 언덕배기로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갔다. 그 자리만 눈이 녹아 있다. 5! 4! 3! 3m 앞에 이르자 티끌인지 땅벌이 들락거리는지 뭔가 움직인다. 다들 아무 말 않고 넙죽 엎드렸다.

잠시 뒤, 분명 양지바른 그곳엔 땅벌 서너 마리가 늘 도사리며 우리를 지켜봤다. 나도 '이를 어쩌지'하며 그만둘까 궁리를 했다. '아냐, 여기까지 나온 거 사나이가 아냐. 꼭 해치워야 돼'라 다짐하고 아이들 엉덩이를 들이 밀었다.

겁 없는 형근이가 그래도 이럴 땐 최고다. 짚다발을 가져가서 조심히 내려놓았다. 같이 간 병주는 짚을 멀리 떨어진 곳에 내팽개치듯 버려놓고 왔다. 그래도 이젠 2진이 가서 확 불을 댕기면 된다.

날렵한 해섭이와 내가 성냥집을 들고 북북 기어 다가갔다. 속으로 하나, 둘, 셋을 세어가며 성냥집에 성냥골을 그어대도 불이 붙지 않았다. 다급한 마음에 도망 와버릴까 생각하고 있는데 해섭이는 성공하여 불이 활활 타오른다.

"뛰어!"
"엎드려!"

마구 뛰어서 논두렁 밭두렁 아래로 몸을 파묻듯 처박았다. 자칫 넘어지기라도 하는 날엔 땅벌 수십 마리가 옷 속으로 기어들어와 벌집을 만들어 놓으니 이 때 제일 좋은 방법이 36계란 건 삼척동자도 아는 것 아닌가.

한갓 미물이지만 사람과 서로 장점이 다르다. 우린 그렇게라도 그들에게 치명타를 입히지 않으면 안 되었다. 망을 보았다. 어느새 한 다발이 다 탈 즈음이었다. 남은 한 더미를 가져가 마저 태워야 한다. 가위 바위 보로 걸린 사람이 병문이었다.

기력이 쇠하긴 했지만 만에 하나 잔당들이 버티고 있을지 모르니 병문이 몸은 여전히 굳어 있다. 가까스로 다가가 짚을 던져놓고 도망 온다. 다시 불이 활활 타오르며 초토화를 시키고 있었다.

결코 간단치 않은 작전을 무리 없이 수행한 우린 노획물을 획득하기 위해 괭이를 들고 접근했다. 까만 재만 남았을 뿐 별다른 흔적이라곤 없다. 짚불에 적당히 녹아서 쉽게 땅굴을 헤집듯 파 나갔다.

이리저리 파며 한참을 골똘히 우리를 괴롭혔던 땅벌 소굴 내부를 뒤졌다. 아니나 다를까 비축한 식량은 많지 않고 타죽은 벌만 몇 마리 널려 있었다. 시원섭섭하게 작전이 끝났지만 아이들은 못내 악당이 없어짐을 아쉬워한 듯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왔다.

덧붙이는 글 | 김규환 기자는 1월 5일(목) 고향느낌이 솔솔나는 인터넷고향신문 시골아이 고향  www.sigoli.com을 창간합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김규환 기자는 1월 5일(목) 고향느낌이 솔솔나는 인터넷고향신문 시골아이 고향  www.sigoli.com을 창간합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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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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