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권', 인권과 어떻게 구별될까

[헌법재판 오디세이 15]인권과 기본권

등록 2006.01.09 10:20수정 2006.01.09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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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이라는 말은 낯설지 않다. 신문과 방송에도 매일같이 오르내리는 단어다. 인권침해를 정면으로 다루는 헌법재판소 결정문에 '인권'이라는 단어는 얼마나 자주 등장할까. 넘쳐날 듯하다. 그런데 기대와 달리 결정문에서 인권이라는 단어는 찾아보기 힘들다. 동일한 문맥에서 인권 대신 기본권이라는 용어를 쓰기 때문이다.

일반적 용례로서 기본권은 인권과 어떻게 구별될까. 인권은 '인간'의 자연적 권리라는 점에서 법학뿐만 아니라 철학 사회학에서도 널리 논의된다. 반면 기본권은 천부인권사상이 한 국가의 실정헌법체계에 편입되어 헌법적 가치를 가질 때를 의미한다. '국민'으로서의 자유와 권리를 포괄하는 용어로 주로 법 영역에서 쓰인다.

역사적 배경을 보면, 인권개념의 철학적 기초는 자연법론과 사회계약론에서 비롯된다. 자연법론에 따를 때 인간은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천부의 권리를 마땅히 누린다고 보는데, 천부인권사상은 근대국가 형성과 더불어 각국 헌법에 구현된다.

1776년 미국 버지니아 인권선언과 1789년 프랑스 혁명이 시발점이다. 혁명기에 프랑스에서 채택된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은 자연법사상을 실정법적으로 표현한다. "인간의 자연적이고 양도불가능한 신성불가침한 제권리를 엄숙"히 선언하면서(전문), "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하게 태어나며 생존한다"(제 1조)고 천명한다.

기본권이라는 표현은 독일의 바이마르헌법과 기본법을 기술하는데서 등장한다. 기본권론은 "자연권사상에 바탕을 둔 천부인권론에 기초해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일련의 자유와 권리에 관한 규범적 이해의 체계"라고 압축해 정의할 수 있다. 인간의 권리와 시민의 권리를 동시에 담고 있다. 우리 학계와 헌법재판소 결정문에서도 이런 맥락에서 수용해 쓰고 있다.

이처럼 엄격한 의미에서 인권과 기본권은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다. 인권은 자연법상의 권리인데, 기본권은 실정법상 권리라는 사실만으로도 구분된다. 허나 구별하는 의미는 크지 않다. 고민을 할 정도는 아니다. 헌법교과서도 양자는 함수관계에 있으므로 동일시하여도 무방하다고 설명한다. 그러니 헌법재판소 결정문을 읽으면서 '기본권'이란 용어가 가슴에 새겨지지 않으면 친숙한 '인권'으로 받아들여도 된다.

'기본권'라는 말이 서먹해 마음에 다가오지 않는 데는 그 개념이 서구에서 수입된 탓도 있다. 우리 선조 철학 속에서도 인권의식을 발견해 재해석한다면 이질감을 줄여나갈 수 있지 않을까.


인간의 지위를 구체적인 법제로 끌어올린 것은 서구 시민혁명의 공헌임에 틀림없다. 그렇다고 근대시민사상 이전에 사람을 귀하게 여겨야 한다는 생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아무리 권력자라도 인간존엄성을 함부로 해할 수 없다는 사상은 면면히 이어져왔다. 우리 역사 속에도 엄연히 존재한다. 홍익인간 이념과 인내천 사상이 한 예다.

헌법재판소는 신행정수도건설을위한특별조치법이 헌법에 위반된다는 결정(2004.10.21. 2004헌마554)에서 수도가 '헌법사항'임을 논증하며 관습헌법을 내세웠다. 경국대전을 세세히 언급하기도 했다. 전에 없던 시도였다. 결론의 당부는 별론으로 하고, 우리 역사에서 헌법사항을 끌어내려는 노력은 의미가 있었다는 생각이다.


거대한 국가정책을 다룰 때뿐만 아니라 앞으로 미미한 한 인간의 인권을 보호하는데도 우리 사조 속에서 실마리를 찾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기본권이 낯설음을 깨고 우리 일상생활 속에 스며들 수 있는 길이다. 헌법 제37조 제1항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경시되지 아니한다"는 정신에 부합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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