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 미디어'여, 흘러간 옛노래는 이제 그만

[김종배의 뉴스가이드] 청와대 블로그 개설에 시비거는 보수언론의 착각

등록 2006.01.17 10:24수정 2006.01.17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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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인터넷 포털 '파란'에 개설된 '청와대 공식 블로그' 첫 화면.

인터넷 포털 '파란'에 개설된 '청와대 공식 블로그' 첫 화면. ⓒ 파란

자라 보고 놀란 가슴이 아직도 팔딱팔딱 뛰나 보다. 경계의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다. 청와대가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블로그를 개설한 것을 두고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대안매체 만들기' '인터넷 정치'의 일환이란 해석을 내놨다.

<조선일보>는 박천일 숙명여대 교수의 입을 빌려 "대통령의 메시지가 국민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는 조바심과 기존 언론에 대한 반감 때문에 대안매체에 적극적인 것 같다"고 해석했다. <중앙일보>는 "청와대의 '인터넷 정치'가 갈수록 볼만해지고 있다"고 운을 뗀 뒤 "청와대의 지나친 '인터넷 집착'은 아닌지도 한번쯤 생각해" 보라고 권했다.

의도성이 있다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적절한 대안매체를 만들어 기존 매체가 의제화하지 않는 것을 의제화해야 한다"고 말한 직후에 파란 닷컴에 '청와대 섹션'을 개설했고, 뒤이어 '청와대 블로그'를 만든 데에 정치적 의도가 깔려있다는 것이다.

이런 경계 심리에는 2002년 대선 때의 '노풍' 발원지가 인터넷이었다는 기억이 적잖이 깔려있는 것 같다. 그래서 솥뚜껑인지 자라인지를 꼼꼼히 따지는 검증 태도를 견지하는 것 같다.

권력이 언론의 검증을 우회하면 포퓰리즘?

있을 수 있는 문제제기이지만 너무 나갈 필요는 없다. '자라'인지 '솥뚜껑'인지를 최종적으로 가르는 주체는 네티즌과 국민이다. 청와대의 의도가 뭐든 네티즌과 국민의 반응 여하에 따라 그 의도의 성패는 갈린다.

그걸 지금 예단할 수는 없다. 다만, 대통령 후보와 대통령에 대한 시선은 다를 수밖에 없고, 공약과 국정운영 결과에는 엄중한 차이가 존재한다는 점, 결국 이것이 네티즌과 국민의 반응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이란 점만 확인하자.


제기한 문제가 하나 더 있다. <중앙일보>는 청와대가 인터넷 공간에 진출하는 게 적절한 것인지를 물은 뒤 부적절하다고 스스로 결론을 내렸다. 이유는 이렇다. "언론 매체가 권력의 목소리를 한 번 거르고 검증해 국민에게 해설해 주는 것은 그 자체가 민주주의의 원리"인데 "권력이 언론의 견제와 검증을 우회해 일방향으로 전달하는 모양새는 자칫 포퓰리즘이라는 지적을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정말 그럴까?

<중앙일보>의 이런 주장에는 전제가 깔려있다. 국민이 언론의 여과를 거치지 않은 청와대의 일방적 주장에 노출되면 휘둘리기 쉽다는 전제, 청와대의 일방적 주장을 검증·견제할 수 있는 최적임자는 언론이라는 전제 말이다.


이것은 언론의 독선이다. 좀 더 엄밀히 말한다면 '올드 미디어'의 독선이다. 언론의 본령은 '소통'이다. 다양한 정보와 의견을 소통해주는 매개체가 언론이다. 이 본령에 충실하다면 소통의 매개체가 활자매체인지, 영상매체인지, 전자매체인지 여부는 부차적인 문제이다.

<중앙일보>는 전자매체, 즉 인터넷의 '일방향'을 우려했지만 기우다. '올드 미디어'가 소통의 중립성을 담보하기 위해 '반론'을 싣는 것처럼 전자 매체는 댓글을 단다. '쌍방향'의 효과만 놓고 본다면 오히려 전자 매체의 그것이 더 효과적이란 게 중평이다.

게다가 인터넷이 없고 댓글 또한 없던 과거에, 일부 '올드 미디어'가 민주주의의 표상으로 삼는 미국에서 대통령의 라디오 주례연설이 있었다.

청와대의 인터넷 진출 간섭말고 상품 질이나 따져라

공론(公論)이 아니라 공론(空論)으로 흐르기 십상인 문제를 제기하는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중앙일보>는 기사 말미에 한 문장을 덧붙였다. "활자·영상·전자 매체의 고른 발전, 매체간 경쟁도 무시할 수 없는 가치"를 갖는다고 했다.

뭘 말하고자 한 것일까? 정리하자면 청와대의 인터넷 진출은 활자·영상·전자 매체의 고른 발전을 저해한다는 얘기다.

이 지점에서 <중앙일보>의 논리는 민주주의 원리에서 시장의 원리로 전환한다. 정보의 유통, 의견의 소통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는 '올드 미디어', 특히 활자 매체의 입장에서 청와대의 인터넷 진출은 반가운 일이 아니다. 정보의 독점을 기반으로 의견의 권위를 향유하고자 하는 활자 매체의 소망과는 180도 다른 움직임이기 때문이다.

새삼 확인되는 게 있다. 독점이 독선을 낳는 시장의 철칙이 '올드 미디어'에 그대로 배어 있다는 사실이 그 하나요, 독선을 낳은 그 독점 시장이 이미 깨졌는데도 아직도 흘러간 옛 노래를 부르고 있다는 사실이 또 하나다.

지금은 왜 인터넷으로 가느냐고 따져 물을 때가 아니다. 그럴 필요도 없다. 청와대가 인터넷 시장 매대 위에 펼쳐 놓은 상품이 양질인지를 따지기만 하면 된다.

어려울 게 전혀 없다. 일부 '올드 미디어'가 신조처럼 떠받드는 자유시장의 원리를 대입하자. 시장 진입을 막는 건 횡포다. 하지만 시장에 진입한 상품을 고르는 건 자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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