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화 해소가 정쟁거리 안 되려면

[김종배의 뉴스가이드] 노 대통령 구체적 방안 제시가 우선

등록 2006.01.19 10:19수정 2006.01.19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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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지난 18일 밤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노 대통령의 신년연설 방송을 시청하고 있다.

지난 18일 밤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노 대통령의 신년연설 방송을 시청하고 있다. ⓒ 연합뉴스 성연재

예상대로다. 노무현 대통령은 양극화 해소를 최우선 국정과제로 꼽았다. 일자리 창출과 재원 마련, 즉 증세를 양극화 해소의 쌍끌이 해법으로 내놨다. 실천력을 담보하기 위해 사회 각계의 책임 있는 자세를 주문하기도 했다.

쉬워 보이지 않는다. 양극화 해소 구호에 토를 다는 언론은 없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그 범위를 벗어나자마자 다른 소리를 내고 있다.

책임 있는 자세를 다 하자는 주문조차 "너부터 잘 하세요"로 응답하고 있다. 신문사 논조를 가를 필요도 없다. 대다수 신문이 사설을 통해 그렇게 말하고 있다. 이런 식이다. "정부의 양극화 대책은 우선 지난 3년을 반성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마땅하다"(한국일보), "정부 정책이 오락가락하고,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이 정쟁에 정신을 쏟는다면 양극화는 더욱 깊어질 뿐이다"(서울신문).

더 중한 문제가 있다. 구체적인 방법에 대한 시각차가 너무 크다.

<중앙일보>는 쌍끌이 해법 가운데 증세 방안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 대상에서 빼버렸다. "재정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은 논란의 여지가 크다"는 한 마디로 일축해 버린 뒤 "양극화 해법은 일자리"라고 단언했다. "가장 빠르고 확실한 양극화 해소대책"이라고도 했다. "우리가 그동안 양극화 문제의 해법으로 줄기차게 제기한 '성장을 통한 일자리 만들기'와 표현만 다를 뿐 똑같은 내용"이라고도 했다. 그래서 이제 실천만 하면 된다고 했다.

<동아일보>는 일자리 창출 해법을 두 가지로 분류했다. "혈세로 만드는 사회적 일자리"와 "기업의 활발한 투자가 만드는 민간 일자리"가 그것이다. 그러고선 후자가 "더 근본적인 양극화 해소책"이라고 했다.

시각이 이러니 증세를 곱게 볼 리 없다. "무슨 문제든 재정지출 확대를 통해 풀겠다는 '끌어안기식' 발상에 대해선 이미 정부 안에서도 우려의 소리가 높다"고 했다.


양극화 해법 언론의 시각차 너무 크다

<조선일보>는 더 적극적이다. 재정지출 확대와 이를 위한 증세를 "비현실적 현실인식"이라고 했다. 노 대통령이 복지국가의 예로 든 나라는 "모두 복지 부문의 과잉 팽창에 따른 재정의 경직성 때문에 경제가 활력을 잃고 실업자가 양산되는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정권교체의 진통을 겪으며 안간힘을 쓰고 있는 나라들"이라고 했다. 그래서 "1950년대 복지국가의 낡은 모델을 제시하며 그것을 위해 거대국가 운용과 세금 신설 및 증세를 국민에게 요구하는 것은 완전히 시대와 세계를 잘못 읽은 탓"이라고도 했다.


<한겨레>는 "성장-분배 논쟁에 이젠 마침표를 찍자"고 했지만 조중동은 성장 우선 정책을 분명히 밝히고 나섰다. 증세를 통한 복지재정 확대는 무시 또는 반대 항목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한나라당은 세제 개혁에는 찬성하지만 증세는 반대한다고 했다. 윤건영 수석 정책조정위원장은 시대에 뒤떨어진 조세 구조를 손 볼 필요는 있지만 그것은 세입과 세출의 합리적 조정을 목적으로 한 것이라고 선을 그으면서 일장적인 증세 방안은 동의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아무리 재정의 효율성을 높이고 지출구조를 바꾸더라도 (양극화 해소에) 필요한 재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니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노 대통령이 증세를 전제로 해서 세제 개혁을 구상하고 있는 반면에 한나라당은 증세를 배제한 세제 개혁을 운위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대화와 타협으로 상생문화를 만들어 가자"고 했지만 이런 상황에서 타협은 고사하고 대화조차 제대로 이뤄질지 미지수다.

전망을 더욱 어둡게 하는 요소도 있다. <동아일보>는 노 대통령의 양극화 해소 주장이 "이슈화 전략"일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우리 사회를 소수 기득권 세력과 다수 낙후세력으로 나눠서 선거를 치르기 위한 '구호'라는 것"이다.

<동아일보>만 이런 시각을 내보이는 게 아니다. 한나라당 관계자도 똑같은 해석을 내놨고, 민주당은 아예 정략적 이용을 경계하면서 "노 대통령이 탈당해 경제에 전념하라"는 논평을 내놨다.

<한겨레>는 "(양극화 해소) 화두가 정치 쟁점화 하는 건 무엇보다 경계해야 할 일"이라고 했지만 현실은 경계경보를 넘어 공습경보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자칫하다가는 양극화 해소 문제가 '구호 제창'과 '반대 캠페인'이 뒤얽히는 난투 거리가 될 수도 있다.

재원마련 로드맵 밝히는 건 의무

어떻게 할 것인가? 다른 건 몰라도 대화만큼은 "안 돼도 되게 하라"는 '막무가내 태도'가 뒷받침 돼야 성립된다. "되든 안 되든 일단 얘기라도 해 보자"는 공감대를 형성하는 게 급선무다. 그러기 위해선 의혹과 불투명성을 걷어내야 한다. 양극화 해소 구호에 정략이 깔려 있을지도 모른다는 시선을 거두도록 해야 한다. 이건 노 대통령의 몫이다.

노 대통령이 미래구상을 밝힌다는 다음달 25일의 기자회견은 마침 열린우리당 전당대회가 끝난 뒤에 열린다. 정치의 불안정 요소 가운데 하나가 해소된 후에 노 대통령의 구상이 좀 더 구체적으로 제시되는 것이다.

이 기회를 살려야 한다. 어제 연설에서 밝히지 않은 재원 마련 대책이 뭔지를 소상히 밝히고, 그 실천 로드맵을 밝히는 것은 기본이다. 그래서 대화의 논점을 정확히 제시해야 한다. 이건 의무다.

노 대통령 스스로 잇단 정치적 발언에 담긴 자신의 속내가 뭔지, 자신이 구상하는 정치 일정표가 뭔지를 밝혀야 한다. 이것은 대화의 조건을 만들기 위해 거쳐야 하는 필수코스다. 아울러 노 대통령의 진정성을 보는 창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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