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은 결코 '쫀쫀 정당'이 아니다

[김종배의 뉴스가이드] 청와대여, 제발 일관성을 지켜라

등록 2006.02.07 10:25수정 2006.02.08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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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쫀쫀한' 걸까? 한나라당과 일부 언론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인사 청문회를 앞두고 그들이 쏟아내는 장관 내정자 관련 의혹들은 소소하다. '폭탄급' 의혹은 없다. "살다보면 그럴 수도 있지"라는 반응을 살 만한 의혹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물귀신처럼 꼬투리 잡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그럴까? 한나라당과 일부 언론은 정말 '쫀쫀 정당'이고 '물귀신 언론'인 걸까? 결론부터 말하면, 아니다. 맘대로 판단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기준이 있다. 청와대의 기준이다.

<청와대 브리핑>은 어제 특정직에 대한 인사검증을 거쳐 190여 명을 걸러냈다고 밝혔다. "병역을 회피하거나 음주운전·뇌물수수 등의 전과가 있는 사람은 물론이고 재산형성 과정에서 위장전입, 편법상속, 증여 등에 의한 부동산 취득 등 탈법·편법 행위를 한 사람"이 인사 배제대상이었다고 했다. 이것 외에 기밀누설, 금품수수, 소득세 탈루 등도 인사배제 사유라고 했다.

청와대가 소상히 밝힌 이 기준을 5명의 장관 내정자와 이택순 경찰청장 내정자에 적용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유시민 소득세축소, 이택순 위장전입, 김우식 교통사고, 정세균 교통법규위반

a 산업자원부장관 내정자인 정세균 의원과 보건복지부장관 내정자인 유시민 의원.

산업자원부장관 내정자인 정세균 의원과 보건복지부장관 내정자인 유시민 의원. ⓒ 오마이뉴스 이종호

▲ 소득세 탈루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 내정자 부부는 국민연금을 미납하고, 소득을 축소해 건강보험료를 적게 냈다. 간단히 말해 소득을 축소 신고했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그를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내정했다.

백번 양보하자. 지금까지 밝혀진 건 소득세 축소이지 소득세 탈루는 아니라고 치자. 그럼 이 사례는?


이택순 경찰청장 내정자는 89년과 92년에 서울 아현동 오피스텔 두 채를 자기 명의로 사들인 뒤 임대소득을 신고하지 않아 소득세를 탈루한 바 있다. 2003년과 2004년 두 해 동안의 임대소득만 약 1200만 원이었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그를 경찰청장에 내정했다(그가 소득세를 납부한 건 인사청문회가 열리는 당일이었다).

▲ 위장전입 이택순 내정자는 99년 4월 서울 신대방동에 살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주소지를 서울 돈암동 후배 집으로 옮겼다. 위장전입을 한 것이다. 승진을 하려면 북한산 정기를 받아야 한다는 후배의 권유에 따른 것이었다(이 내정자는 나중에 등산을 해서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서라고 위장전입 이유를 바꿨다).


또 그의 부인은 98년에 딸을 좋은 고교에 진학시키기 위해 서울 여의도 친구 집으로 위장전입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그를 경찰 총수로 내정했다. 왜일까? 그의 위장전입 사유가 "재산형성과정"과는 별개이기 때문인가?

a 경찰청장 내정자인 이택순씨와 과학기술부장관 내정자인 김우식 전 청와대 비서실장.

경찰청장 내정자인 이택순씨와 과학기술부장관 내정자인 김우식 전 청와대 비서실장. ⓒ 오마이뉴스 이종호

▲ 음주운전 정세균 산업자원부 장관 내정자는 2000년부터 2005년 사이에 교통법규를 78번 위반했다. '속도 위반'이 67건, '고속도로 버스전용차로 위반'이 10건이었다.

정 내정자의 이 사례를 음주운전 기준과 단순 비교하는 건 무리라고 한다. 정 내정자가 직접 운전을 한 것도 아니고 '소소한' 교통법규 위반과 음주운전은 행위의 질 면에서 분명 차이가 난다고 하니까 일단 수용하자. 그럼 이 사례는 어떨까?

김우식 과학기술부 장관 내정자는 연세대 부총장으로 재직 중이던 98년 교통사고로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하고도 3900만원의 합의금만 내고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음주운전을 중한 범죄로 취급하는 이유는 그 과실이 엉뚱한 사람을 죽음으로 내몰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왜 음주운전 경력은 크게 문제 삼으면서 교통사고 사망사건은 흘려버린 걸까?

▲ 부동산 투기 김우식 내정자는 땅 부자다. 87년 매입한 경기 파주시 교하읍 임야 3필지가 교하택지개발지구로 편입돼 엄청난 시세차익을 거뒀다. 또 경기 용인시 임야 1586평방미터를 15명과 공동명의로 사들였다. 모두 투기 의혹을 받고 있는 사례들이다. 하지만 청와대는 이 역시 문제 삼지 않았다.

▲ 편법상속 정세균 내정자의 두 자녀는 거액 예금 소유주다. 79년생 큰 딸은 7500여 만원, 81년생 아들은 1억400여 만원의 예금을 갖고 있다. 더구나 큰 딸은 유학중이다.

정세균 내정자가 "외할머니로부터 증여를 일부 받았고 장학금과 봉급을 모았다"고 밝히고 있는 만큼 현재로선 의혹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지만 청와대의 검증대상이었던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하지만 청와대가 이 점을 검증했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청와대는 최소한의 일관성 만이라도 지켜라

정리하자. 한마디로 일관성이 없다. 청와대 스스로 밝힌 인사배제 사유에 '딱 걸리는' 사람도 있고, '그렇게 볼 수 있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등용됐다. 반면 190여 명은 배제됐다.

이 현상을 어떻게 이해할 건가? 같은 행위라도 그 경중을 가리는 게 일반적이니까 청와대도 그런 관행을 따랐을 수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아니다. <청와대 브리핑>에 따르면, 수년간 소득세액을 탈루한 사실 때문에 정부산하기관 간부를 이사 승진에서 배제했다고 했다. 하지만 이택순 내정자 역시 십수년간 임대소득을 신고하지 않았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은 없다. 문책을 할 때도 '정상참작의 여지'를 보는 게 상례다. 그래서 진시황과 같이 인사기준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라는 말은 감히 못한다. 더구나 '특정직' 후보 대다수가 개발시대를 관통해온 세대라는 점을 고려하면 인사 운용의 폭이 극히 제한될 수밖에 없는 한계상황도 충분히 이해한다.

그래도 코걸이와 귀걸이를 제 맘대로 바꿔 끼는 우를 범하면 안된다. 이 우를 막는 유일한 방책은 '최소한의 일관성'이다. 누가 봐도 명백한 '동일 행위'여서 '동일 기준'이 적용돼야 한다면 그것을 지키는 게 순리요 원칙이다.

청와대에 지적할 건 바로 이것이다. '최소한의 일관성'만이라도 지키라는 것이다. 청와대 스스로 기준까지 세워 공표한 상태에서 '최소한의 일관성'을 지키지 못할 이유는 없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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