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고기가 없어서 멈춘 개맥이

[섬이야기 26] 나로도 포구 이야기2

등록 2006.02.07 22:33수정 2006.02.07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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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잔뜩 흐리다. 일출을 보겠다고 광주에서 새벽같이 출발해 나로도 대교 준공기념비가 있는 공원에 올라섰지만 하늘이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채비를 하고 나설 때 해맞이를 하기 좋다는 하반마을까지 들어갈 생각이었다. 꿀꿀한 날씨를 핑계로 느릿느릿 마을들을 돌아보기로 했다. 나로도에 가면 외나로도의 포구, 해수욕장, 우주센터개발지를 둘러보기 십상이다. 남성리에서 내나로도와 연결된 다리를 건너 우회전을 하여 끝자락에 있는 덕양리라는 작은 포구에 멈추었다.

내나로도 덕흥리 덕양마을, 마주 보이는 곳이 포두면 남성리.
내나로도 덕흥리 덕양마을, 마주 보이는 곳이 포두면 남성리.김준
겨울 바다에서 건지는 물바지락


입춘을 앞둔 탓일까 이른 새벽인데 춥지 않다. 설을 앞두고 덕양리 마을 앞 포구에 주민들이 모여 불을 피우고 있다. 추위를 쫓기 위한 것이 아니라 마을 앞 갯벌에 나 뒹굴던 쓰레기를 모아 불을 놓았던 모양이다.

덕양마을은 수백 년 된 방풍림이 있는 큰 마을 덕흥리, 구룡리가 행정구역상으로 덕흥리에 속한다. 이곳 마을들은 겨울철에 바다에서 건져 올리는 물바지락으로 유명하다. 겨울철에 나로도의 대표적인 수산물을 꼽으라면 바다에 물매기와 갯벌에 바지락이다.

특히 배를 가지고 남성리와 덕양리 사이 바다에서 건저올린 물바지락이 단연 으뜸이다. 건넛마을 남성리는 굴 까기 작업으로 바쁘지만 이곳 덕흥리 일대는 토요일을 제외하고는 매일 20여 척의 배들이 바지락을 채취하고 있다. 바다 속에서 바지락을 채취해야 하기 때문에 호미를 들고나가 작업을 할 수 없다. 배를 끌고나가 형망을 이용해 바지락을 채취한다.

서해와 남해 그리고 제주 해역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것이 바지락이다. 그리고 어느 철이나 맛볼 수 있는 것도 이놈이다. 오죽 흔했으면 갯벌을 걸으면 발에 밟혀 '바지락''바지락'한다고 했겠는가. 그렇지만 겨울철 바지락은 사정이 다르다. 나로도처럼 남도 끝자락에 있어 바지락 성장할 수 있는 수온이 유지되어야 작업을 할 수 있다.

대부분 봄철부터 시작해 가을철에 바지락을 채취하지만 이곳 갯벌과 바다에서는 찬바람이 나는 9월에 시작해 다음해 5월까지 채취를 하고 있다. 이곳에는 모두 40여 척의 배들이 두 조로 나누어 토요일을 제외하고 바지락을 채취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바지락 1 망(6kg)에 3만 원 내외, 까는 삯 1만 원을 더해서 거래되고 있다. 깐 바지락은 물량에 따라 가격이 다르지만 1kg에 7-8천 원에 소매로 유통된다. 바지락 어장은 마을 공동어장이지만 바다 속에서 건져내야 하기 때문에 어민들이라도 호미 들고나가 쉽게 채취할 수 없다. 바다 속에서 바지락을 건져 올릴 수 있는 어구를 갖춰야 한다.

이런 탓에 어촌계에서 채취권을 상인(마을주민)에게 넘기면 다시 배를 가지고 있는 주민들에게 채취작업을 의뢰한다. 그리고 주민들 중 일부는 채취한 바지락을 까는 일로 소일거리를 하고 있다.



바지락까는 작업하는 주민
바지락까는 작업하는 주민김준

형망을 이용해 바지락을 채취하는 선박들
형망을 이용해 바지락을 채취하는 선박들김준
창포뿐만 아니라 나로도 일대의 고기잡이는 대부분 고데구리(소형기선저인망)였다. 고데구리는 수산업법이 만들어진 이후 50여 년간 지속된 불법어업이다. 사실 말이 불법이지 부산, 통영, 삼천포, 여수, 고흥, 목포, 군산, 태안에 이르기까지 서남해안 연안어민들의 생계수단이었다.

2004년 8월 대통령 특별지시로 각종 불법어업을 단속하면서 소형기선저인망 즉 고데구리에 대한 해체작업이 시작되었다. 2004년 후반 고데구리어업에 대한 단속이 본격화되면서 어민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특히 정부에서 내세운 연안어족자원의 씨를 말린다는 말에 어민들은 수긍하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한중일 어업협정으로 조업구역이 축소되면서 쌍끌이와 외끌이 등 근해어업을 하던 어선들이 연안에 들어와 고데구리 어선과 같이 조업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고데구리만 불법어업으로 단속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연안어업족자원의 고갈의 주범은 오히려 무차별적인 개발사업과 매립간척사업, 폐기물의 해양투기, 연안을 둘러싼 양식장 등으로 환경파괴와 자원고갈이라는 것이다.

일본의 고데구리 어업은 조업구역을 엄격하게 정하고, 배의 규모, 그물코의 크기, 금어기를 설정해 운영하는 합법어업이라고 한다. 당시 어민들이 요구하는 것은 대체로 두 가지로 요약된다. 일본과 같이 조업원칙을 정해 합법화 해달라는 것과 보상을 현실화해달라는 것이었다.

작년 말 고데구리 정리어선은 전남이 1,100여 척으로 가장 많고, 경남이 500여 척, 부산이 150여 척인 것으로 나타났다. 해양수산부는 5년간 연차적으로 20톤 미만의 고데구리 어선을 매입해 폐선시킬 계획을 하고 있다. 선박의 재질과 연령에 따라 다르지만 5톤급은 2천여만 원, 20톤급은 5천여만 원에 매입되며, 허가폐지 지원금으로 2천여만 원이 지급계획이 마련되었다.

나로도의 감척어선은 30여 척이다. 고데구리 어업 자체가 불법이기 때문에 정확하게 몇 척이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 어렵다. 이들 어민에게는 보상금 외에 전업자금이나 어업질서확립자금이 주어지고 있다. 전업자금은 다른 어업으로 전업을 자진하여 신고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데 대부분이 고데구리업을 하는 어민들이며, 어업질서확립자금은 고데구리어업을 했던 어민들에게 지원하고 있다.

생바지락을 바지락을 말려서 반찬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생바지락을 바지락을 말려서 반찬으로 이용하기도 한다.김준

덕양에거 구룡마을로 가는 갯벌
덕양에거 구룡마을로 가는 갯벌김준
어민들이 답답한 대목은 설령 이러한 보상금을 받더라도 배를 마련하고 어구를 준비하면서 금융기관에 큰 부채를 안고 시작했기 때문에 돈 한 푼 만져보지 못하고 배를 처분해야 한다는 점이다. 게다가 고데구리 어업과 유사한 새우조망 등으로 전업하는 것도 그물 값 등 목돈이 필요하고, 전업을 하더라고 연안으로 몰려드는 근해어업 어선과 연안어업 어선들로 어떤 선택도 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2005년 봄철 나로도를 방문했을 때 고기잡이를 나가야 할 어민들이 군에서 마련해준 일당 3만 원짜리 공공근로 사업에 나서고 있었다. 지역에 따라 바다쓰레기 수거사업을 비롯해 각종 공공근로사업에 어민들을 보내고 있지만 한번 바다에 나가 긁어오던 고기맛과 돈맛을 아는 어민들에게 공공근로는 '언 발에 오줌 누는 격'에 지나지 않는다.

나로도에서 아름다운 일몰을 볼 수 있는 염포마을 포구
나로도에서 아름다운 일몰을 볼 수 있는 염포마을 포구김준
갓고기가 없어서 개맥이 안해라

내나로도에서 외나로도로 연결하는 다리를 건너면 이곳부터 봉래면이다. 봉래면에는 외나로도 외에 수락도, 사양도, 애도(艾島, 쑥섬) 등 4개의 유인도가 있다. 외나로도는 해돋이가 아름다운 하반마을과 해넘이가 아름다운 염포마을 등 일출과 일몰을 한꺼번에 감상할 수 있는 섬이다. 특히 하반마을은 우주센터가 건설되고 있다. 이러한 개발이 지역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도 있지만, 나로도의 아름다운 자연풍광을 헤칠까 하는 우려와 우주센터의 건설 후 주민들의 어업활동이 규제를 받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다.

내나로도에서 외나로도에 들어와 중심지 신금마을을 지나면 염포와 하반로 가는 길과 창포로 가는 갈림길과 마주친다. 지금은 도로확장과 인근 개발사업 등으로 도로와 산이 파헤쳐져 있지만 과거에는 시멘트포장이기는 했지만 솔숲 샛길과 바다가 어우러져 섬다운 풍광이 있었다.

왼쪽 길을 지나 고개에 올라서면 한눈에 갯벌과 작은 포구가 들어온다. 몇 년 전까지 이곳은 아주 특이한 개맥이로 방송은 물론 멋을 아는 사람들이 즐겨 찾았던 곳이다. 창포리 이철진씨가 그 주인공이다. 아저씨는 물매기 잡으러 바다에 나가고 아주머니만 집안 정리를 하고 있다. 다른 마을 같으면 벌써 어디서 왔느냐 뭐 하러 왔느냐 할텐데 카메라를 들고 왔다갔다하는 외지인들에 익숙한 눈치이다.

이씨 부부는 물론 마을 주민들까지 독특한 이씨의 독특한 숭어잡이 덕에 팔자에도 없는 방송출연을 여러 번 했다. 사실 알고 보면 독특할 것도 없다. 남도에서는 개맥이라면 널리 알려진 어법이기 때문이다. 창포리는 마을 앞에서 그것도 이씨 집 바로 앞이 갯가인 탓에 방문을 열고 줄을 당겨 개를 막고 숭어를 잡는다는 이유로 널리 알려졌다. 그만큼 고기가 흔했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이렇게 잡은 숭어가 몇 가마니씩 되었다고 하니 '갓 고기'가 얼마나 흔했는지 알 수 있다.

"요즘은 바다 일 안 하세요. 아저씨는 어디 가셨어요."
"물매기 잡으러 갔어요."
"개맥이는 요즘도 하나요."
"갓고기가 없어서 안 해요."
"어디 방송국에서 왔어요."

이씨의 아내는 대뜸 어느 방송국에서 왔느냐고 묻는다. 7-8년 전까지 집 앞에서 개맥이를 했었다. 지난해 여름에도 마을 뒤 바닷가에서 문어잡이 하는 것을 촬영했다. 요즘에도 가끔 방송국에서 연락이 오지만 고기가 나지 않아 개맥이를 할 수 없다면 극구 오지 말라고 말린다고 한다.

외나로도 창포마을의 숭어 말리는 모습
외나로도 창포마을의 숭어 말리는 모습김준

물메기를 말리는 모습
물메기를 말리는 모습김준
창포마을은 전부해야 30여 가구에 불과하다. 이씨가 사는 마을은 창포리에 속한 작은 마을로 모두 7가구에 불가하다. 창포리도 대부분의 어민이 고데구리를 하면 생업을 했지만 지금은 배를 전부 팔고, 겨우 어부 흉내라도 낼 수 있는 사람들 삼마이 등 그물어업도 부정어업으로 조업을 못하고 있다. 허가를 내 하고 있는 어업은 낙지주낙, 통발 등이 전부라고 한다. 말이 어촌이지 어업으로 생활하기 어려운 게 어디 창포리뿐이겠는가.

이제 나로도 주민들의 생활의 중심이었던 고데구리 어업은 멈추었다. 어민들은 아직 이렇다 할 대체어업을 마련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번 봄에 사라졌던 갓고기들이 봄바람과 함께 나로도 포구에서 몰려들었으면 하는 꿈을 꿔본다. 그러면 창포마을의 이씨의 개맥이 줄 당기는 모습도 다시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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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동안 섬과 갯벌을 기웃거리다 바다의 시간에 빠졌다. 그는 매일 바다로 가는 꿈을 꾼다. 해양문화 전문가이자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사진작가이기도 한 그는 갯사람들의 삶을 통해 ‘오래된 미래’와 대안을 찾고 있다. 현재 전남발전연구원 해양관광팀 연구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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