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8일자 A6면 보도 일부. '애국가' 작곡가인 안익태 선생이 만주국 창립 기념음악 작품을 작곡하고 대형 일장기가 걸려있는 독일 콘서트홀에서 직접 지휘했다는 것을 보도하고 있다.조선일보 PDF
충격이다. 애국가의 작곡가인 안익태가 만주국의 창립을 기념하는 음악작품을 작곡한 것은 물론 이 음악작품을 직접 지휘까지 했다고 한다. <조선일보>의 보도다.
1942년 독일 베를린의 구(舊) 필하모니 홀에서 열린 '만주국 창립 10주년 기념 음악회'에서 베를린 방송 교향악단을 지휘해 자신이 작곡한 '축전음악'을 연주했으며, 이 작품을 작사한 사람은 일본인 에하라 고이치였다고 한다.
만주국이 어떤 나라인가? 명색만 국가였지 일제가 세운 괴뢰에 불과했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안다. 그런 만주국을 찬양하는 음악작품을 작곡하고 지휘까지 했다면 이는 명백한 친일행위다.
사실 자체를 부인하고 싶지만 쉽지 않다. <조선일보>는 기사의 근거로 동영상을 제시했다. 독일 훔볼트 대학에 재학 중인 송병욱씨가 독일 영상자료실인 트란지트 필름에서 입수한 7분짜리 동영상이다. '축전음악'을 지휘하는 장면으로, 무대 중앙에 일장기가 세로로 걸려있는 장면도 들어있다.
물론 검증할 바는 남아 있다. <조선일보> 기사 어디에서도 안익태가 '축전음악'을 작곡한 근거는 제시돼 있지 않다. 동영상이 지시하는 바는 '지휘' 뿐이다. 하지만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다. '축전음악'을 지휘한 걸 두고 대수롭지 않다고 할 한국인은 별로 없다.
관심사는 후폭풍이다. <조선일보> 보도가 사실로 확정될 경우 파문은 커진다. 한 개인의 친일 행적 판정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제기된다. 바로 애국가의 정통성 문제다. 사안은 민감하고 논란은 격하게 진행될 공산이 크다.
그래서일까? <조선일보>는 "고민거리를 던지고 있다"고 했다. "뛰어난 음악인"과 "지금 시각에서 볼 때 유감스러운 행적"이 오버랩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조선일보>가 나아간 곳은 여기까지다. 화두만 던졌을 뿐 해법은 제시하지 않았다. 그럴 만도 하다. 사안이 예사롭지 않기에 신중을 기하는 듯하다.
하지만 이 점은 달리 봐야 한다. 화두만 던진다 해도 어떻게 던지느냐에 따라 논의와 해법은 달라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조선일보>의 화두 제기 방식은 묘한 여운을 남긴다. 이런 식이다.
<조선일보>는 "안 선생이 1940년대 친 추축국(독·이·일) 성향의 음악회에서 활동한 것은 2차 세계대전이라는 20세기 최고의 재난과도 무관치 않다"고 전했다. 동영상 제공자인 송병욱씨의 말이다.
안익태가 '축전음악'을 작곡·지휘한 때는 "20세기의 명 지휘자 푸르트뱅글러와 카라얀도 나치와 협력했던 일을 한 시기"라는 점도 환기시켰고, 안익태의 스승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도 "수많은 걸작을 남겼지만 나치가 집권한 뒤 제3제국 음악원 총재직을 맡기도 했다"는 점도 지적했다.
읽기에 따라서는 불가역 상황을 강조한 구절로 이해될 수도 있다. "지금 시각에서 볼 때 유감스러운 행적"이지만, 당시 시각에서 볼 때는 어쩔 도리가 없는 상황이었을 수도 있다는 논리 말이다.
뿐만 아니다. <조선일보>는 기사를 1면 아랫부분에 3단으로 배치했다. 특종 지상주의가 판치는 한국 언론의 풍토를 고려하면 의외다. <조선일보>가 1면 머리기사로 올린 이해찬 총리 골프 파문 기사는 골프모임에 참석한 이기우 교육부 차관의 기자회견 내용으로, 모든 신문이 다 받은 것이다. 특종을 내리고 구문을 올렸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