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도 사람들, 그들이 자산입니다

[섬이야기 31] 오래된 미래 - 청산도 이야기 3

등록 2006.03.15 12:15수정 2006.03.15 14:47
0
원고료로 응원
a

ⓒ 김준

a

ⓒ 김준

청산도 당리마을에서 내려다보는 도락리의 모습은 아름답다 못해 눈물이 난다. 달리 표현할 길이 없어 아쉽다. 바닷바람을 막기 위해 조림한 소나무들이 푸른 보리밭과 파란 바다를 나뉘듯이 줄지어 서 있다. 멀리 고등어와 삼치 파시가 열렸던 도청리 포구와 등대가 얼굴을 내민다. 푸른 밭 사이에는 지난해 가을걷이 이후 맨살로 바닷바람을 맞으며 겨우살이를 한 논들이 기지개를 켜며 봄을 맞는다.

오래된 소나무 숲에 숨겨져 있는 고갯마루 당집은 마치 남도 바다 한가운데 '육지 것'들의 탐욕과 오물로부터 지켜내려는 청산도의 모습과 흡사하다. 아련히 봄바람을 타고 들리는 '진도아리랑' 소리에 맞춰 황톳길을 내려오며 당집 아래를 내려다본다. 그곳에 봄바람에 날릴세라 마람을 줄과 돌로 엮은 초분이 푸른 파도소리 바닷소리를 들으며 누워서 바다를 굽어보고 있지 않은가.


a

ⓒ 김준

a

ⓒ 김준


자연의 결을 따라 사는 사람들

마치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 것처럼 가슴이 쿵덕거리며 뛴다. 조심스럽게 내려가 초분을 만났다. 양지바른 밭 가운데 모셔진 초분. 그 주위에는 봄채소들이 자라고 괭이나물 얼굴을 내밀며 수줍게 반긴다.

유독 초분 주위에 봄채소(봄동, '봄똥'이라고 부름)들이 잘 자라 있는 것도 이분 덕분일 것이다. 비가 내리고 나면 이분의 자식들은 이곳에 올라와 초분과 이야기를 나누며 봄채소를 뜯어가 겉절이도 해먹고 나물을 캐 무쳐서 먹기도 할 것이다. 된장을 이용해 무친 봄동 겉절이를 보리밥에 넣어서 쓱쓱 비벼서 한입 몰아넣은 그게 봄맛이다.

청산도에는 이곳 외에도 몇 기의 초분이 남아 있다. 정월이면 땅을 건들지 못하기 때문에 초분을 쓰기도 하고, 생송장으로 선산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초분을 한다는 것은 다른 섬지역과 비슷하다. 10여 년 전까지 청산도 곳곳에 초분이 있었다고 한다.

a

ⓒ 김준

a

ⓒ 김준

청산도 일주도로를 따라 해안가를 돌다 보면 보이는 것은 푸른 보리밭과 마늘밭 그리고 바다다. 그리고 산자락으로 조상대대로 일궈 만든 논과 밭이 있다. 청산도는 섬이지만 바다보다는 논과 밭을 벌어먹고 살아왔다.


가파른 산자락을 일궈 논과 밭을 만드는 것도 쉽지 않지만 하늘에서 내려주는 물을 받아 가두고 농사를 짓는 일도 어려웠다. 가파른 산자락에 돌을 쌓아 계단을 만들고 바닥에 돌을 넣어 구들장을 놓듯 깔듯 평평하게 한 다음에 흙을 덮고 논을 만들었다. 그래서 '구들장 논'이라고 부른다.

구들장 논을 만드는 일은 많은 노동력이 뒷받침되어야 하며, 쟁기와 호미 그리고 괭이와 낫 등 재래 농기구가 주로 사용되었다. 많은 논이 묵혀지고 있지만 아직도 구불구불 아름다운 곡선을 그린 논과 밭들은 청산도에서 볼 수 있는 또 다른 아름다움이다.


이런 논과 밭 가운데는 으레 무덤처럼 작은 봉분이 만들어져 짚이나 비닐로 덮여 있다. 요즘 밭 가운에 조상을 모신 사람들이 많다. 옛날처럼 산에 들어가 나무를 하지 않기 때문에 마을 뒷산이라도 칙칙해 들어가기 어렵다. 그래서 조상을 밭으로 모셔오는 경향이 있다. 그냥 지나칠 때는 무덤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꾸꿈스럽게 밭 가운데로 들어가 들춰 봤다. 그렇게 알뜰하게 모아서 예쁘게 모셔놓은 것은 퇴비 더미였다. 퇴비 냄새로 향기롭다.

어렸을 적 마당 한 켠에 쌓아 둔 퇴비. 날씨가 따뜻해지면 아버지는 퇴비를 논과 밭으로 옮기셨다. 농사철에 사용하기 위해 아버지는 여름이면 매일 아침을 먹기 전에 산에서 가서 풀을 한 짐 베어 오시고, 해질 무렵에 또 한 짐 해서 갈무리해두셨다. 그리고 외양간에 넣어서 소똥과 함께 퇴비를 만드셨다.

일꾼이 있어 퇴비용 풀을 충분히 벨 수 있거나 농사가 많아 짚을 이용할 수 있지않은 농민들은 대부분 여름철 퇴비용 풀베기를 해야 했다. 내 초등학교 시절 여름방학 숙제에 빠지지 않고 들어 있었던 것이 '마른 풀 한 망태'였고, 집집마다 대문에는 '옥토박토 따로 없다, 퇴비모아 식량증산'이라는 구호가 붙어 있었다.

a

ⓒ 김준

a

ⓒ 김준

청산도 사람들, 그들이 자연입니다

논이 많지 않은 청산도는 볏짚을 이용하기보다는 산에서 풀을 베어 많이 사용했다. 제주도처럼 섬마을에 따라서 파도에 밀려온 바다풀을 퇴비로 사용하는 섬도 있다. 청산도는 물론 뭍에서도 볏짚이 초가집 재료는 물론 소 먹잇감으로 귀했기 때문에 퇴비로 사용할 수 없었다.

초가지붕이 슬레이트와 기와로 바뀌면서 볏짚은 퇴비로 많이 사용되었다. 지금은 가축용 사료가 상품으로 판매되고, 화학비료가 공급되어 가을걷이를 하고 남은 볏짚이 논에 방치되거나 일부 사료공장에서 이용할 뿐이다.

지금도 청산도의 논과 밭은 퇴비를 사용하고 있다. 도로에 논두렁에 논과 밭 가운데 곳곳에 망옷(퇴비)자리가 마련되어 있다. 요즘 요소, 복합, 유안 등 갖가지 기능성 비료들이 나오기 때문에 퇴비를 만들어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 그런데 청산도 사람들은 아직도 퇴비를 사용하고 있는 이유가 궁금하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구들장 논에 있었다. 돌을 깔고 흙을 덮어 농사를 지었으니 논이 얼마나 박할 것이며 물은 또 얼마나 잘 빠지겠는가. 이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그 퇴비였다. 거친 퇴비는 땅심을 높여줄 뿐만 아니라 물 빠짐을 막아주는 역할을 했던 것이다. 때로는 자연을 이용하고 때로는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온 청산도 사람들의 삶은 그대로 아름다운 심성으로 드러난 탓일까. 모두 얼굴이 맑고 밝다. 전형적인 농심 그대로였다.

지금은 청산도 밭에 대부분 마늘이 심겨 있지만 1980년 중반 이전까지만도 조, 콩, 고구마, 깨 등을 많이 심었다. 밭을 일구면서 나온 돌을 이용해 돌담으로 울타리를 쳐 소가 넘지 못하도록 장애물을 만들고 입구에는 제주도의 대문처럼 '정낭'이 설치된 곳이 많다.

1990년대 초반까지 청산도에는 '끄슬쿠'라는 독특한 농기구가 사용되었다. 모내기철에 사용되는 써레와 비슷한 모양으로 논보리를 갈 때나 밭작물을 파종 시 흙덩어리를 부수는 일을 하는 농기구였다.

a

ⓒ 김준

a

ⓒ 김준

아직도 청산도는 공동 우물을 사용하는 마을이 있다. 과거 농촌도 그랬지만 물이 귀했던 섬에 공동우물은 곧 생명이었다. 그래서 정월 보름이면 지신밟기를 할 때 꼭 샘굿을 쳤다. 1970년 새마을 사업 이후 개인우물을 파는 집이 늘어났고, 1980년대와 1990년대 농업기반 정비사업의 하나로 경지정리가 이루어지면서 섬에도 저수지가 만들어지고, 상수도가 개발되었다. 공동우물까지 가지 않더라도 수도꼭지만 틀면 물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공동우물은 점점 주민들의 관심에서 사라졌다.

공동우물이 사라진 것은 단순히 우물터의 사라짐에 그치지 않는다. 마을 아낙네들의 소통공간이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빨래터와 함께 섬마을 여성들의 대표적인 소통공간인 우물터가 사라지면서 마을 내 여성들의 승인된 소통공간은 더는 존재하지 않게 된 것이다.

청산도의 논밭은 경지정리가 되지 않는 계단식 다랭이 논들이다. 그런 탓인지 아직도 여러 마을에 공동우물이 존재하며, 식수는 아니지만 사용하고 있다. 우물에 바가지가 있고, 샘 안에 이끼가 끼지 않고 깨끗한 것으로 보아 자주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좁은 경작지, 농업용수 확보의 어려움, 토지의 척박함 등 불리한 농업 조건에도 농사는 청산도 사람들의 중요한 삶의 근원이 되고 있다. 자연환경에 적응하는 생태기술과 적응양식은 그대로 청산인들의 삶과 문화로 배태된 것이다. 그들의 밝고 맑은 표정과 자연미는 청산의 자연과 삶에서 비롯된 것이다. 수백 년 동안 청산을 간직해온 그들의 삶이 문화적 가치로 인정받고 새로운 생활의 자양분이 되길 간절히 바라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라도닷컴'의 '김준의 섬섬옥섬'에도 보냅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전라도닷컴'의 '김준의 섬섬옥섬'에도 보냅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10여 년 동안 섬과 갯벌을 기웃거리다 바다의 시간에 빠졌다. 그는 매일 바다로 가는 꿈을 꾼다. 해양문화 전문가이자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사진작가이기도 한 그는 갯사람들의 삶을 통해 ‘오래된 미래’와 대안을 찾고 있다. 현재 전남발전연구원 해양관광팀 연구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2. 2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3. 3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4. 4 꼭 이렇게 주차해야겠어요? 꼭 이렇게 주차해야겠어요?
  5. 5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