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정통무협 단장기 395회

등록 2006.03.24 08:23수정 2006.03.24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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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중이 천막을 빠져 나가자 남은 사람은 담천의를 제외하고 모두 아홉 명이었다. 같이 들어 온 우교와 백렴, 흑구 그리고 구양휘를 비롯해 광도, 혜청, 팽악까지 모용수를 제외한 형제가 다 모인 것이다.

“.........!”


그들을 한 사람씩 바라보며 애써 미소를 짓던 담천의의 고개가 문득 옆으로 꺾였다. 정신력으로 버텨오다가 급기야 혼절한 것이다.

“형님......!”

팽악과 혜청이 다가들자 구양휘가 제지했다.

“중독이나 부상이 심한 상탠가?”

갈인규는 천천히 고개를 끄떡였다.


“외상이나 어깨뼈가 상한 것은 시일이 지나면 회복될 수 있소. 문제는 독인데.... 독 뿐 아니라 지금 춘....”

갈인규가 말을 하다말고 멈췄다. 말이 잘못 나왔다. 갈인규는 의원이다. 이미 진맥으로 담천의의 몸에 여러 가지 춘약과 미약이 섞여 작용하고 있음을 모를 리 없는 일. 아직까지 남아있는 춘약과 미약의 양으로 봐서 분명 일부는 해소했다.


그 대상이 누구였을까? 같이 온 남궁산산과 관계가 있었을 것이란 짐작이 충분히 가능했다. 허나 갈인규는 남궁산산을 보지 않고 구양휘와 광도를 번갈아 보았다.

“아니 소제가 아직 파악하지 못한 여러 가지 독이 뒤섞여 있어 해독시키기가 만만치 않소.”

다행이었다. 남궁산산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녀의 양 볼과 목이 약간 붉게 달아올랐지만 표정의 변화는 없었다.

“독혈군자毒血君子)를 불러 도움을 받으면 어떻겠느냐?”

사천당가의 독혈군자 당일기라면 일단 독에 관한한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인물. 갈인규 뿐 아니라 괴의 갈유보다도 독에 대해서는 더 뛰어난 인물이다. 더구나 갈인규의 외삼촌이다. 허나 갈인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일단 소제가 치료해 보도록 하겠소.”

두 사람 관계가 원만치 않음은 구양휘 뿐 아니라 다른 이들도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다. 갈인규가 꺼려할 만 했다. 구양휘는 고개를 흔들었다. 예부터 의원의 자존심과 고집은 유명한 터였다. 자신의 환자를 다른 이에게 맡긴다는 것은 자존심에 먹칠을 하는 것이다.

“물론 네 솜씨가 고명하다는 것이야 이 천마곡 안에 있는 사람들도 다 아는 터이고... 다만 좀 더 빠르지 않을까 해서 한 말이다.”

구양휘가 변명하듯 말했다. 아우라 하나 갈인규의 솜씨를 믿지 못해서 한 말은 결코 아니었지만 오해의 소지는 분명 있었다. 허나 갈인규는 그것 때문에 거절한 것은 아니었다. 당일기는 확실히 해독에 있어서는 누구보다 훌륭한 솜씨를 가지고 있고, 자신보다 더 빠르게 담천의 몸에서 독 뿐 아니라 춘약기운도 몰아낼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신이 눈치 챘듯이 당일기 역시 현 상황으로 남궁산산과의 관계를 짐작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빨리 회복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나 그런 사실을 외인이 안다는 것은 절대 안 될 일이었다.

“대형.... 일단 주위 오장 이내에는 어느 사람도 들어오지 못하게 해주시오. 팽형님은 욕조를 구해 이곳으로 가져다 놓고 뜨거운 물을 채워주시오. 산산누님은 화로에 불을 지펴 놓으셨으면 좋겠소.”

“크... 어려운 일은 나만 시킨단 말이야..... 남은 분들은 뭐하고...?”

팽악이 투덜거렸다. 이 와중에 멀쩡한 욕조를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 그 말에 구양휘가 뒷통수를 갈기며 말했다.

“하라면 하는 거지 말이 많아.... 빨리 움직여.....”

“쳇.... 대형은....”

뒷통수를 쓰다듬으며 랭악이 볼 멘 소리를 하려고 하자 다시 솥뚜껑만한 손을 들며 능글거리며 말했다.

“이번엔 이마를 쳐주랴....?”

“알았소.... 알았다니까요.....”

팽악은 팔을 들어 자신의 이마를 가리며 막는 척하면서 뒷걸음치며 밖으로 나갔다. 갈인규가 담천의의 옷을 벗기며 나직하게 말했다.

“이제 모두 나가주시오. 필요할 때 도움을 청하겠소.”

“나까지....?”

“당연하지. 대형은 시끄럽기만 하지 뭐 도움 되는 게 있소?”

구양휘에게 물음에 밖에서 들려 온 팽악의 빈정거림이었다. 구양휘가 화드득 뛰어나갔다.

“저 자식이....?”

구양휘를 따라 광도와 혜청도 빙긋이 웃으며 따라 나가자 우교가 물었다.

“본인은 여기에 남아있으면 안되겠소?”

이미 우교가 누군지 알고 있는 갈인규였다. 우교가 이곳에 남겠다고 함은 끝까지 자신의 임무를 충실히 하겠다는 의미다. 허나 갈인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중요한 고비는 이틀이오. 이틀 정도만 주위를 경계해 주시오.”

갈인규의 단호한 말투에 우교는 하는 수없다는 듯 담천의 곁에서 몸을 일으켰다. 환자에게 있어 필요한 것은 의원이지 가족이나 형제가 아니다. 백렴과 흑구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 우교를 따라 나갔다.

모두 나가자 남아 있는 사람은 남궁산산뿐이었다. 어색했다. 이미 담천의의 옷은 거의 다 벗겨지고 있었다. 그녀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다가 입을 열었다.

“나도 잠시 숙부님을 뵈러갔다 와야 할 것 같아.”

천마곡 안에는 남궁가에서 파견한 남궁구현(南宮玖炫)과 가솔들이 있다. 응당 이곳에 들어왔으면 찾아보는 게 우선이다.

“얼마 전 좀 다치셨소. 남궁가 식솔들의 피해도 적지 않았고....”

“얼마나....?”

“그리 심하지는 않소. 인사만 드리고 빨리 돌아오시는 게 좋겠소. 누님이 도와줄 일이 많소.”

갈인규는 여전히 남궁산산을 보지 않고 자신의 할 일을 한다. 남궁산산은 잠시 나직하게 한숨을 불어내다가 발걸음을 떼었다. 그리고 천막을 벗어나기 전 그녀는 고개를 돌려 갈인규를 바라보고는 탄식처럼 말했다.

“고마워......”

담천의의 하의까지 벗겨낸 갈인규의 손길이 잠시 멈췄다. 그녀의 말뜻을 모를까? 그녀의 속내를 짐작하지 못할까?

“광도형에게는 그런 말 하지 마시오. 형제는 고맙다는 말을 하는 아니라고 합디다.”

형제란 이런 것이다. 그 정이란 굳이 말로 표현되는 것도 아니다. 언젠가 형제는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광도가 말한 적이 있었다. 형제는 타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제 92 장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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