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작은 산도적, 나무짐을 멘 큰 아이 송인효. 어깨가 땡긴다나 뭐래나.송성영
나는 매일 같이 산에 오릅니다. 높은 산에 오르기를 좋아하는 등반가나 산 사람이라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거기 산이 있어 산에 오른다는 경지 높은 도인 흉내를 내고자 산에 오르는 것도 아닙니다. 산에 오르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산비탈 밭에 오르지 않으면 먹을거리가 굴러들어오지 않게 되고 땔감을 구하지 않으면 방구들을 덥힐 수 없기 때문입니다.
80킬로그램이 넘는 체중에 늘 수염으로 뒤덮여 있는 펑퍼짐한 얼굴. 사람들은 이런 나를 보고 산도적처럼 생겨 먹었다고 합니다. 그 말이 맞습니다. 나는 산도적입니다. 나는 생긴 대로 굴러먹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애칭으로 부르는 그런 산도적이 아닙니다. 나는 진짜 산도적놈입니다. 산에서 많은 것들을 도둑질해 옵니다.
산을 지키는 산신령의 허락도 없이 산 고사 한 번 지내지 않은 놈이 먹고 잠자는 어느 정도를 산을 통해 해결하고 있습니다. 밑천 한푼 들이지 않고 말입니다. 이런 '날 강도'가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래도 눈곱만치의 양심은 남아 있어 가능하면 멀쩡한 나무는 베지 않으려 애쓰고 있습니다. 눈더미에 못 이겨 부러지고 짖겨진 나무, 다른 나무들에 치여 밑둥이 썩어 나자빠진 나무, 어쩌다 산소 자리 만들겠다고 베어 놓은 나무들을 땔감으로 쓰기도 합니다.
어쩔 수 없이 나무를 벨 상황이 닥치면 나무에게 "미안하다" "고맙다"를 빠뜨리지 않습니다. 구들장 덥혀 잠 잘 자고 그 기운을 좋은 데 쓰겠노라며 내 스스로를 위로합니다.
남들은 산더미처럼 땔감을 쌓아 놓아야 맘 편하게 한 겨울을 난다지만 나는 아궁이 옆에 사나흘치 땔감만 있어도 맘이 편합니다. 사람들은 그런 내가 게을러서 그렇다고 합니다. 어리석어서 그렇다고 합니다. 춥지 않을 때 땔감을 쌓아 놓게 되면 한겨울을 편하게 날 터인데 무엇 때문에 엄동설한에 그런 생고생을 하는가, 참으로 어리석다는 눈총을 보내기도 합니다.
맞습니다. 나는 어리석습니다. 하지만 어리석게 사는 게 두루 두루 뱃속 편할 때가 있다는 것을 그들은 모릅니다. 어리석은 산도적놈의 속내를 잘 모릅니다.
시골 생활에 접어들 무렵에 나 역시 몇날 며칠꺼리의 땔감을 쌓아 놓고 겨울을 날 때도 있었습니다. 언제나 숨을 헐떡거리며 지게질을 했습니다. 지게에 땔감이 많을수록 숨은 목구멍까지 차올랐습니다. 마당에 지게를 내려놓고 나면 신음소리가 저절로 기어 나왔습니다.
"어이구 죽겠네."
그러던 어느 날 지게를 지고 후들거리는 다리를 곧추세워 가며 산을 내려오다가 문득 지게의 무게는 내 욕심의 무게나 다름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밤낮으로 돈벌이에 몰두해야만 했던 도시 생활을 청산할 당시 진즉에 덜어 놓았다고 여겨졌던 내 욕심의 무게가 여전히 지게 위에 묵직하게 올라가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좀 더 편하게 겨울을 나기 위해 좀 더 많은 땔감을 지게 위에 실으려 안간힘을 썼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 일은 결코 편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지게질을 하고 나면 허리며 다리에 무리가 갔습니다. 도시 생활하면서 좀 더 많이 벌어들인 대가로 몸과 마음이 망가져 갔듯이 말입니다.
그 이후로 사람들이 내게 눈총을 주거나 말거나 나는 어리석게도 거의 매일 같이 꾸역꾸역 산에 올랐습니다. 눈발이 내리든 말든 산에 올라 가뿐한 발걸음으로 하루치 정도의 땔감을 구해 오곤 했습니다.
"에이그 그것도 땔감이라고..."
사람들은 참 게으르다며 표 나지 않게 혀를 차지만 나는 오히려 게으르지 않기 위해 땔감을 쌓아 놓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모르고 있었습니다. 땔감을 쌓아 놓지 않기 때문에 거의 매일 같이 산에 올라야 하고 결국 부지런해질 수밖에 없는 것을 말입니다.
지게 짐이 가벼우니 더 이상 다리가 후들거리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후들거렸던 다리에 부쩍 힘이 생겼습니다. 지게 작대기 장단에 콧노래를 부를 수 있는 여유까지 생겼습니다.
산비탈 농사를 시작하고부터는 산에 올라 땔감만 장만해 오는 게 아닙니다. 부엽토도 한 자루씩 담아 옵니다. 부엽토는 화학비료와 농약을 전혀 쓰지 않는 자연농법으로 농사를 짓고 있는 내게 아주 유용한 양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