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엔 보를 막지 않아도 되니 농사가 많이 수월해졌지만 왜 이리 더 힘겨울까요?sigoli.com
울력 다음으로 큰 대공사 보막이
울력이라고 명절에 동구 밖에서부터 마을 앞길을 수리하고 풀과 나무를 베는 등 길을 다듬을 때는 반드시 집에서 가장 실한 한 사람이 나가야 한다. 강제로 부과되는 일이라 우리 집에서 키가 큰 셋째 형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 대신 나가기도 했다.
이보다 규모가 작기는 하지만 농사에서도 절대 빠질 수 없는 날이 있다. 다름 아닌 보(湺) 막는 날이다. 수리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던 70년대 말까지는 이 일부터 해놓아야 본격적으로 논농사를 한다.
춘분 앞뒤로 소쟁이, 감난쟁이, 욋등, 참난쟁이, 핵교모탱이, 짐때거리, 소로골, 정지동, 빗가리, 항월, 붐웃골, 개밥모탱이 따위 작은 골짜기와 동네 앞을 죄다 가로지르는 큰 농수로까지 크고 작은 보막이가 한창인 때다.
논이 서너 집밖에 딸리지 않은 작은 곳은 그들끼리 알아서 사나흘 동안 진을 빼야 하고 더 산골짜기로 들어간 깊은 산중 논은 식구끼리 모든 일을 마쳐야 한다. 집집마다 바쁜 철이라 누가 와서 거들어주지도 않는다.
때로 소쟁이처럼 양지마을에서 농사를 짓는 모든 사람들이 걸려 있는 경우 온 동네 사람들이 모두 모여 봇도랑을 고치고 물꼬를 보는 일까지 하루 안에 다 끝내곤 했다.
우리 동네에도 시멘트 가마니가 들어오던 1975년 이후 다소 일손을 덜었지만 그것마저 소쟁이와 마을 앞에 있는 몇 개 큰 보에 한하여 지급되었으니 수십 개가 넘는 보를 막는 데는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두 보를 제외하곤 아예 지급을 받을 수 없어 8월 태풍에 큰물이 져 바닥에 있던 큰 돌과 자갈, 모래, 흙, 비닐까지 죄다 쓸고 가니 해마다 몇 날 며칠이고 들러붙어서 보를 막지 않으면 못자리에 물을 잡기가 힘들다. 때로 아파서 일손이 없으면 그 해 농사는 아예 포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