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지팡이를 짚으며 굴 밭으로 가는 할머니들

[섬이야기 32]인천 덕적군도 소야도

등록 2006.03.30 12:29수정 2006.03.30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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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야도는 덕적군도의 하나로 큰 갯골을 사이에 두고 덕적도와 500미터의 거리에 있는 섬이다. 남북으로 11.5㎞에 이르며, 동서쪽으로 길이가 짧고 허리 모양으로 잘록 들어갔다 넓어지는 부채꼴 모양을 하고 있다.

고문헌에 의하면 소야도는 史冶島, 沙也串島, 士也串島, 新也串島 등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사야곶섬', '소의도', '소야도', '사야곶도' 등 다양하게 불려졌다. 이러한 이름은 마치 섬이 새가 나는 모양과 비슷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과 섬과 섬들 사이에 있는 섬이라는 유래도 있다.


이외에도 신라 무열왕 7년(660)에 당나라의 소정방이 백제정벌을 위해 함대를 끌고 와서 이 섬에 정박한 일이 있는데 이후로 '소씨 노인(蘇爺)이 머물던 곳'이라는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지명유래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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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정기여객선을 타고 온 아이들을 실은 봉고버스가 골목길을 누비며 아이들을 하나 둘 내려주고, 큰 마을로 들어가는 초입에는 쓰러져가는 집을 밀어버리고 새로 집을 짓는 공사로 요란스럽다. 이곳에 살다 외지로 나갔던 사람이 늘그막에 노후를 보내기 위해서 자신의 집을 새로 짓고 있다.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던가.

농어촌에 인구가 줄어들고 살 사람이 없다며 '포기정책'으로 일관해온 정책입안자들이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지금 사람이 없으니까, 지금 이용할 '가치'가 없으니까 식으로 정책을 추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지금 갯벌에서 특별한 돈벌이를 하는 것도 아니고, 나오는 것도 없으니까 막자는 논리도 별반 다르지 않다. 자연자원은 우리만 사용하고 버리는 '일회용'이 아니기 때문이다.

의지할 곳은 굴 밭뿐이다

소야도 마을 앞 장군도로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마을로 지팡이를 짚은 80순의 할머니 셋이 겨우 몸을 의지하며 걸어오고 있다. 지팡이를 짚고 걸어오는 모습이 온전하지 않고 힘들어 보인다. 이제는 자식들이 가져다주는 용돈 받고, 손자들 재롱이나 보며 즐길 나이도 넘었을 듯한데 주렁을 짚고 조새와 굴 바구니를 들고 바다로 간 것은 무엇일까. 누가 등을 떠미는 것도 아닌데, 불편한 몸을 이끌고 점심도 건너가며 노구를 끌고 갯벌로 가는 것 자체가 그들의 삶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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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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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할머니들 걸음으로 마을에 이르는 2킬로미터 남짓 되는 거리를 이동하는데 한참은 걸릴 것 같다. 몇 걸음 옮기다 허리를 펴고 한숨을 몰아쉬고 다시 지팡이를 짚고 걸음을 재촉한다. 오늘이 금요일인데 내일이면 손주녀석이 올지도 모른다. 차비라도 한 닢 주고 용돈이라도 주려면 부지런히 가야 시간을 맞출 수 있다.

욕심을 부리느라 물이 들어오는 줄도 모르고 굴을 쪼다보니 마음이 바빠졌다. 인천의 수집상에게 덕적도를 거쳐 배편에 전하려면 그렇게 시간이 넉넉하지 않다. 한손에는 조새를 들고 다른 한손에는 굴 바구니를 들었고, 지나가는 뒷모습을 보니 작은 배낭을 하나 메셨다. 배낭에는 한 알 한 알 쪼아서 마련한 굴을 담아 짊어진 것이다.


할머니들은 아침을 먹고 내내 굴을 쪼다가 물이 들어오자 나오는 길이다. 연안부두를 비롯해 인천시장에 유명한 '덕적굴'은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들이다. 민물을 섞어 불린 얄팍한 상술이 아닌 바닷물도 완전히 제거한 탱글탱글한 '강굴'이 그것이다.

굴을 까서 바닷물에 잘 헹군 다음 모아 두었다가 시중에 가지고 나갈 때 민물을 약간 섞으면 굴 알이 커지면서 양도 많아진다. 이런 굴도 작은 종지기 한 그릇에 5천 원 정도를 받는데 덕적도에서는 '강굴' 1킬로그램에 1만 원 정도를 받는다. 덕적굴의 알 크기는 보통 양식굴의 1/4 정도이지만 짭짤하면서 달짝지근한 제대로 된 굴은 어리굴젓으로 변신해 오래도록 보관할 수 있다.

덕적군도 중의 하나인 승봉도에서 소야도로 시집와 60여년 동안 굴을 까며 생활했다는 올해 80세의 할머니도 3킬로그램의 굴을 까서 마을 어촌계에 넘기고 주저앉아 한숨을 돌린다. 이날 굴밭에 나간 소야도 할머니는 10여명에 이른다. 소야도만이 아니라 인근 덕적도에서도 굴작업을 많이 하고 있다. 할머니들이 까온 굴은 많게는 4킬로그램에서 작게는 3킬로그램에 이른다. 이들은 찬바람이 이는 10월에서 봄바람이 보는 4월 초까지 굴까는 작업은 계속한다.

한때 김양식도 많이 했지만 지금은 거의 하지 않고 있으며 오직 굴작업만이 유일한 소득원이다. 굴을 채취하기 위해 사용되는 어구는 '죄빵수' 또는 '죄'라고 부르는 조새와 굴을 담는 '종태'라는 굴바구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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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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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소야도에서 굴작업이 끝나면 특별한 생업이 없다. 손바닥 보다 작은 밭떼기 농사랄 것도 없기에 작은 섬에 손으로 들로 나물과 약초를 캐서 팔고, 가끔씩 바지락 작업을 하는 정도가 전부다. 주민들의 말처럼 '어거지로 산다'는 것이 틀린 말은 아닐성 싶다.

얼마 전까지 소정방이 머물러 먹었다는 우물 인근에 손바닥만 한 논들이 있어 농사를 짓기도 했지만 지금은 묵히고 있으며 밭을 일구고 굴작업을 하며 생활하고 있다. 최근 마을 앞 어장에 수하식 굴양식을 시설해 가능성을 살펴보고 있다.

그렇지만 할머니들 주머니엔 돈이 마르질 않는다. 굴을 쪼고, 나물과 약초를 캐서 아들손자들 놀러오면 '표 끊어주고, 사탕 값'까지 주는 할머니들이다. 한때는 꽃게잡이로 남자들이 돈도 만져 봤지만 지금은 뱃일은 거의 하지 않고 있다.

배를 타고 학교로 간다

소야도에서 배를 타고 덕적도에 있는 학교로 공부를 하러 다니는 학생은 고등학생 1명, 중학생 3명, 초등학생 8명 등 모두 12명이다. 이들 학생들이 부담하는 왕복 배삯은 200원, 한 달이면 5천 원 정도이며, 나머지는 교육청(국가)에서 부담하고 있다.

오후 2시 무렵 덕적도 진리 도우포구에는 8명의 초등학생들이 모여 배를 기다리고 있다. 아이들은 가방을 선착장에 팽개치고 사탕과 과자를 입에 물고 장난질에 정신이 없다. 안개가 끼지 않는 날이면 손을 뻗치면 닿을 듯 가까운 거리지만, 소야도 선착장인 나루개도 보이질 않는다.

통통거리며 닿은 소야도와 덕적도가 정기여객선이 가까 와서야 겨우 확인할 수 있을 정도였다. 녀석들은 배를 타고서도 장난질에 정신이 없다. 아직도 바람이 매섭지만 애들은 익숙한지 우리 일행만 웅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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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소야도와 덕적도를 오가는 여객선의 선장 최병렬씨는 이곳 주민들에게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학생들을 등하교는 물론이고 인천과 대부도에서 배가 닿는 시간이면 으레 덕적도 포구에 배를 댄다.

뿐만 아니라 소야도 좁은 골목을 누비며 학생들을 내려주고 주민들의 발이 되는 것도 최씨의 봉고차 덕분이다. 나루개 선착장에서 배표를 팔고, 관광객과 낚시 손님들을 위한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그는 소야도의 관광가이드이자 낚시점 주인, 나룻배 선장이다.

소야도를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낚시를 즐기는 태공들이다. '뒷장불', '진대끝', '마배뿌리', '북망뿌리' 등은 태공들이 즐겨 찾는 갯바위 낚시터다. 인천에서 쾌속선으로 1시간여 거리에 있기 때문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고도 섬 낚시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소야도 외에 덕적도를 비롯해 덕적군도에 관광객들의 상당수는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이다.

소야도는 갯바위 낚시 외에도 선상낚시를 즐길 수 있다. 인천에서 배를 차고 덕적도에 도착하면 작은 선박(종선)이 기다리고 있다가 소야도까지 이동한다. 주로 잡히는 어종은 우럭, 놀래미, 장어, 숭어, 농어 등이다.

서해안 고속도로가 개통되기 전에는 덕적도 서포리를 비롯해 해수욕장을 찾는 수도권 여름 관광객들이 밀려 들었지만 지금은 크게 감소하고 있다. 낚시인구의 증가와 함께 해양레저스포츠로 낚시에 대한 새로운 접근 요구되며, 단순하게 낚시꾼들에게 배를 대여해주거나 운반해주는 수준을 넘어서는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지방정부나 중앙의 관계 부처에서도 이러한 레저 인구의 변화추세에 맞춰 어민들의 소득창출에 필요한 지원을 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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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나루개에 사는 호영(9, 덕적초등학교)이가 배에서 뛰어내리자마자 나를 끌고 섬구경을 시켜주겠다면 마을로 들어선다. 맹랑한 녀석이 내게 이것저것을 묻기 시작했다.

"아저씨 놀래미 알아요?"
"상어는요, 갑오징어, 우럭, 쭈꾸미…."

그러더니 이번에는 어구 이름으로 나를 시험에 들게 한다.

"통발 알아요. 주꾸미는 뭘로 잡는 줄 알아요?"

다행히 바다와 섬을 뻔질나게 다닌 통에 초반에 녀석의 기세등등함을 누를 수 있었다. 초등학교 2학년인데 바다고기 이름과 잡는 법에 관해서는 수산분야 전문연구자를 능가한다. 심심했던지 며칠 전 낚시로 '놀래미' 두 마리를 잡은 이야기를 무용담처럼 늘어놓는다.

소야도에는 술파는 가게가 없었다. 몇 년 전 가게에서 술을 팔다 부녀회에서 쫓아와 박스 채 바다 속에 쳐 넣어버렸다. 그래도 주인인 최씨는 할 말이 없었다. 육지에서야 당장 경찰에 고발하고 난리가 났겠지만, 여기는 아직도 마을 규범이 법보다 앞선다.

마을회의에서 작은 섬마을이 벌어먹고 살기 위해서는 술 먹고 어영부영 하는 것을 금해야 한다고 정했기 때문이다. 부녀회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규칙이었지만 갯일을 비롯해 여성들의 경제활동 비중이 크기 때문에 남자들은 규칙을 어겼다가는 큰일을 치른다. 나루개의 선장 최씨는 우스갯소리로 소야도는 '모계사회'라고 이야기할 정도다.

"연수입이 많지 않아도, 사람들이 억척스러워서 인천에 집한 채씩 웬만하면 다 가지고 있어요. 여기 할머니들은 쌍지팡이 짚고 다녀도 아들 손주 오면 표 사주고 사탕 값 다 줘. 절대 안 놀아요. 여기 할머니들은 고사리 꺾고 둥굴레 캐서 팔고. 아들네 오히려 보태주는데. 하루에 최소한 3만원은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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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아내가 굴 까러 가는 길에 삽자루를 들고 낙지나 파겠다고 따라 나서 한나절 삽질 끝에 잡은 낙지 4마리를 주민이 술안주로 내놓았다. 원님 덕에 나팔 분다고 어촌계장님이 손님들과 술이나 한 잔 하려고 동네를 다 뒤져서 소주 세 병을 가져왔다. 안주 거리를 찾던 차 선창에서 주전자와 삽을 들고 들어오는 주민의 손을 끌고 먼저 집으로 들어가 대뜸 안주로 내놓으라고 윽박(?) 지른 까닭이다.

술상을 마련한 어촌계장은 정작 술은 한 잔 밖에 마시질 못하고 할머니들 굴 작업량을 확인하느라 술자리에 끼질 못했다. 마당에 큰 통을 엎어두고 위에 판자를 올려 술상이 마련되었다. 옷도 갈아입지 않는 바깥주인은 낙지를 손질해 다듬고 굴까는 작업을 하고, 방금 돌아온 아내는 된장, 마늘, 기름소금을 내온다. 싱싱한 굴도 바구니 채 내놓았다. 순식간에 술자리가 마련되고 주민들도 늘어났다. 소주 세 병이 게 눈 감추듯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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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토요일 오후 이장을 선출하기 위해서 소야도 주민들이 모두 마을회관으로 모였다. 다른 때 같으면 돼지라도 한 마리 잡고 술이라도 한 잔 하련만, 요즘 소야도 경기도 좋지 않다. 소야도 사람들의 가장 큰 바람은 덕적도와 다리를 놓는 일이다. 덕적도와 소야도는 가장 짧은 곳이 400미터에도 미치지 않는다. 여기도 예외 없이 선거철마다 다리가 놓이지만 매번 주민들은 매번 속아 표를 주곤 했다.

이제 선거도 하지 않겠다고 한다. 다리가 놓이지 않으면 인천으로 가는 쾌속선이라 대줬으면 하는 것이 주민들의 소원이다. 인천으로 가기 위해서 한 시간 전에 집에서 나서 걷거나 차를 타고 나루개 선창으로 가서 작은 배를 타고 덕적도로 건너가야 한다. 노인들뿐인 섬에서 한 시간을 갯바람을 맞으며 가는 것이란 여간 고역이 아니다. 덕적도와 가깝다는 이유로 배를 대지 않지만 주민들의 심리적 거리감은 덕적도에서 인천 가는 거리보다 멀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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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동안 섬과 갯벌을 기웃거리다 바다의 시간에 빠졌다. 그는 매일 바다로 가는 꿈을 꾼다. 해양문화 전문가이자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사진작가이기도 한 그는 갯사람들의 삶을 통해 ‘오래된 미래’와 대안을 찾고 있다. 현재 전남발전연구원 해양관광팀 연구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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