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구 회장이 구속되면 기회가 열린다

[김종배 뉴스가이드] '정 회장 구하기'에 반박함

등록 2006.04.25 11:16수정 2006.04.25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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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그룹 비자금 조성 및 경영권 편법승계 등의 혐의를 받고 있는 정몽구 회장이 24일 오전 서초동 대검찰청에 출두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비자금 조성 및 경영권 편법승계 등의 혐의를 받고 있는 정몽구 회장이 24일 오전 서초동 대검찰청에 출두하고 있다.오마이뉴스 권우성

이 정도면 호들갑이라 할 만하다. 일부 언론이 자문자답했다.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이 구속되면?→그룹 경영에 심각한 차질이 생긴다. 심지어 그룹이 붕괴할지도 모른다는 현대기아차 관계자의 말을 곧이곧대로 전한 언론도 있다.

이런 호들갑은 한국경영자총협회의 '호소'와 연결되면서 완성된 모습을 갖춘다. "자동차 산업은 다른 산업과의 연관성이 큰 만큼 관련 산업까지 피해가 확대돼서는 안 된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정 회장을 구속하면 한국 경제 전체에 주름살이 패인다는 논리다.

'정몽구 구하기'에 앞장 서는 언론은 <중앙일보>다. 상당수 언론이 정 회장의 검찰 소환 결과와 구속 여부를 건조하게 전했지만 <중앙일보>는 달랐다. <중앙일보>는 이렇게 진단했다.

"국가 경제에 미칠 파장을 무시할 수 없다. 39개의 계열사를 이끌며 지난해 85조원의 매출을 올렸던 기업 총수에 대한 구속은 대외 신인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정 회장의 구속이 현대차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다는 독특한 기업문화도 검찰에는 부담이다."

그래서 검찰이 "사법 정의와 경제 파장의 접합점을 놓고 장고에 들어갔다"고 전하기도 했다. 상당수 언론이 정 회장이 1천억원에 달하는 비자금 조성 사실을 모를 리 없다는 채동욱 대검 수사기획관의 말을 근거로 구속 가능성을 점친 반면 <중앙일보>는 '장고 중'이라고 했다.

다툴 일은 아니다. 며칠 내로 뚜껑이 열릴 테니까 구속 여부에 대한 엇갈리는 진단까지 여기서 따질 이유는 없다. 하나만 짚자.

'정몽구 구하기'에 나선 언론들


정 회장 구하기?... <중앙일보> 25일자 1면. 이 신문은 검찰이 검찰이 "사법 정의와 경제 파장의 접합점을 놓고 장고에 들어갔다"고 전했다.
정 회장 구하기?... <중앙일보> 25일자 1면. 이 신문은 검찰이 검찰이 "사법 정의와 경제 파장의 접합점을 놓고 장고에 들어갔다"고 전했다.<중앙> PDF
<중앙일보>를 위시한 일부 언론, 그리고 재계의 '위기 전파'에 몸을 웅크려야 할까? 정 회장이 구속되면 현대기아차 경영에 차질이 생기고 더 나아가 한국 경제에 먹구름이 낄까? 그렇다면 한 사람 구속시키는 것보다 다수가 경제활동을 영위케 하는 게 더 중요한 것 아닐까?

반박 사례가 있다. SK그룹의 최태원 회장의 구속과 두산 총수 일가의 경영일선 퇴진에도 불구하고 두 그룹의 경영에는 별 이상이 없었다. 이건희 회장의 장기 외유에도 불구하고 삼성 그룹 역시 이상 징후는 나타나지 않았다.


현대기아차와 재계는 다른 말을 한다. 현대기아차 그룹은 다른 재벌과 다르다고 한다. 계열사들이 기능별로 나눠져 그룹을 형성하는 독특한 구조이기 때문에 전체를 총괄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 필요할 뿐 아니라, 자동차 회사는 신제품 개발에 수천억원, 공장 하나 세우는 데 1조원 이상이 드는 고위험 사업이므로 과단성 있게 결단을 내릴 총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반박 논리 앞에 서면 말문이 막힌다. 그럼 이사회는 '핫바지 저고리'냐는 질문 이전에 던질 게 있다. 그럼 자동차 회사 경영자는 면책특권을 갖느냐는 질문이다. 반박 논리가 자동차 회사의 특성에 기대고 있기에 던지는 질문이다. 이런 식의 반박 논리는 자동차 회사의 특성이 바뀌지 않는 한 총수에 대한 '봐주기'도 계속돼야 한다는 엉뚱한 주장을 낳는다.

신제품 개발에 수천억원이 들고 공장 하나 짓는 데 1조원이 드는데도 왜 그걸 이사회가 아니라 총수 한 사람이 결정하느냐는 원론적인 지적도 내놓을 수 있지만 접자. 현실부터 살피라는 말에 밀릴 게 뻔하다. 그럼 이렇게 지적하자. 정 회장이 구속되면 경영 공백이 커지는 현상은 정 회장이 자초했다.

현대기아차 임원 인사가 잦았던 건 세상이 다 안다. 검찰의 현대기아차 비리 수사의 도화선이 된 전직 임원의 고발도 '멋대로 인사'에 기인했다는 분석도 있다. 정 회장 스스로 임원들의 업무 영역과 역량을 제한한 게 결국 족쇄가 된 것이다.

정 회장이 구속되면 현대기아차 그룹이 휘청거릴 것이라는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 오히려 뒤집어야 한다. 정 회장이 구속되면 기회가 열린다.

고민해야 할 건 '정 회장 이후'다

정 회장의 검찰 출두 나흘 전인 지난 20일 오전, 정 회장의 아들인 정의선 기아차 사장이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 소환되고 있다.
정 회장의 검찰 출두 나흘 전인 지난 20일 오전, 정 회장의 아들인 정의선 기아차 사장이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 소환되고 있다.오마이뉴스 권우성
두가지 사실을 되살려내자. 글로비스는 정 회장의 아들인 정의선 기아차 사장의 그룹 경영권 승계 창구로 통했다. 현대기아차가 자동차 운송사업을 몰아줘 회사 가치를 키운 뒤에 그 주식을 팔아 챙긴 돈으로 현대기아차 지분을 사들여 경영권을 확보한다는 게 정 회장 부자의 경영권 승계 구도였다.

그러다가 검찰의 수사 강도가 세지고 국민의 비난 여론이 비등해지자 글로비스의 주식 전량을 사회에 내놓기로 했다.

이는 뭘 뜻하는가? 그룹 경영권 승계 구도에 중대한 변수가 발생했다는 얘기다. 여기에 한 가지 요인이 덧붙여질 수도 있다. 정 회장의 구속이다.

'차제에'란 말은 이럴 때 쓰는 법이다. 차제에 현대기아차 그룹의 경영체제를 바꿀 수 있다. 정의선 기아차 사장의 경영권 승계 자금줄은 막혔다. 정 회장 경영 지배력은 이완될 수밖에 없다. 총수의 '직할부대' 역할을 한 그룹 기획총괄본부도 대폭 축소하겠다고 이미 선언해 놓은 상태다. 차제에 총수 1인이 지배하는 경영체제를 이사회 중심의 투명경영체제로 바꿀 수 있다.

현대기아차가 고민해야 할 건 "정 회장이 구속되면 어떻게 하나"가 아니다. "정 회장이 구속되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게 맞다. 물론 '어떻게'가 포괄해야 할 건 '땜질'이 아니라 개보수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정 회장이 구속되면'에 올인할 이유가 없다. 정 회장 구속 여부와는 상관없이 매우 중요시해야 할 사안이 있다. 이미 밝혀진 각종 비리에 현대기아차 소액 주주들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들의 대응 여하에 따라 현대기아차 경영 체제에 대한 논란과 개선이 시작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끝'을 읊조릴 때가 아니라 '시작'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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