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 지방선거는 '골육상쟁·목불인견'

[정치 톺아보기 130] 광주 5·18, 열린우리당의 '올인'과 민주당의 '사수'

등록 2006.05.17 19:03수정 2006.05.17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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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광주를 방문한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이 광주 충장로 우체국앞에서 꼭지점 댄스 동호회 회원들을 만나 회원들과 함께 즉석에서 꼭지점댄스를 추고 있다. ⓒ 연합뉴스 형민우

광주·전남지역 광역단체장 두 자리를 빼앗으려는 열린우리당과 이를 '사수'하려는 민주당의 싸움이 '점입가경(漸入佳境)'이다. 때마침 이 지역 정서에 큰 영향을 미치는 '5·18'을 앞둔 시점에 여당 인권위원장의 '부적절한 발언'과 문재인 전 민정수석의 '부산 정권' 발언이 불을 질렀다.

전쟁 양상은 한 마디로 '골육상쟁'(骨肉相爭)이다. 본디 한솥밥을 먹은 형제였으니 골육상쟁이라는 표현보다 더 적확한 표현도 찾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말이 골육상쟁이지 '뼈와 살이 싸우니' 이보다 더 처절한 싸움도 없다.

정동영 의장 등 열린우리당 지도부는 17일부터 이틀간 광주에 머물며 호남표를 집중 공략할 예정이다. 정 의장은 이미 지난 8일 김대중(DJ) 전 대통령을 예방한 데 이어 9일에도 광주를 방문해 이곳에서 이틀 동안이나 머물면서 '꼭지점 댄스'를 췄다.

정 의장이 광주에서 꼭지점 춤을 추는 동안, 김대중 전 대통령과는 아무런 '인연'이 없는 강금실 서울시장 후보가 DJ를 찾았다. 강 후보는 17일에 다시 광주를 찾아 5·18 국립묘지를 참배한 뒤 "광주정신을 계승하겠다"는 내용의 제2의 출마선언을 발표한다.

'뼈와 살이 싸우니' 이보다 더 처절한 싸움도 없다

전국적으로 선거를 지휘하는 정동영 의장이 광주에 가서 이틀 동안 머물며 꼭지점 댄스를 춘 데 이어 1주일만에 다시 광주를 찾고, DJ와 인연이 없는 강금실 서울시장 후보가 그 바쁜 일정에 짬을 내서 DJ를 찾아간 것일까. 이유는 불을 보듯 뻔하다. 전통적 지지층을 복원하기 위한 이른바 '집토끼 잡기' 전략이다.

선거에서 '산토끼'(상대당 지지층)는 늘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다. 상대방의 한 표를 잡아 내표로 만들면 결국 두 표를 얻는 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집토끼(전통적 지지층)보다는 산토끼 잡기에 더 열을 올린다. 마치 남의 떡이 커 보이는 이치와 같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의 '산토끼 잡기 성적'은 영 신통찮다. 한 달 동안 부지런히 '산토끼'를 잡으러 다녔지만 한나라당 지지율은 여전히 40% 안팎의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는 반면에 열린우리당은 답보상태다. 오죽했으면 정 의장이 지난 4일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푸념했을까.

"돈공천하고 성추행해도 지지율은 끄떡없는 정당, 이게 마술정치가 아니고 무엇인가."

이에 대해 정창교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국민들에게 한나라당은 '부패' 이미지라면, 열린우리당은 '무능하다'는 이미지를 주고 있다"고 진단했다. 한나라당 의원의 비리가 잇따르고 있지만 '그래도 무능한 열린우리당보다는 한나라당이 낫다'는 여론이 돌면서, 한나라당이 '역(逆) 반사이익'을 보고 있다는 분석이다.

여론조사 결과도 이를 뒷받침한다. 16개 광역단체장 후보를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결과는 한결같이 14(야당) : 2(여당)의 완패 구도이다. 좀더 세분하면 ▲11석(한나라당) ▲2석(열린우리당) ▲2석(민주당) ▲1석(무소속)이다.

2002년 지방선거 성적은 ▲한나라당 11석 ▲민주당 4석(호남+제주) ▲자민련 1석(충남)이었다. 현재 1, 2위 후보간 격차가 적은 제주도만 해도 무소속 후보가 한나라당 후보를 앞선 곳이니 열린우리당 2석(대전·전북) 구도에는 별다른 '이변'이 일어날 것같지 않아 보인다. 오히려 대전에선 한나라당 추격세가 만만치 않다. 이대로라면 2002년 민주당이 거둔 것보다 더 초라한 '성적표'를 면할 수 없다.

조재환 총장의 4억 사과상자 계기로 '약한 고리' 치고 들어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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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렁크 속 돈상자... 최낙도 전 민주당 의원에게서 공천 청탁과 함께 현금 4억원을 받은 혐의로 경찰에 조사 중인 민주당 조재환 사무총장의 승용차에 현금이 든 사과상자 2개가 실려 있다. ⓒ 연합뉴스

그러던 차에 조재환 민주당 사무총장의 4억 사과상자 사건의 '반사이익'으로 광주에서 열린우리당 지지도가 민주당을 앞서자 내린 결론이 광주-전남 집중공략인 듯하다. 한나라당과는 별로 승산이 없어 보이니 '약한 고리'를 치고 들어가려는 전략이다.

목표는 두 가지이다. 첫째, 광주에서의 열린우리당 지지율을 높이는 것이 '잃어버린 수도권 호남표'를 결집시킬 수 있다는 판단에서이다. 2002년 광주가 노풍(盧風)의 진원지였듯이, 이번에도 광주가 '강풍'(강금실 바람)의 진원지이기를 바라는 '2002 광주 어게인'(again)이다.

그래서 열린우리당에게 광주는 더 없이 '소중한 존재'이다. '광주'가 있어야 '서울'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동영 의장은 9일 이렇게 역설했다.

"우리당의 광주시장 선거 승리는 시장선거에 그치지 않고 5·31 지방선거에서 승리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광주를 놓치는 것은 다른 지역에서 승리하더라도 5·31 지방선거 패배를 의미한다."

열린우리당에게 처음에는 광주가 '일부'였지만 이제는 사실상 '전부'가 되었다는 얘기다. 이는 지방선거 승리의 '상징'이 서울에서 광주로 '중심 이동'했음을 의미한다. 이는 광주-전남 공략의 두 번째 목표이자 현실적 목표이기도 하다. 서울시장 탈환은 안되더라도 2002년 민주당이 석권한 호남이라도 다 차지하려는 것이다.

사실 5·31 지방선거를 앞두고 열린우리당은 수도권, 특히 서울시장 선거에 모든 것을 걸었다. 내심으로는 다른 곳을 다 내주더라도 서울에서 이기면 패배는 아니고 전열을 가다듬으면 다음 대선에서 해볼 만하다는 계산이었다.

그러나 열린우리당 지도부는 광주에 '올인'함으로써 '질'보다는 '양'을 택하기로 한 모양이다. 다 주더라도 이기려했던 서울을 포기하더라도 '전북·대전+광주'의 3석을 확보하면 승리로 간주할 수 있다는 나름대로의 '발상의 전환'이다.

문재인·이원영의 '부산 정권' 및 5·18 관련 발언과 민주당의 역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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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광주를 찾은 이원영 의원이 침통한 표정으로 자신의 '5·18 발언'에 대해 해명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강성관

그런데 민주당에게는 광주가 처음부터 '전부'였다. 광주를 내주는 것은 민주당이 뿌리채 뽑히는 것이다. 한화갑 대표를 비롯해 김홍일·이정일 의원까지 사법부 판단에 따라 의석수 10석이 간당간당하는 민주당으로서는 열린우리당의 공세에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싸울 수밖에 없다. 그러니 광주는 애시당초 골육상쟁을 벌일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난 곳이다.

그러던 차에 이원영 열린우리당 인권위원장의 '광주 5·18 군 개입은 질서유지 목적'이라는 발언과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중의 측근인 문재인 전 수석의 '노무현 정권은 부산 정권' 발언이 튀어 나왔다. '사과상자'의 반사이득으로 모처럼 광주에서 정당 지지율이 앞서기 시작한 열린우리당으로서는 대형 악재이다. 민주당이 이 호재를 놓칠리 없다.

박광태 광주시장 후보와 박준영 전남도지사 후보는 13일 광주·전남지역 기초단체장 등 예비후보 2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긴급기자회견을 열어 "이원영 의원의 발언은 5·18 광주민중항쟁 정신을 전면부정하는 것"이라면서 이렇게 비난했다.

"열린우리당은 그러면서도 입만 열면 '5월정신 계승'을 부르짓고 궁색할 때마다 광주를 찾아 5월 영령들앞에 고개를 숙이고 있다. 열린우리당은 더 이상 광주를 말할 자격이 없다."

다급한 것은 열린우리당이다. 정치 쟁점화될 조짐을 보이자 열린우리당은 14일 최고위원회를 열어 이 의원 당직을 박탈해 징계위에 회부하고 "이 의원의 발언은 잘못된 것으로 국민들에게 심려를 끼쳐 드려서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그러면서도 "문제를 정략적으로 확대·왜곡해서 이용하려고 하는 것은 오히려 5·18 정신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민주당에는 역공을 취했다. 사실 광주가 '전부'인 민주당이 '발끈'한 것은 이해되지만 이 또한 '오버'이다. 이원영 의원의 5·18 발언은 의도적인 발언이라기보다는 '실언'에 가깝다고 보기 때문이다.

열린우리당의 '광주시장후보 전략공천'과 문재인 전 수석의 '부산 정권' 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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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열린우리당 최고위원회가 광주광역시장 후보 경선과 관련 "김재균 후보측의 여론조사 합의문 공개로 여론조사경선이 어렵다"고 결정하자 김재균 후보 지지 당원들은 이날 저녁 7시 30분경 부터 광주시당 사무실에서 "전략공천 반대"를 요구하며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 오마이뉴스 강성관

그러나 열린우리당 지도부의 '광주시장 후보 전략공천'과 문재인 전 수석의 '부산 정권' 발언은 이와는 차원이 다르다.

민주당 분당 및 신당 창당의 명분은 '국민참여경선'을 핵심으로 한 정치개혁에 있었다. 신당 참여세력은 기득권에 연연해 국민참여경선이라는 정치개혁을 외면한 이들에게 '잔민당'이라는 레테르를 선물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열린우리당이 상향식 공천을 당연시하는 당원들의 기대를 져버린 채, 그것도 민주화의 상징이자 노풍의 진원지인 광주에서 '전략공천'을 단행했다. 민주당은 '이상한 행태의 공천'이라고 비꼬았지만, 민주당도 광주의 3개지역 구청장 후보를 전략공천했으니 '피장파장'으로 할 말이 없다.

물론 그래도 문제는 남는다. 결국 '그 밥에 그 나물이고 그 당이 그 당'이라면 국민참여경선을 골자로 한 정치개혁이라는 분당의 대의명분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던 차에 나온 문재인 전 수석의 '부산 정권' 발언은 더 심각한 내홍을 예고한다.

문 전 수석은 16일 부산지역 기자들과 만나 "APEC 정상회의와 신항 개발 등 부산을 지원했고, 대통령도 부산 출신인데, 부산 시민들이 왜 (현 정권을) 부산 정권으로 안받아들이는지 이해가 안된다"면서 "한 지역에서 한 정당이 지방선거를 독점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의) 통합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 대통령의 의지"라고 말했다.

정치와 담쌓은 문 전 수석의 평소 성품으로 보건대, 그의 '부산 정권' 발언은 야당들의 주장처럼 '지역주의를 부추겨 마지막 생존의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의도'로 보이지는 않는다. 이원영 의원의 발언처럼 정치와는 거리가 먼 그의 발언 또한 '실언'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열린우리당 분당은 2003년 분당 직전의 '도로 민주당'으로 돌아가는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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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열린우리당은 민주당과의 '통합파'와 노 대통령을 정점으로 한 '통합 반대파'로 갈라설 수밖에 없다. 그리되면 다시 2003년 분당 직전의 '도로 민주당'으로 돌아가는 셈이다. 2003년 8월 28일 오전 여의도 민주당사에서 열린 당무회의에서 김태랑 최고위원(오른쪽)과 유용태 의원이 삿대질을 하며 다투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문제는 앞문장이 아니라 뒷문장이다. 앞문장은 자신의 불만과 푸념을 토로한 것이지만, 뒷문장은 '노 대통령의 의지'를 전한 것이다. 5·31 지방선거를 보름 앞두고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의 통합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 대통령의 의지"라는 그의 발언이 나온 것은 의미심장하다. 왜냐하면 열린우리당 내부에서는 이미 지방선거 패배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5·31 이후에 대비하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한나라당 지지구도가 고착된 상황에서 이번 지방선거의 후폭풍은 문 전 수석의 기대와 달리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으로 불 가능성이 크다. 당장 이번 지방선거의 '성적표'는 곧바로 여권발 정계개편의 단초를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2002년 노풍의 진원지였던 광주·전남은 고건 전 국무총리의 역할 구도에 비추어도 정계개편의 진원지가 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누가 주도권을 잡느냐이다. 현재의 국회의석수를 기준하면 민주당 주도권은 '희망사항'일 뿐이다. 광주·전남에서 열린우리당과 무소속이 선전하고 민주당이 기대만큼 성적을 못 내면 오히려 민주당은 지역당이란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열린우리당에 흡수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광주·전남에서 민주당의 압도적 승리로 결판나면 사정이 다르다. 당장 호남 출신 의원들을 중심으로 열린우리당 내에서 '민주당과 떨어져서는 정권을 재창출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다. 그리되면 무소속으로 당선된 단체장들도 자연스럽게 민주당에 합류할 가능성이 커진다. '고건 변수'를 매개로 민주당이 향후 정계개편에서 주도적 위치에 서게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결국 열린우리당은 민주당과의 '통합파'와 노 대통령을 정점으로 한 '통합 반대파'로 갈라설 수밖에 없다. 전자는 호남 및 수도권 의원들을 중심으로 틀이 짜여지고, 후자는 영남권 및 개혁당 출신들을 중심으로 뭉칠 것으로 보인다.

그리되면 다시 2003년 분당 직전의 '도로 민주당'으로 돌아가는 셈이다. 어찌보면 자업자득(自業自得)이고, 어찌보면 인과응보(因果應報)이다. 그런 점에서 열린우리당의 호남 집중공략은 '제살 파먹기'이다.

결국 이번 지방선거는 열린우리당 대 한나라당의 대결이 아니라 호남 3석을 둘러싼 열린우리당 대 민주당의 대결인 셈이다. 그러니 목불인견(目不忍見)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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