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섬 밝히는 등대... 과거에는 침략 이정표

[5·31 바다의날] 아픈 역사 지닌 한국 최초의 무인 등대섬, 팔미도에 가다

등록 2006.05.30 17:47수정 2006.06.04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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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갈매기가 나그네를 반기는 팔미도

갈매기가 나그네를 반기는 팔미도 ⓒ 박상건

a 팔미도 전경을 촬영 중인 탐사팀과 멀리 우뚝 선 팔미도 등대

팔미도 전경을 촬영 중인 탐사팀과 멀리 우뚝 선 팔미도 등대 ⓒ 박상건

섬사람들에게 섬은 풍요의 대상이고 안식처이다. 뱃사람에게 섬은 피안의 대상이다.

섬은 암석과 어족 해조류 등 자연사 문화자원과 섬사람들의 생활사 자원의 보고이기도 하다. 바닷길을 통한 교류의 장이면서 침략의 대상이기도 하다. 역사적 문화적 인물과 신앙과 종교문화가 공존하는 곳이기도 하다.


5월 31일은 '바다의 날'이다. 장보고가 청해진을 설치한 날인 바다의 날을 맞아 섬과 바다에 대한 사랑을 다시금 되새김질해 보았으면 좋겠다.

많은 사람들이 섬을 찾아 떠난다. 우리나라 해양 레저인구는 연 1억여 명. 문제는 여행객들의 발길을 스치고 난 섬과 바다에서는 늘 신음의 소리가 들린다는 사실이다. 육상자원이 고갈되기 시작하면서 바다는 마지막 생명의 보고로 떠올랐다.

그러나 지난해 바다에 버려진 육상폐기물만도 993만 톤에 이른다. 그래서 해양투기 허용요건을 강화하자는 목소리도 들린다. 섬 휴식년제를 실시하자는 지적도 있다. 낚시 면허제를 실시하자는 주장도 만만찮다. 낚시 인구는 700만에 이른다.

납 오염과 저인망 어선들이 버린 그물이 떠 밀려다니면서 인천 앞바다를 오가는 여객선들이 멈춰 서곤 한다. 발진기 역할을 하는 스크루에 그물이 걸려든 것이다.

팔미도, 서해 입·출항 선박들의 신호등


a 접안 시설이 되어있지 않아 쪽배를 이용해 탐사팀을 내려준 후 표지선 쪽으로 귀항하는 모습

접안 시설이 되어있지 않아 쪽배를 이용해 탐사팀을 내려준 후 표지선 쪽으로 귀항하는 모습 ⓒ 박상건

a 해산물이 복원되면서 팔미도에는 물새들이 찾아들고 있다.

해산물이 복원되면서 팔미도에는 물새들이 찾아들고 있다. ⓒ 박상건

지난 23일 섬문화연구소(소장 박상건)는 인천해양수산청 행정선(표지선·등대를 관리하는 배)의 도움을 받아 무인도 팔미도 탐사에 나섰다.

팔미도는 인천항에서 남쪽으로 15.7㎞ 떨어진 작은 섬이다. 팔미도는 모래톱에 의해 연결된 두개의 섬이 마치 한자의 여덟팔(八)자처럼 양쪽으로 뻗어 내린 꼬리와 같다고 하여 여덟 팔(八), 꼬리미(尾)자를 따서 팔미도라 부른다.


본디 모래가 많았던 이 섬은 최근 인근 해역의 오염과 모래 채취사업으로 해산물이 죽어가고 모래가 다 휩쓸려 나가 다른 곳에서 모래를 실어와 되살린 섬이다. 다행스런 것은 고동과 따개비들이 다시 살아나고 있었다. 꼬리 섬 쪽에서는 가마우지가 서식하고 있었다. 섬 안에는 식물들이 녹음으로 짙어가며 울창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탐사팀은 선박이 정박할 수 있는 접안 시설이 되어 있지 않는 탓에 함정에서 내려 다시 노 젓는 배를 타고 섬으로 들어갔다. 이 섬에서는 등대로 가는 보급품을 이런 식으로 실어 나른다. 등대원들이 바위 쪽으로 작은 배를 기다렸다가 보급품을 받아 지게에 짊어지고 가파른 등대 길을 오른다.

팔미도 섬 안에는 칡, 해송, 담쟁이넝쿨, 패랭이꽃 등이 서식한다. 등대 아래 숲에서 만난 담쟁이넝쿨은 수직의 나무들을 비비꼬며 타오르고 있었다. 우리네 삶도 그렇게 기쁨과 슬픔을 반반씩 버무려 비비꼬며 사는 것이 아니던가. 넝쿨들이 보듬고 있는 숲을 따라가다 보면 우뚝 솟은 하얀 등대가 있다.

a 팔미도는 담쟁이넝쿨 군락지. 비비꼬며 사는 풍경이 우리네 삶을 닮았다.

팔미도는 담쟁이넝쿨 군락지. 비비꼬며 사는 풍경이 우리네 삶을 닮았다. ⓒ 박상건

a 등대 주변에는 해송이 서식한다. 멀리 외항선의 고동소리와 함께 그 자태가 퍽 이채롭다.

등대 주변에는 해송이 서식한다. 멀리 외항선의 고동소리와 함께 그 자태가 퍽 이채롭다. ⓒ 박상건

등대를 중심으로 한쪽 뱃길은 내항으로서 여객선이 드나들고, 한쪽은 외항으로서 국제 여객선과 외항선이 드나든다. 다시 말해, 팔미도등대는 인천항을 중심으로 하는 황해의 입·출항 선박들의 신호등 역할을 하고 있다.

팔미도 등대는 1903년 6월1일 해발 71m에 세워진 우리나라 최초 등대이다. 19세기 말 우리나라를 넘보던 열강들은 앞 다투어 인천항에 자국의 정치적, 경제적 거점을 확보하여 각종 이권을 손아귀에 쥐려고 했다. 그 때마다 팔미도 등대는 침략의 이정표 역할을 했던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처럼 103년의 전통을 가진 팔미도 등대는 일본이 러일전쟁을 대비하기 위해 우리나라에 만들도록 지시함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일본은 "한국 정부는 통상이후 각 항(各港)을 수리하고 등대와 초표를 설치한다"라는 자기들 마음대로 만든 '통상장정(通常章程)'이라는 조항을 들어 등대건설을 강요했다.

이처럼 우리나라 대부분의 등대는 일본의 대륙진출을 위한 군사적 목적으로 섬 요충지마다 만들어졌다.

인천상륙작전 때도 불 밝히다

a 103년 전통의 등대(왼쪽)와 최근 첨단시설로 재단장한 등대

103년 전통의 등대(왼쪽)와 최근 첨단시설로 재단장한 등대 ⓒ 박상건

a 등대의 심지랄 수 있는 등명기. 이 불빛이 자그마치 50km를 비춘다.

등대의 심지랄 수 있는 등명기. 이 불빛이 자그마치 50km를 비춘다. ⓒ 박상건

6·25 때는 맥아더 사령관이 인천 상륙작전을 위한 요충지로 팔미도를 택했고 3명의 미군과 3명의 한국 장교가 이곳에 파견돼 9월 14일 자정에 등대 불을 밝혀 7개국 7만 5천명의 병력과 261척의 연합군 함대가 이곳을 출발해 인천상륙작전을 펼쳤다.

유서 깊은 팔미도 등대는 맨 처음 석유 백열등으로 불을 밝혔다. 그러다가 1954년 8월 전기등으로 교체하고 전기식 무신호기가 설치됐다. 99년 8월에 DGPS(위성항법정보 시스템)가 설치돼 먼 거리를 항해하는 선박과 불빛의 오차 범위가 5m 이내로 좁혀지는 등 첨단 시설을 겸비하고 있다. 팔미도등대 불빛은 27마일에 이른다. 불빛은 10초에 한 번씩 반짝인다.

부도 등 인근 무인도에서 근무하다가 이곳에 온지 3년 정도 됐다는 이성배(58) 소장은 "팔미도는 역사적으로도 의미가 깊지만 77년 인기드라마 전우 촬영지이기도 하다"면서 "등대원은 3명인데 육지에서 9일 쉬고 22일 근무하는 체제로, 실제 등대에서는 2명이 근무한다"고 설명했다.

등대원들은 일몰에 등대 불을 밝히고 일출에 등대 불빛을 끈다. 그리고 등대 주변 제초작업, 등명기 닦기, 1시간 단위로 기상청에 기상상황 보고, 발전 시스템 점검 등으로 하루 일과를 보낸다.

때로는 등대 주변에서 텃밭을 일군다. 기상악화로 보급선이 오지 못 할 것에 대비해 직접 채소류를 심거나 해산물을 채취해 보급식량으로 준비한다. 특히 팔미도에는 물이 나오지 않아 육지에서 보급선을 통해 지원받고 있다. 그래서 가장 아껴야 할 것이 물이다.

a 등대 맨 끝에서 내려다 본 팔미도 앞바다의 어선과 여객선

등대 맨 끝에서 내려다 본 팔미도 앞바다의 어선과 여객선 ⓒ 박상건

a 덕적군도 방향에서 바라본 노을지는 팔미도의 모습

덕적군도 방향에서 바라본 노을지는 팔미도의 모습 ⓒ 박상건

등대원과 등대만이 우뚝 선 무인도 팔미도는 적막하지만 아담하고 푸른 섬이다. 특히 팔미도 낙조는 인천팔경 중 하나이다. 해질 무렵 팔미도를 중심으로 배들이 오가는 모습이나 해무 낀 날에 무의도 실미도 영흥도 선재도 쪽에서 바라보면 한 폭의 수채화이다. 갯바위에 한동안 사색하는 데 숭어가 물위로 뛰어 올랐다. 등대 주변은 갯바위에서는 우럭과 놀래미, 광어도 서식한다.

무인도에 4시간 머물다가 해양수산청 함정이 탐사팀을 태우러 와 우리는 다시 인천항으로 빠져나왔다.

등대원 3명이 돌아가며 지키는 무인도... 낙조는 한폭의 수채화

잘 정리된 정원에 한 그루 분재처럼 푸른 바다에 떠 있는 팔미도. 그 섬을 바라보며 남다른 감회에 젖어들었다. 섬, 바다 그리고 등대에 대한 애정을 누구보다도 가슴 깊은 곳에 담는 순간이었다.

섬과 바다, 이제 더 이상 몸부림치게 하지 말자. 강대국의 침략의 뱃길을 밝히는 등대가 되지 말게 하자. 물보라 치며 흔들리며 가는 함정의 거리만큼 먼발치로 사라지는 팔미도에 대한 애틋함과 그리움은 그래서 오래도록 가슴 깊은 곳에서 파도처럼 출렁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 5월 31일은 바다의 날이다. 육상자원 고갈로 마지막 보고가 된 바다. 강대국 침략의 뱃길을 밝히던 섬과 등대. 우리 이제 더이상 아픈 해양사를 만들지 말자.

덧붙이는 글 5월 31일은 바다의 날이다. 육상자원 고갈로 마지막 보고가 된 바다. 강대국 침략의 뱃길을 밝히던 섬과 등대. 우리 이제 더이상 아픈 해양사를 만들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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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언론학박사, 한국기자협회 자정운동특별추진위원장, <샘이깊은물> 편집부장,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위원, 한국잡지학회장, 국립등대박물관 운영위원을 지냈다. (사)섬문화연구소장, 동국대 겸임교수. 저서 <주말이 기다려지는 행복한 섬여행> <바다, 섬을 품다> <포구의 아침> <빈손으로 돌아와 웃다> <예비언론인을 위한 미디어글쓰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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