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장과 평화가 공존하는 서해 최북단 섬 백령도

조업 불편해 어민보다 농민이 많은 섬, 파도만 남북한계선 넘나들고...

등록 2006.04.18 16:09수정 2006.04.20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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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 최북단 섬 백령도. 섬사람들은 백령도를 "맘대로 올 수 없고 맘대로 나갈 수도 없는 섬"이라고 부른다. 먼 바다 백령도를 오가는 여객선은 3천톤급에 이르지만 해무가 끼고 파랑주의보가 잦은 탓에 뱃길은 늘 빗장을 열어두고 있는 것이 아니다.

a 대청도를 지나 백령도를 향하는 쾌속선

대청도를 지나 백령도를 향하는 쾌속선 ⓒ 박상건

그 먼 섬 백령도는 기상변화도 그러거니와 법에 따라 선박운행이 통제되는 이른바 해상교통 취약지역으로 분류되어 있다. 북위 37°52′에 걸쳐 있는 백령도는 2㎞앞이 38선이다. 곳곳에 군사시설이 들어서 북한과 팽팽하게 맞서고 선 풍경은 긴장과 평화가 공존하는 섬이다.


그러나 백령도 여행에 있어 이러한 군사시설 지역을 제외하면 장님 코끼리 만지기 여행일 수밖에 없다. 때로 자연 풍광에 몰입되기도 하지만 긴장된 분단조국의 실상을 통해 평화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일도 의미 있는 여행일 것이다. 그런 백령도의 곳곳을 다 돌아보는 탐사여행을 위해 섬문화연구소 회원들은 국정원, 해병대 도움을 받아 지난 4월 7일 그 섬 백령도로 향했다.

인천항을 떠날 즈음 여객선 선장은 "해무가 낀 상태이긴 하나 파고가 1.5m 일고 있어 공해상으로 나갈 수 있는 기상으로는 꽤 운이 좋은 편이다"라고 귀띔해주었다. 무사히 도착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였다. 백령도는 인천항에서 북녘으로 222km 해상에 떠있다. 아주 빠른 쾌속선이지만 4시간이 소요됐다. 직선거리가 아닌 공해상 남쪽 한계선을 타고 가는 곡선의 뱃길이었다.

백령도 공해상은 남북한뿐만 아니라 중국까지 얽혀 서로 생존과 경쟁을 위한 대치국면이 반복되는 해상이다. 백령도의 원래 이름은 곡도였다. '곡'은 '따오기 곡'자를 쓰는데 섬 모양이 따오기 흰 날개가 날아가는 모습이라는 것. 지금도 백령도는 철새들의 낙원이다. 지도를 놓고 보더라도 흰 새가 날아가는 모양새이다. 특히 청명한 날에는 섬 전체가 비상하는 철새로 장관을 이룬다. 푸른 바다와 하늘이 배경이 되어 영락없이 한 폭의 수채화이다.

a 백령도 탐사팀

백령도 탐사팀 ⓒ 박상건

지금의 백령도라고 부른 것은 고려 태조 때이다. 그 유래는 전설에 따른 것이다. 가난한 선비와 사또의 딸이 사랑했는데 사또가 이를 못마땅해 선비를 먼 섬으로 내쫓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하얀 학 한 마리가 종이를 물어다 선비 앞에 떨어뜨리고 갔다. 그것은 사또의 딸이 보낸 편지였고 선비는 답장을 학에게 물려주었다. 사또의 딸은 그 편지를 받고 선비의 섬으로 도망쳤다. 그 섬이 하도 희고('흰백白') 날개를 펼치는('날개 령翎') 모습이었다는 것이다.

서해 5도 중 하나인 백령도는 고려 때부터 오도(五道), 서해도, 오해도(五海島)라고 불렀다. 조선(세종) 때 해주목사(海州牧師) 관할이었고 일제 말까지도 황해도 장연군 백령면이었으니 북한의 생활 근거지였던 셈. 그렇게 해방을 맞은 백령도는 38선이 남북을 가르면서 옹진군 백령면에 속해 있다가 1995년 인천광역시에 편입되었다.


장봉도, 연평 앞바다 그리고 선미도를 휘어 돌아 소청도 대청도를 걸친 긴 항해 끝에 마침 내 백령도에 도착했다. 배가 닻을 내린 곳은 용기포항. 일반인과 군인들이 분리된 출입구를 이용한다.

일행은 미리 기다리던 안보수련원 버스를 타고 백령도 내륙 탐사에 나섰다. 백령도는 90년대 초까지 국내 13번째 큰 섬이었다. 1993년 3년에 걸친 방조제 공사와 간석지 매립공사가 마무리됨에 따라 현재는 46.37㎢ 면적의 국내 8번째의 큰 섬이 되었다. 사곶해안 기슭과 화동마을을 매립해 담수호를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해안선을 잇는 양쪽 방조제 사이에 다리를 만들어 백령대교라고 불렀는데 그 길이는 10m에 불과하다. 그러니 국내 '대교'라는 이름을 단 다리치고는 가장 짧은 셈이다.


a 바다에서 갓 돌아온 어민들이 백령도 특산물 삐투리를 건져올리고 있다.

바다에서 갓 돌아온 어민들이 백령도 특산물 삐투리를 건져올리고 있다. ⓒ 박상건

방조제 안으로 펼쳐지는 들판은 전형적 농촌풍경이다. 낮은 구릉의 작물이 해풍을 맞으며 황금들판으로 익어가고 있다. 군사시설이 많은 탓에 1600여 가구 중에서 7%만이 어업에 종사하고 대부분 농민이다. 거대한 담수호도 이들 농민을 위한 것이었는데 물길을 막으면서 자연생태계가 파괴되자 결국 수문을 다시 열어 담수에는 실패했다. 민물과 바닷물이 뒤섞이면서 이 담수호에는 붕어와 망둥어 숭어 놀래미 등이 공생 중이다. 6월이면 담수호 주변에 유채꽃이 흐드러지게 핀다.

담수호를 농수로 사용하지 못한 농민들은 관정을 파서 지하수를 끌어 올려 농사를 짓는다. 갯물이 빠진 물을 사용한 탓에 쌀 맛이 아주 좋다. 이 쌀가루에 짠 김치를 넣어 만든 것이 백령도 토속음식 '짠지떡'이다. 마을사람들의 토속음식이다. 메밀 칼국수에 이 짠지떡 그리고 막걸리 한사발이면 농번기의 시름을 풀 수 있었다.

논밭농사 외에 이 지역만의 특산물을 생산하며 소득을 높이는 주민들도 많다. 혈액순환, 피로회복, 신경통에 좋다는 백령도 약쑥은 대표적 특산품. 서해의 최북단의 해풍과 해무를 맞으며 자생한 무공해쑥이다. 주민 유옥자씨는 "어업을 하는데 한계가 있어서 가능하면 고소득을 내는 농업을 하려는 게 주민들의 생각"이라고 전하면서 "9년 전부터는 인삼을 재배하는 농가도 늘어나고 있는데 백령도는 일조량이 적어 유실수를 심을 수 없다는 점이다"라고 안타까워 했다.

백령도는 문화유산도 많은 섬이다. 진촌리 일대 7만6천 여 평에는 패총이 널려 있다. 주변에 도끼, 토기편들이 산재해 있다. 한국문학의 무대이기도 하다. 심청이가 아버지 심봉사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공양미 삼백 석에 몸을 던진 인당수와 심청이가 환생했다는 연봉바위, 그 무대가 저 편 장산곶과 연꽃이 흘러왔다는 백령도 앞바다이다. 이를 기리기 위해 고봉포구 산자락에 심청각이 건립돼 있다. 건물 안에는 당시 무대를 재현하는 모형도와 심청전에 관련된 판소리, 영화, 고서 등이 전시되어 있다.

a 천연비행장 사곶해안. 군트럭 바퀴자국이 선명하다

천연비행장 사곶해안. 군트럭 바퀴자국이 선명하다 ⓒ 박상건

다시 사곶해변을 향했다. 규암 가루가 층층이 쌓이고 그 모래 사이에 뻘이 뒤섞여 형성된 이 해변은 '살아있는 모래'로 불린다. 모래 속에 비단조개, 게, 골뱅이 등이 서식한다. 이 백사장 길이는 3.7㎞. 피서철에는 한쪽은 장병들의 야영장으로 한쪽은 일반인 해수욕장으로 개방하고 있다.

6·25 때 유엔군이 임시 활주로로 사용했던 이곳은 군사용 천연비행장이다. 썰물 때는 300m 이상의 단단한 도로가 생겨 군수송기 이착륙이 가능하고 자동차가 시속 100㎞ 이상 달릴 수 있는 신비의 해변이다. 이런 천연 활주로용 해변은 이탈리아 나폴리와 함께 백령도 사곶해변 뿐이다.

백령도는 어민들의 생활 근거지인 용기포, 오군포, 고봉, 사항 등 7개의 포구 외에 모두 선박 출입이 금지돼 있다. 바닷가마다 큰 쇠기둥을 박아놓은 것을 자주 볼 수 있었는데 이를 '용치'라고 부른다. 용의 이빨이라는 뜻. 간첩선의 접근을 막기 위한 안보시설물이다.

a 콩알만한 돌들로 해변을 이룬 콩돌해안

콩알만한 돌들로 해변을 이룬 콩돌해안 ⓒ 박상건

사곶해변과 함께 백령도 여행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곳이 콩돌해안. 일반적으로 남쪽바다의 몽돌해안과는 달리 정말 콩알만한 자갈들로 1㎞ 해안을 이룬다. 이는 규암이 부서져 파도에 부딪치고 씻기기를 반복하면서 콩처럼 작은 돌이 된 것. 특이한 것은 작은 자갈들이 백색, 갈색, 회색, 적갈색, 엷은 청색 등 형형색색을 이루고 문양이 새겨져 있다는 점이다. 옛날에는 이 콩돌로 반지를 만들었다고 전한다. 뻘층이 없이 돌들만이 파도에 밀려왔다가 밀려가기를 반복하는 이 해안을 해양학자들은 '단구상 미지형 발달 해안'이라고 불렀다. 이런 단층 해변에서는 파도의 강도에 따라 수심이 달라짐으로 해수욕이 금지돼 있다.

a 최전방 해병대 OP에서 내려다 본 백령도 산줄기와 남쪽 한계선 바다

최전방 해병대 OP에서 내려다 본 백령도 산줄기와 남쪽 한계선 바다 ⓒ 박상건

다시 일행은 백령도 해발 184m 산기슭에 자리 잡은 해병대 흑룡부대로 이동했다. OP에서 내려다 본 북한 땅은 지척이었다. 동쪽으로 11㎞ 맞은편이 북한의 유인도 월래도였다. 서쪽 방향 17㎞ 해상에는 몽금포타령의 무대 북한의 장산곶이 있다. 장산곶의 닭 우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가깝다는 거리를 사이에 두고 남북의 섬, 그 섬의 장병들이 서로를 응시하고 있는 것이다.

참모장은 "이곳 부대는 해군과 공군이 함께 주둔 중이고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완벽한 군사 조직과 무기를 갖추고 있는데 그래서 백령도 부대를 '작은 국방부?'라도 부르기도 한다"는 것. 최근 어민들의 생활이나 남북 대치 상황을 묻자, "늘 군사적으로 긴장 지대이고 좁은 어업한계선 때문에 어민들이 고기잡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어민들이 조금만 방심하면 어선이 북쪽으로 밀려 갈 수 있기 때문에 경비정과 지도선이 늘 따라붙는 가운데 조업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꽃게가 많이 잡히는 백령도는 5~6월이 성어기이고 건너 편 연평도는 4월이 제철인데 어민과 군인들이 가장 긴장하는 시기란다. 이런 까닭에 이 지역에서는 야간조업을 할 수 없다. 매년 8만여 명의 여행객들이 찾는 백령도이지만 이런 대치상태 때문에 섬 곳곳이 지하벙커 등으로 요새화 되어 있었다. 육지와 멀리 떨어져 있어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60일 동안 전투할 수 있는 무기와 식량을 보유하고 있다. 그렇게 긴장과 평화가 동시에 출렁이는 섬, 백령도.

이렇게 군사지역이면서도 해양관광의 진면목을 자랑하는 곳이 또한 백령도이다. 앞서 소개한 사곶해변, 콩돌해안에 이어 일행은 두무진으로 향했다. 차량으로 이동하던 섬내 체험코스에서 해안절경을 감상하기 위해 유람선으로 옮겨 탔다. 유람선은 대중가요를 요란하게 틀고 운행하는 남쪽 바다의 그런 풍경과는 사뭇 달랐다. 어민들이 어업용으로 사용하는 조금 큰 어선이었다.

두무진 해상관광은 백령도 여행의 백미이다. 비경 중의 비경으로 불리는 두무진은 "서해의 해금강"이라고 일컫는다. 백령도 북서쪽 4km의 해안선이 온통 기암괴석들로 바다에 병풍을 치고 있다. 흑산도 홍도와 거제도 해금강, 거문도 백도의 기암절벽과는 또 다른 맛을 우려내고 있었다. 두무진 절벽은 수 천 년 동안 비바람에 깎이고 다듬어져 짙푸른 바다와 함께 호흡해왔다. 선대바위, 형제바위, 장군바위, 코끼리바위 등이 마치 투구를 쓴 장군들의 회의 장면 같다고 하여 두무진(頭武津)이라 불렀다.

a 물범과 가마우지 서식지인 물개바위

물범과 가마우지 서식지인 물개바위 ⓒ 박상건

두무진 기암괴석들은 사암 또는 변성도가 매우 낮은 규암으로 구성되어 있다. 바위 층이 잘 발달되고 바위 결에 물결자국의 모양새가 아로새겨진 것이 특징이다. 절벽 곳곳에는 해국이 피고 갯질경이, 갯메꽃이 자란다. 물범의 서식처이기도 한 물개바위는 4월에서 10월이면 물범들의 세상이라는데 이번 여행길에는 물범 대신 가마우지들만이 마중 나와 꿩 대신 닭이었던 셈. 이곳 앞 바다는 노랑부리 백로, 물가미우지, 괭이 갈매기, 백로 등 희귀 조류의 서식처이기도 하다.

a 두무진 절벽에 설치된 해안초소

두무진 절벽에 설치된 해안초소 ⓒ 박상건

기암절벽에 넋이 나간 사이에 유람선 선장은 "아홉시 방향을 보세요. 저기 저 절벽 초소에 군 장병들이 근무 중"이라고 말했다. 그랬다. 절벽 해안초소에 이 땅의 젊은이들이 북녘을 응시 중이었다. 정희성 시인은 <몽유백령도>라는 시에서 저 초소 풍경에서 느낀 분단의 아픔을 이렇게 노래한 바 있다. "구멍 속에는 초병이 하나 서서/장산곶 하늘이 매를 감시하고 있다/제 몸에 얹힌 온갖 것 훌훌 털고/ 크고 흰 날개 퍼득여 하늘로 오를 날/오기는 올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백령도가 황해바다 한가운데 서 있을 수 있겠는가"라고.

우리는 우리를 응시한 게 아니라, 장산곶 매 한 마리를 응시하고 있을 것이라고 믿고 싶은 시인, 분단의 아린 상처 훌훌 털고 날아오를 그 장산곶매를 기다리는 초병이라고 믿고 싶은 이 낯설음의 현장. 한 편의 시가 낯설어야 작품이 된 것처럼 저 낯선 풍경도 분단조국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하고 각별한 풍경인 것이다. 분단조국의 후손임을 부인할 수 없는 낯선 풍경이 풍경화가 아닌 사실화라는 점은 가슴 저미는 일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그 낯설음이 사라지고, 남북 한계선을 한계 없이 넘나드는 통일의 바다를 꿈꾸는 섬이 백령도이리라.

a 두무진 선대암 기암괴석 사이로 지는 노을. 맞은 편이 장산곶 바다이다

두무진 선대암 기암괴석 사이로 지는 노을. 맞은 편이 장산곶 바다이다 ⓒ 박상건

그런 꿈을 놓칠 수가 없어 365일 서로 속으로 울고 그 울음 수면 위로 물보라치면서 늘 푸른 전율로 꿈틀대는 서해최북단 섬 백령도. 철책으로 녹슬어가는 세월보다는 해방 후 그 민족 본연의 모습으로 푸른 함성을 내지르고 싶은 것이 바람 소리만 맴도는 백령도이리라. 백령도 공해상의 파도는 그렇게 말없이 물보라를 치고 있었다. 적막하기 그지없는 백령도는 남북으로 지고 뜨는 일몰과 일출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섬이다. 남북의 햇무리를 저 기암괴석 사이로 비추면서 뜨고 지는 풍경 앞에서 경이로움과 감동, 그리고 하나 된 반도를 그려보았다.

덧붙이는 글 | 이번 탐사작업에 적극 협조해주신 국가정보원과 해병대 흑룡부대에 감사드립니다.

● 백령도 가는 길
① 인천→백령도(4시간 소요. 1일 2회 운행) 
② 배편문의: 온바다(032-884-8700), 진도운수(032-888-9600), 
   인천항여객터미널 1544-1114(주민등록증 소지. 기상변화 반드시 문의)
③ 섬내 교통편 
- 마을버스(2대 운행),  택시(기본요금에 구간요금)
- 민박이나 숙박업소 봉고차나 여행사 이용, 현지 렌트카가 편리

덧붙이는 글 이번 탐사작업에 적극 협조해주신 국가정보원과 해병대 흑룡부대에 감사드립니다.

● 백령도 가는 길
① 인천→백령도(4시간 소요. 1일 2회 운행) 
② 배편문의: 온바다(032-884-8700), 진도운수(032-888-9600), 
   인천항여객터미널 1544-1114(주민등록증 소지. 기상변화 반드시 문의)
③ 섬내 교통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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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언론학박사, 한국기자협회 자정운동특별추진위원장, <샘이깊은물> 편집부장,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위원, 한국잡지학회장, 국립등대박물관 운영위원을 지냈다. (사)섬문화연구소장, 동국대 겸임교수. 저서 <주말이 기다려지는 행복한 섬여행> <바다, 섬을 품다> <포구의 아침> <빈손으로 돌아와 웃다> <예비언론인을 위한 미디어글쓰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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