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얼굴을 가진 사막

[사막 여행기] 다시 시작된 '까탈이의 세계여행'

등록 2006.07.02 11:31수정 2006.07.02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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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희 기자는 지난 4월 3일부터 45일간 시리아, 레바논을 여행하고, 현재 요르단에 머물고 있습니다. 앞으로 5개월간 요르단과 이집트, 수단, 에티오피아, 예멘, 케냐, 탄자니아 등을 더 다니면서 '중동 여행기'와 '아프리카 여행기'로 여러분을 찾아뵐 계획입니다. 이번 여행은 총 6개월을 예정하고 있답니다. <편집자주>
사막의 낙타는 이렇게 일제 사륜구동차로 대체되고 있다. 와디럼 사막 투어에는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로 유명해진 영국군 장교 로렌스의 흔적을 찾아가는 코스도 포함되어 있다. 와디 럼.
사막의 낙타는 이렇게 일제 사륜구동차로 대체되고 있다. 와디럼 사막 투어에는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로 유명해진 영국군 장교 로렌스의 흔적을 찾아가는 코스도 포함되어 있다. 와디 럼.김남희
사막의 밤은 천 개의 얼굴을 지녔다. 와디 럼.
사막의 밤은 천 개의 얼굴을 지녔다. 와디 럼.김남희
당신, 사막의 밤과 마주친 적이 있는지? 밤처럼, 사막도 천 개의 얼굴을 가졌다.

살아있는 것들의 그림자가 길어지고, 나와 있던 모든 것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 태양 아래 타오르던 것들이 서늘하게 식어가고, 움츠려있던 것들이 생기를 되찾고 깨어난다.


바위산 너머로 붉은 해가 지면 그녀의 눈썹 같은 달이 떠오르고, 하늘은 분홍빛으로, 보랏빛으로 변해간다. 모래 속으로 발을 파묻으면 어느새 서늘해진 모래알들이 감겨온다.

모래언덕에 앉아 해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어린왕자의 작은 별이 생각난다. 의자를 한 발 뒤로 돌려놓으면 몇 번이고 해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그 별에서 마흔 다섯 번이나 해지는 모습을 보았던 날, 그의 외로움은 여름산의 녹음처럼 짙었던 걸까.

지평선에 걸려있던 마지막 붉은 기운이 사라지고, 밤의 푸른 장막이 드리워지면 별들이 몸을 내밀며 내려온다. 밤하늘을 여백도 없이 가득하게 채우며 무성하게 빛나는 별들. 가끔씩 흘러내리는 별들의 꼬리. 당신의 눈동자 가득 밤별들이 들어오고, 도시의 온갖 소음에 익숙하던 귓전으로 바람이 불어온다.

당신은 곧 알게 되리라. 사막의 바람소리가 음악보다 슬프고, 우물보다 깊다는 것을. 옷자락을 잡아끄는 바람은 어디론가 당신을 데려가고 싶어 몸이 달아있다.

<인디아나 존스 2 : 성배를 찾아서>의 무대로 유명해진 페트라는 중동 최고의 관광지이다. 향료 무역로를 장악하고 통행세를 받아 부유해진 나바티안들이 건설한 페트라는 이천년의 세월을 건너왔다. '밤의 페트라'에 참여한 관광객들에게 베두인이 차를 대접하고 있다.
<인디아나 존스 2 : 성배를 찾아서>의 무대로 유명해진 페트라는 중동 최고의 관광지이다. 향료 무역로를 장악하고 통행세를 받아 부유해진 나바티안들이 건설한 페트라는 이천년의 세월을 건너왔다. '밤의 페트라'에 참여한 관광객들에게 베두인이 차를 대접하고 있다.김남희
젊은 베두인 청년 메흐메트가 류트를 연주하고 있다. 그는 사막을 달리고 있을 때, 한 점이 되어 옷자락을 날리며 걸어가는 이를 보고 차를 돌려 찾아갔다. 낯선 이에게 물 한 병을 건네고, 그는 다시 차를 돌렸다. 와디 럼.
젊은 베두인 청년 메흐메트가 류트를 연주하고 있다. 그는 사막을 달리고 있을 때, 한 점이 되어 옷자락을 날리며 걸어가는 이를 보고 차를 돌려 찾아갔다. 낯선 이에게 물 한 병을 건네고, 그는 다시 차를 돌렸다. 와디 럼.김남희
어디선가 베두인 청년이 연주하는 류트 소리가 바람결에 묻어온다.


베두인들은 알고 있다. 사막을 지나가는 이들을 맞을 때는 마음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오늘은 목마른 낙타를 끌고 배고픈 당신이 이곳을 통과하지만, 내일은 당신이 음식과 물을 대접할 차례가 된다는 것을 그들은 배워왔다.

낙타 대신 지프를 타고, 텐트 대신 콘크리트 빌딩에서 잠을 자는 현대의 베두인들 속에도 전통은 여전히 살아 있다. 그래서 사막을 여행하는 이들은 늘 베두인들의 초대에 응할 준비를 해야 한다.


배낭을 메고 벗도 없이 혼자 사막을 찾아온 당신. 사막의 밤을 응시하고 있는 당신의 두 뺨 위로 반짝이며 흘러내리는 눈물이 보인다. 사막을 여행하는 이들이 지켜야 하는 규칙에 대해 당신이 말해줄 수 있을까?

사막은 말하기보다는 듣기 위한 공간이라는 것을 당신은 이미 느끼고 있다. 삶에 대해, 사랑에 대해, 죽음에 대해, 신에 대해, 그곳은 절로 질문을 품게 하는 공간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신의 목소리를 듣는 곳이 사막이 되는 걸까.

낮동안 뜨겁게 달아올랐던 사막은 밤이 되면 서늘하게 식는다. 붉은 모래 언덕에 앉아 해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사막여행에서 잊을 수 없는 순간이다. 와디 럼.
낮동안 뜨겁게 달아올랐던 사막은 밤이 되면 서늘하게 식는다. 붉은 모래 언덕에 앉아 해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사막여행에서 잊을 수 없는 순간이다. 와디 럼.김남희
사막은 시인을 낳는 곳이다. 머물렀던 숙소의 주인 나빌은 밤이면 밤하늘의 별을 보며 시를 읊곤 했다. “암흑이 가득한 밤의 세상을 / 조개 속 어둠을 뚫고 솟는 진주처럼 / 밤하늘의 별들이 깨뜨리네.”
사막은 시인을 낳는 곳이다. 머물렀던 숙소의 주인 나빌은 밤이면 밤하늘의 별을 보며 시를 읊곤 했다. “암흑이 가득한 밤의 세상을 / 조개 속 어둠을 뚫고 솟는 진주처럼 / 밤하늘의 별들이 깨뜨리네.”김남희
사막은 신의 목소리를 듣는 예언자들을 낳기도 했지만 시인을 낳기도 했다. 시인이 예언자와 다른 한 가지가 있다면 현세를 노래한다는 것일 뿐이라고 했던가. 사막의 사람들은 모두가 대단한 이야기꾼이고, 시인을 경외했다. 시와 음악은 길고 긴 사막의 밤을 견디게 하는 오래된 벗이었다. 그래서였나, 닷새를 머물렀던 다나의 숙소 주인은 밤마다 별빛 아래에서 시를 짓고는 했다.

고단한 사막의 삶을 지켜온 낙타는 사막의 배였다. 200kg의 짐을 지고 하루에 100km를 주파할 수 있다는 낙타는 오랫동안 베두인들의 가장 가까운 친구였다. 페트라.
고단한 사막의 삶을 지켜온 낙타는 사막의 배였다. 200kg의 짐을 지고 하루에 100km를 주파할 수 있다는 낙타는 오랫동안 베두인들의 가장 가까운 친구였다. 페트라.김남희
"밤은 비밀로 가득 찼네.
바람은 밤의 음악.
별똥별은 밤의 눈물.
보름달은 밤의 보석.
어둠은 밤의 악마.
이른 새벽의 이슬 한 방울은 밤의 향수."


고향에서 만 리를 건너와 사막에 홀로 앉은 당신. 마른 바람 부는 당신의 머릿속으로 어쩌면 청마의 별을 노래한 시 한 편이 지나갈지도 모른다.

가슴을 저미는 쓰라림에
너도 말없고 나도 말없고
마지막 이별을 견디던 그날 밤
옆 개울물에 무심히 빛나던 별 하나!
그 별이 하나이
젊음도 가고 정열도 다 간 이제
뜻않이도 또렷이
또렷이 살아나-
세월은 흘러가도
머리칼은 희어가도
말끄러미 말끄러미
무덤가까지 따라올 그 별 하나!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어딘가에 우물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고, 당신의 침묵이 있기 때문이고, 밤하늘을 향하는 당신의 눈이 별처럼 반짝이고 있기 때문이다. 모래언덕에 등을 대고 누워 밤새 별들을 올려다보노라면, 이루지 못한 사랑의 추억을 사막에 묻고 돌아섰다는 한 여행자가 생각나기도 할 것이다.

15세기에 지어진 돌집들. 이제는 8가구, 30명의 사람들이 남아 있을 뿐이다. 다나 마을.
15세기에 지어진 돌집들. 이제는 8가구, 30명의 사람들이 남아 있을 뿐이다. 다나 마을.김남희
짐처럼 떠메고 다니는 외로움을 묻고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문득 생각해보지만, 결국 당신도 나도 알고 있다. 아침이 오면 외로움 따위야 배낭 속에 꾹꾹 눌러 담고 다시 휘청거리며 사막 속을 걸어갈 것을.

페트라의 유적들 중에서 가장 유명한 'Treasury'(왕가의 보물을 소장하던 곳으로 추정)가 새벽 햇살을 받고 있다.
페트라의 유적들 중에서 가장 유명한 'Treasury'(왕가의 보물을 소장하던 곳으로 추정)가 새벽 햇살을 받고 있다.김남희
나무 한 그루가 드리우는 그늘은 사막을 걸어가는 이에게 더할 나위 없는 위안이다. 다나 자연보호 구역.
나무 한 그루가 드리우는 그늘은 사막을 걸어가는 이에게 더할 나위 없는 위안이다. 다나 자연보호 구역.김남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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