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무지개다!"

[바다에서 부치는 편지 18] 비가 멈춘 뒤 빛이 그린 풍경화

등록 2006.07.09 15:58수정 2006.07.12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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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의 길목에서 맞은 해 지는 모습은 아름답다. 머지않아 몰려올 자연의 힘을 아는지 작은 콩게들도 집 단속에 바쁘다. 작은 구멍을 들락거리며 분주하다. 태풍은 인간들에게 큰 피해를 주지만, 바다와 갯벌에게는 '카타르시스'다. 묵묵히 인간이 배설해 낸 온갖 것들을 처리하던 이들이 힘에 겨워할 때 어김없이 태풍이 몰아친다. 갯벌과 바다에게 휴가다. 태풍은 인간을 겸손하게 만든다. 그리고 자연을 정복하겠다는 인간의 오만을 일깨우며 '자연의 질서'를 바로 세운다.

김준

김준

김준
비가 오더니 잠시 멈추었다. 서쪽 하늘이 심상치 않다. 천막극장의 찢어진 구멍으로 빛이 새어나오듯 한 줄기 빛이 바다로 내려온다. 그리고 하늘이 열린다. 태풍 전야, 빛의 그림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김준

김준
비가 내리는 동안 서쪽 하늘이 물들기 시작했다. 그 사이 갯벌에는 황금비가 내려앉았다. 모래도 황금으로 변했다. 요술을 부리듯 빛이 지나간 자리는 모두 황금이다. 집수리를 하던 콩게도, 갯골에 흐르던 물도, 갯벌에 열심히 그림을 그리던 댕가리도, 그물을 걸어 놓던 말목들도 모두 황금으로 변했다.

서쪽하늘에 정신을 잃다, 고개를 돌렸다.

"아, 무지개다."

무지개였다. 구름이 잔뜩 낀 동쪽하늘에 무지개가 걸렸다. 쌍무지개였다. 신발을 벗고 갯벌에 들어가 해넘이를 보면서 고개를 돌려 무지개를 보았다. 비는 부슬부슬 내리고, 서쪽하늘은 노을이, 동쪽 하늘엔 쌍무지개가 걸렸다. 동쪽보고, 서쪽보고, 갯벌 한번 쳐다보고.

노을이 서쪽 산 너머 바다로 숨자, 이를 지켜보던 무지개도 사라졌다.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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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동안 섬과 갯벌을 기웃거리다 바다의 시간에 빠졌다. 그는 매일 바다로 가는 꿈을 꾼다. 해양문화 전문가이자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사진작가이기도 한 그는 갯사람들의 삶을 통해 ‘오래된 미래’와 대안을 찾고 있다. 현재 전남발전연구원 해양관광팀 연구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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