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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창극 춘향전' 음반 표지 ⓒ 신나라
6.25전쟁 전후에 여성국악단의 전성기가 있었다. 여성국악단(임춘앵), 햇님국극단(김경애), 여성국극협회(조금앵), 삼성여성국극단(박옥진), 여성국악동우회(김소희, 박초월), 국극사(박록주) 등의 많은 여성국극단체가 조직되어 여성국극의 붐을 일으켰었다.
당시엔 여성국극단이 오면 임춘앵, 조금앵을 보려 장사진을 쳤을 정도였다. 하지만, 1960년을 고비로 여성국극은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여성국극은 여성 소리꾼만 출연한 창극(唱劇)을 말한다. 창극을 국극(國劇)이라고도 하는데 고수(鼓手)의 북 장단에 맞추어 한 사람의 소리꾼이 부르던 판소리를 배역에 따라 나누어 소리하고, 무대배경과 의상, 연기를 보탠 것이 창극이다.
물론 이 창극은 해방 후 북한에서도 공연되었다. 북한에서 창극이 공연된 것은 조선고전음악연구소가 창설된 1947년 이후부터인데 이해 8월 20일에 상연한 '춘향전'이 창극의 시작이었다.
당시 춘향전은 남한의 창극 개념과 같은 것이었다고 한다. 두 번째 공연은 1955년 10월 16일에 있었고, 세 번째 공연이 열린 1964년부터 남한의 창극과는 다른 길을 걸었다.
그 이유는 북한이 민족음악을 재정립을 하는 과정에서 "판소리는 양반들이 갓 쓰고 당나귀를 타고 다니던 시절 술 마시고 흥얼거리며 부르던 것으로 현시대에 맞지 않는다"며 판소리를 배척했기 때문이다. 이후부터 북한에서는 창극의 개념이 '민요극' '민족가극'으로 점차 바뀌었다. 판소리를 배제한 채 민요를 바탕으로 새롭게 창작되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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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창극 '춘향전' 중 사랑가 악보 ⓒ 신나라
또 쇳소리(탁성)는 우리 겨레의 소리가 아니라는 김일성 주석의 말에 따라 민요도 남도창이 아닌 서도창을 중심으로 불렸고, 보통 사람들이 알기 어렵다는 이유로 한자말도 창극에서 모두 없앴다.
이렇게 바뀐 창극의 시작인 1964년의 춘향전을 녹음한 음반이 신나라(회장 김기순)에서 발매되었다. 이 음반은 일본 신세계레코드사에서 보유하고 있던 북한음악 중 창극을 대표하는 '춘향전'인데 1964년 북한의 국립민족예술극장의 공연 실황녹음을 정리해서 내놓은 것이다. 오픈 릴(open reel. 오디오·비디오테이프가 바깥으로 노출돼서 감기도록 만들어진 릴)상태여서 보존이 우려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번 시디 작업은 영구 보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번 음반은 총 3장으로 나뉘어 발매되었는데 첫 장에는 오작교, 부용당, 사랑가, 부용당 이별이 들어 있으며, 두 번째 장에는 오리정 이별, 부용당 후원, 관청 동헌, 농부가가 수록되었고, 세 번째 장에는 어사 월매상봉, 옥중상봉, 관청 동헌의 녹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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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4년에 공연한 북한창극 춘향전의 한 장면 ⓒ 신나라
이 음반은 귀에 익은 남한식의 판소리나 창극을 듣던 사람에겐 약간 생소하게 들릴 것이다. 특히 남도소리와 맥을 같이하는 판소리에서 서도민요의 음색으로 바뀌어 걸쭉하고, 구수한 맛이 상당히 줄어들었다. 또 언뜻 예전 창가의 느낌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녹음기술이 뒤떨어진 탓인지 녹음된 소리의 음량이 들쭉날쭉한 것이 흠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북한창극 '춘향전' 은반의 발매는 의의가 있다. 우리 겨레의 소원인 통일은 문화의 통일이 앞서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소리와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보는 것도 가치가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 이 기사는 <시골아이>, <대자보>, <참말로>에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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