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풀'의 꽃말을 '나눔'이라고 지었습니다

[달팽이가 만난 우리꽃 이야기 47] 톱풀

등록 2006.08.07 16:53수정 2006.08.08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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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풀 ⓒ 김민수

톱풀은 이파리가 톱날의 모양을 닮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삼년 전 여름, 한라산 자락의 저지대 억새풀밭에서 그를 처음으로 만났다. 날이 선 억새풀의 이파리들 사이에서 피어난 톱풀. 그러나 톱풀 이파리는 이름과 달리 서슬 퍼런 억새의 이파리에 닿으면 이내 잘릴 듯 부드러운 톱날을 닮았다. 모양만 닮았을 뿐, 자기를 해치려는 적에게조차 상처를 낼 수 없는 부드러운 톱, 그 부드러운 톱으로 무엇을 자를 수 있을까?

날선 칼에 비하면 부드럽고 무딘 톱이라 할 수 있지만, 톱은 칼이 자를 수 없는 고목을 잘라낼 수 있다. 톱의 특징은 반복적인 행위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상하 또는 회전운동을 거듭해, 맨 처음 한 번의 톱질로는 어림도 없었던 거목도 베어낸다.

톱질에는 요령이 있다. 그저 힘만 좋다고 톱질을 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너무 급하게 나무를 자르려고 덤비면 오히려 나무를 다 자르기도 전에 톱날부터 부러지거나 톱날이 다 상해 버릴 수 있다. 작은 날들이 무수히 움직이며 톱밥을 만들고, 그 톱밥이 쌓인 만큼 나무는 잘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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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개인적으로 '톱'하면 자르고 나눈다는 게 연상된다. 그렇게 자르고 나눈 후 필요한 것을 만드는 것까지 연상하기에는 좀 더 시간이 걸린다. '톱'이라는 단어 혹은 물체를 보는 순간 조금은 섬뜩함이 연상된다.

어릴 적 마당에서 줄로 톱날을 세우는 아버지를 종종 보았다. 톱날이 잘 갈리면 아버지는 지게를 둘러매고는 산에 가서 나무를 해오셨다. 도끼질하기 적당하게 잘린 나무들은 담장 아래 차곡차곡 쌓였다. 월동준비를 할 즈음이면 잘 마른 나무를 도끼로 팼다.

물론 도끼질에도 요령이 있다. 나뭇결을 따라 잘 내리치면 "쩍!" 소리를 내며 갈라진다. 행여나 한 번에 갈라지지 않아도 아버님은 찍었던 곳을 정확하게 찍으셨다. 잘 팬 장작이 담벼락에 가득 쌓이면 월동 준비가 다 끝난 것처럼 든든했다.

그런데 어느 해부터인가 그 자리를 까만 구공탄이 대신하기 시작했다. 또 어느 해부터인가는 석유드럼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지금은 계량기가 달린 가스배관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편리해졌다. 그러나 우리는 편리해진만큼 행복해졌을까? 자르고 가르는 톱이나 도끼를 일상에서 거의 보지 못하고 자라지만 오히려 자르고 나누는 일, 그것을 통해서 상처를 주는 일까지도 아무런 거리낌 없이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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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톱풀 ⓒ 김민수

우리의 사고 체계는 칸트 이후 이원론적이고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에 길들었다. 어떤 경우에는 의도적으로 영과 육, 하늘과 땅, 어둠과 빛 등을 나누어놓고는 어느 한 쪽은 지고의 선이요, 어느 한 쪽은 경멸해야 할 것으로 가르치기도 했다. 흑과 백 사이에 존재하는 것은 회색분자나 박쥐쯤으로 인식하게 했다. 그래서 '중용'이라는 것도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 정도로 인식하게 됐다. 본래 의미의 퇴색이다.

연장마다 쓰임새가 다르다. 쓰임새는 다르지만 연장의 공통점은 쓰이지 않으면 녹이 슨다는 것, 서로 다른 것들이 모여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농사짓는 일도 여러 가지 연장들이 더불어 살며 만들어낸 결과 아닌가?

그러니 그들끼리는 비슷한 점이 있다고 해서 하나가 되라고 하는 일이 없고, 쓰임새가 다르다고 해서 비난하고 금기하는 일도 없다. 그저 생긴 모양대로 쓰이는 것으로 자신들의 날을 세워간다.

나는 '톱풀'의 꽃말을 '나눔'이라고 붙여주고 싶다. 그러고 보니 '나눔'의 동사형 '나누다'에는 참 많은 의미가 들어 있다.

하나를 둘 또는 그 이상으로 나누는 것을 '나눈다'고 한다. 구별한다는 뜻도 있고, 분배한다는 뜻도 있다. 수학의 나눗셈도 있고, 음식을 나눈다는 뜻도 있다. 대화를 주고받는 것도 나누는 것이고, 희로애락을 함께 하는 것도 나누는 것이다. '합친다'의 반대말이지만 '나눔'이라는 말에는 나눔으로써 다시 하나가 되는 진리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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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생긴 것은 날카로운 톱날을 닮았는데 부드럽기만 하다.
그 부드러운 톱날을 세워 무엇을 하려는 것이냐?

아무것도 자를 수 없는 톱날이라서 슬펐는지도 모른다.
억새풀에 자기 몸 석석 베어짐으로 슬펐는지도 모른다.

꽃말을 무엇으로 붙여주면 좋을까?
생긴 대로 '나눔'이라 지어놓고 보니 나눔에 참 많은 뜻 들어 있다.

부드러운 톱날로 나눠보았자 아픈 나눔 아닐 터이니
그래, 좋은 나눔 가득한 꽃말이라 생각하고 방긋 웃자.

'나눔'이라는 꽃말, 참 좋다.


<자작시 '톱풀의 꽃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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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봄에는 숲에 여백이 많다. 여백이 많은 만큼 긴 겨울을 보내고 피어나는 꽃들도 많다. 봄이 가고 여름이 오면 나뭇잎들로 숲이 충만하다. 꽉 차 있는 그 곳 어딘가에도 꽃이 피어나겠지만 그 숲으로 들어가는 게 쉽지 않다. 결국 누군가 걸어간 길을 따라 걷거나 숲길을 따라 혹은 물길을 따라 꽃 산행을 할 수밖에 없다.

여름은 생각보다 꽃이 많지 않은 계절이다. 이미 봄꽃들은 꽃을 피우고 열매까지 맺고는 내년을 기약하며 저 어딘가에 숨어 쉬고 있고, 초여름에 피어난 꽃들은 이제 막 열매를 익혀가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아직 가을꽃들은 준비해야 할 것들이 더 있는지, 성질 급한 것들이 간혹 꽃 몽우리를 내밀었을 뿐이다.

장마가 지난 후 따가운 햇살이 가득한 숲을 찾았다. 그곳은 꽃보다는 이제 숲에 사는 동물들과 곤충들의 축제의 장이었다. 숲에 사는 동물이나 곤충들은 도시의 삶에 익숙해진 이방인과 쉽게 친해지지 않는다. 그들이 나를 받아들일지라도 도시의 삶에 찌든 이방인인 내가 그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자연인으로 산다는 건 참으로 행복한 일이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행복, 그것이 그렇게 쉬운 것이었다면 우리 인간은 지금보다 더 불행해졌을지도 모른다. 맨 처음에는 그저 톱의 연상 작용에 따라 '나눔'이라고 꽃말을 붙여보았는데, 나눔의 다른 의미들을 부연하니 참 좋은 '꽃말'인 것 같다.

나눔, 무엇을 나눌 것일까? 미움, 다툼, 시기, 질투 같은 것들이 아니라 따스한 웃음이 배어나올 수 있는 것을 나누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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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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