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비씨, 레슬링부 '염라대왕'을 이기다

[내 젊음을 바친 군대 6] 레슬링 대표 선수가 되다

등록 2006.08.25 16:04수정 2006.08.25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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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태권도부 시절(앞줄 왼쪽에서 두번째가 필자).

태권도부 시절(앞줄 왼쪽에서 두번째가 필자).

사관학교엔 '운동의 날'이 별도로 정해져 있다. 매주 수요일 오후다. 말타기, 활쏘기를 포함해 모든 운동을 섭렵할 수 있었다. 매년 가을엔 이 시간을 이용해 전 종목에 걸친 중대 대항 경기를 벌였다.


그 중 레슬링은 가장 인기 없는 종목 중 하나였다. 중대 대표 선수로 나가려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늘 출전 선수가 부족했다. 중대장 생도가 적당히 선수를 차출해 경기에 나가게 하는 실정이었다.

난 레슬링에 대해 전혀 아는 게 없었지만 은근히 호기심이 생겼다. 다들 레슬링 선수로 차출되는 것을 싫어하는 이유가 뭔지 궁금했다. 남들이 안 하려 하니 솔선해서 한 번 해봐야겠다는 의협심도 함께 발동해, 난 제 4중대 레슬링 대표 선수로 나가겠다고 자원했다.

당시 난 키 175cm, 몸무게 65kg으로 비쩍 마른 전신주 같았다(지금은 75kg이다). 같은 내무반에서 함께 생활하던 이종택 생도는 내게 '갈비씨'라는 별명을 붙이고 나를 놀렸다. 이종택 생도는 내가 제 4중대 레슬링 선수로 출전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깔깔 웃어댔다.

그의 외모는 나와 정반대였다. 그는 목이 유난히 굵었다. 달리기에도 소질이 없었다. 상급생들이 내무반 건물을 한 바퀴 돌아야 하는 선착순 기합을 줄 때, 항상 헉헉거리며 맨 나중에 들어오는 육중한 그를 나는 '비계' 생도라고 놀렸다.

70을 바라보는 지금 우리는 정반대가 됐다. 그는 '갈비씨'가 됐고, 나는 '비계씨'는 아니지만 몰라보게 무게 나가는 할아버지가 됐다. 운동을 자주 하지 않고 이렇게 컴퓨터 앞에 앉아서 글을 쓰는 걸 즐겨서인 듯하다.


어쨌든 호리호리한 체구에 약간 졸린 눈매를 한 내가, 다른 사람 눈에는 레슬링 선수로 맞지 않아 보였던 것 같다. 내가 자원했을 때 중대장 생도는 별로 탐탁지 않다는 듯 나를 위아래로 노려보더니 퉁명스럽게 "알았어! 표 생도는 레슬링 선수다"라고 했다.

기적의 '폴승'... 자발성 없으면 기적은 재연되지 않는다


이렇게 대회 출전 선수로 합격했다. 어차피 선수가 부족한데 내가 자발적으로 나간다고 했으니 사실 내게 고마워해야 할 일이었다.

밖에서 보고 있으면 레슬링이 상당히 거칠고 힘든 운동 같지만, 매트에 올라가 상대와 싸워보니 생각만큼 위험하진 않았다. 양쪽 어깨가 일시에 매트에 닿아 '폴패'하지 않기 위한 기본기인 '브리지'를, 비지땀을 흘리며 고개가 아프도록 열심히 연습했다.

드디어 결전의 날이 왔다. 내 처음 상대는 우리가 '염라대왕'이라고 부를 정도로 아주 험상궂게 생기고 기합을 잘 주기로 유명한 3학년 생도였다. 더욱이 그 생도는 레슬링부 부부장이었다. 누가 봐도 승패가 뻔히 예상되는 경기였다. 아니나 다를까, 시작과 동시에 '갈비씨'인 난 그의 육중하고 다부진 몸에 깔렸다.

마음 속으로 생각했다. '난 지금 참호에서 적과 맨주먹으로 백병전을 하고 있다. 경기가 아니라 완전한 실제 결투 상황이다!'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집중했다. 젖 먹던 힘까지 짜낸 난 "에잇"하고 고함을 지르며 '적'을 내동댕이쳤다.

순간 기적이 벌어졌다. 모두들 내 상대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부부장 생도가 천장을 바라보며 바닥에 벌렁 누웠다. 덩달아 신이 난 심판은 '폴'로 이겼다며 내 팔을 힘차게 들어줬다. "호랑이에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던 어머님 말씀이 생각났다.

레슬링부 부장인 4학년 생도가 다가왔다. "겉보기하고는 사뭇 다르구먼! 순발력이 아주 뛰어나! 좋아! 귀관은 오늘부터 레슬링 대표선수다!".

이렇게 해서 난 마음에도 없던 사관학교 레슬링 대표선수가 됐다. 사실 태권도 대표선수가 되고 싶었는데, 부장 생도의 말 한마디에 꼼짝없이 레슬링부에 붙잡혔다. 대표선수가 되면 수요일 '운동의 날'에 그 종목만 연습해야 했다.

덕분에 6개월 동안 난 매주 수요일이면 승마 등 하고 싶은 운동을 다 제쳐두고, 오로지 레슬링 하나에만 매달려 '브리지' 등을 연습하며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자원해서 경기에 나갔을 때는 상대를 깔아 눕히기도 했던 것과 달리, 마음에 없는 대표선수가 된 다음부터는 그렇게 되지 않았다. 경기 때마다 힘없이 넘어졌고 늘 무릎 등을 다쳐 의무실을 찾아다녔다. 매주 수요일, 레슬링 도장에 들어갈 때마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느낌이었다.

그 학기가 지난 다음 부장 생도의 허락을 가까스로 얻어 태권도 대표선수로 옮겼다. 늦게 들어갔지만, 예전부터 태권도를 연마하고 싶었을 뿐 아니라 지긋지긋했던 레슬링에서 벗어났기에 매우 기뻤다.

마음이 편해진 난 태권도를 열심히 수련해 졸업할 때까지 검은 띠를 2개 딸 수 있었다. 자발적인 동기 부여가 '즐겁게, 그리고 기쁘게' 최선을 다하게 하는 힘임을 깊이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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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군을 부하인권존중의 ‘민주군대’, 평화통일을 뒷받침 하는 ‘통일군대’로 개혁할 할 것을 평생 주장하며 그 구체적 대안들을 제시해왔음. 만84세에 귀촌하여 자연인으로 살면서 인생을 마무리 해 가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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