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무협소설 <천지> 6회

등록 2006.08.08 09:16수정 2006.08.08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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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너… 뭐하는 놈이야?”

깨어나자마자 아직 정신도 덜 차린 사내를 보고 광검은 물었다. 사내는 아무 말 없다가 자신이 혼절할 때 이 인물이 나타났다는 것을 생각해 냈다. 그는 일단 주위를 둘러보았다. 객방인 것 같았다.


'이 자가 나를 데려온 것일까?'

그러고 보니 자신의 피 묻은 옷이 벗겨져 있고, 상처 난 곳이 아프기는 했어도 무언가 감겨 있는 것 같았다. 자신이 아는 한 자신을 보고 있는 이 인물은 이런 선행을 할 리가 없는 자였다. 중원사괴의 대형인 광검이 분명하였다.

이 인물은 어디선가 다리에 상처가 심한 무림인을 치료해 준답시고 아예 다리를 잘라 버렸다는 소문의 주인공이었다. 그 일 이후로 광검에게 도와달라고 한 사람은 결단코 없었다.

그는 자신의 사지가 멀쩡한지 조금씩 움직여보았다. 다행스럽게 상처는 고통스럽게 느껴졌지만 붙어있는 것 같았다. 그가 불안정한 눈빛을 보이자 광검이 씨익 웃었다.

“야… 잔머리 굴리지 말고 대체 너 누구야?”


그의 재촉에 바싹 말라 터져버린 입술을 움직였다.

“내 이름은 설중행(薛仲行)이오. 구해주셨다면 고맙소.”
“네 놈 덕분에 내 귀중한 은자가 닷 냥 반이나 들어갔으니 고맙다는 말을 들을 만하지.”


어디선가 낮게 코고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가 옆에서 자는 모양이었다. 설중행이라 밝힌 인물은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코고는 사람을 바라보았다.

'저 인물은 중원사괴 중 셋째라는 철금강 반효란 인물이겠군.'

그러다 문득 그는 어깨에 무지막지한 통증이 밀려오는 것을 느끼고 비명을 토했다. 광검이 무슨 짓을 했는지 칼로 베인 상처에 그의 손이 올라가 있었다.

“어--억--!”
“팔을 부러뜨려 줄까? 아니면 아예 모가지를 부러 뜨러 버릴까? 자식이 말을 하다가 왜 두리번거려? 아직 내 말이 끝나지 않았잖아. 내가 기껏 네 녀석 이름이나 알려고 이 꼭두새벽에 일어난 줄 알아?”

“으… 음… 지금이 새벽이오?”
“네놈은 꼬박 여덟 시진 동안 혼절해 있었다. 네 놈 끌고 여기까지 오기가 그리 쉬었는지 알아? 더구나 그 돌팔이가 안 된다는 것을 돈주고 얼러 대서 겨우 제대로 눈뜨게 해 주었더니, 나 설중행이오? 그래 임마. 나 풍철한(馮鐵漢)이다. 어쩔래?”

누가 살려달라고 한 적이 있었나? 언제 도와달라고 한 적이 있었나? 자신이 끌고 와 살려주고는 이제 와서 무엇을 어쩌란 말인가? 기껏 치료해 주었다는 자가 상처 난 어깨를 우악스럽게 눌러 식은 땀 뻘뻘 나게 만들지 않나? 고함을 지르지 않나?

괴물은 소문처럼 괴물인 모양이었다. '광검 풍철한' 소리만 들으면 뒤도 돌아다보지 않고 도망가는 사람이 있다고 하던데, 아주 잠시지만 겪어 보니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는 어이가 없었다.

“너 뭣하는 놈이냐구?”

설중행은 입을 다물었다. 자신은 무엇을 하는 사람일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는 녹봉(祿俸)을 받았다. 아니 분명 녹봉이라고 생각한 것을 받았다. 관헌(官憲)이라 해도 좋았겠지만 그는 떳떳하게 관헌이라고 내놓을 입장도 아니었다.

사실 그가 관에 몸담았다는 증거도 전혀 없었다. 이름을 내서 거들먹거리며 하는 일도 아니었고, 음지(陰地)에서 아무도 모르게 일을 처리해왔다. 오히려 관에서 행하는 일이라고 밝혀지면 안 되는 일이었으니 그들에게 관헌이라는 증명서를 줄 것도 아니었고, 호패에 적어 줄 것도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서 말을 해준들 그가 믿을 리도 없었고, 비록 지금 이 지경이 되었다 하나 입 밖에 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그는 아직도 지그시 누르고 있는 광검 풍철한의 손으로 인해 아직까지 밀려드는 고통을 참으며 입을 열었다.

“합비(合肥)에 있는 금륜마방(金輪馬房)의 역리(驛吏)요.”

역리(驛吏)는 관의 공문 연락이나 관물의 운반, 순찰이나 출장 나온 관리들의 숙박 등을 안내하는 하급관리다. 그가 어쩔 수 없는 경우를 당했을 때에 자신을 변명할 수 있는 준비된 유일한 대답이 그것이었다. 이미 약속된 것이고 실제 누가 그의 정체를 알아보고자 할지라도 합비의 금륜마방에서는 자신의 존재를 확인시켜 줄 것이었다.

“너 지금 나하고 장난하냐?”
“사실이… 으…윽!”

그는 말을 하다말고 이빨을 악물며 신음을 흘렸다. 풍철한은 비릿한 조소와 함께 미세한 살기를 띄웠다. 죽여 버리고 싶다는 표정이었다.

“일개 마방의 역리 정도를 철기문(鐵騎門)의 인물들이… 더구나 무림인들이 철기문의 사신(死神)이라고 쉬쉬하는 구천각(九天閣)의 인물들이 쫓는다는 것이 말이 돼? 변명을 하려면 그럴듯하게 해봐.”

철기문(鐵騎門). 흔한 이름이었지만 무림인이라면 철기문의 이름을 듣고 흘려보낼 수 있는 자는 단연코 없었다. 동정호 인근 악양(岳陽)에 자리하고 있는 철기문은 호남(湖南)과 호북(湖北), 강서(江西) 세 성(省)의 패자(覇者)로 군림한지 벌써 이십 년이 넘는다.

더구나 철기문의 구천각이라면, 그 존재조차도 모호하고 활동도 매우 은밀해 아는 자도 많지 않은 터. 말 그대로 철기문의 눈과 귀가 되고 간혹 은밀한 손(手)이 되는 곳이 구천각이었다.

“죽고 싶냐?”
“나를 쫓은 인물들이 그들이었소?”
“철기문의 구천각 인물 열두 명을 깨끗하게 없앤 것도 네놈이지. 아니 정확하게 아홉 명을 네놈이 죽이고, 네놈을 도와 준 놈이 결정적인 순간에 셋을 죽였지.”

광검 풍철한이 보기와 달리 여우보다 약고, 너구리보다 더 음흉한 속내를 가졌다는 말은 맞는 모양이었다. 그가 언제부터 자신을 지켜보았는지 모르지만, 이미 볼 것은 대부분 본 것 같았다. 그는 이미 뭔가 냄새를 맡은 것이 확실했다. 집요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나를 도와 준 사람이 있었소?”
“그것도 몰랐다고 말하고 싶은 모양이군. 네 동료 아니었나? 네놈과 비슷한 것 같던데….”
“정말 몰랐소.”

풍철한은 예리한 눈빛으로 설중행의 표정을 주시하고 있었다.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해되지 않는 일이 너무 많았다. 그는 눈에 살기를 띠며 물었다.

“자… 다시 한번 묻겠다. 네놈은 누구야? 뭐 하는 놈이냐구?”

풍철한의 말투에 살기가 묻어 나왔다. 그것은 설중행이 헛소리하는 순간 머리라도 으깨버리겠다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풍철한은 그리하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반드시 하는 사내였다. 설중행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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