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위에 표류하는 정치
사행산업에 '폭탄' 맞은 서민만 운다

[김종배의 뉴스가이드] 정책 오류 건너뛰고 '게이트' 타령만?

등록 2006.08.22 10:20수정 2006.08.22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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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넓고 깊다. 언론이 쏟아내는 의혹들을 그대로 주워섬기면 바다이야기는 연근해가 아니라 대양 급이 된다.

수많은 의혹을 여기서 일일이 챙기는 건 불가능하다. 하나만 짚자. 기류다. 숱한 등장인물과 다양한 의혹에도 불구하고 조금씩 명징해지는 기류가 있다. 바로 '폭탄 돌리기'다.

"게이트 걱정 안 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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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이종호

우선 청와대.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13일 4개 언론사 논설위원들을 만나 경품용 상품권 문제를 거론했다. 언론이 의혹을 제기하기도 전이다.

노 대통령은 "지금 문제가 되는 부분이 성인오락실, 문화상품권"이라고 말한 뒤 "청와대가 할 수준은 아니고 부처에서 할 일이지만 그것을 컨트롤 하지 못했다. 정책적 오류 말고는 국민들한테 부끄러운 일은 없다"고 했다. 이어 어제(21일)는 한명숙 총리를 만나 "게이트는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이것만이 아니다. 정태호 청와대 대변인은 '게이트' 주장과 관련해 "역사는 '정치공세 게이트' '언론왜곡 게이트'라고 기록되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경고도 했다.

정태호 대변인은 의혹을 제기하는 정치인과 언론을 향해 "정권 실세, 측근이라는 용어를 사용해 마치 참여정부가 비리가 있는 것처럼 보도와 정치공세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익명의 그늘에 숨어 근거 없는 의혹을 제기하는 건 "비겁하다"는 취지다.


대단한 자신감이다. 정책 오류는 범했을지언정 게이트는 없다고 한다. 있으면 떳떳이 연루자의 실명을 대보라고 한다. 해명이 아니라 반박을 하고 있고, 방어가 아니라 공격에 나서고 있다. 이전의 게이트 전개 양상과는 판이한 모습이다.

지금 시점에서 청와대의 주장에 대해 판정을 내릴 필요는 없다. 그럴 수도 없다. 의혹 제기는 이제 겨우 초입단계에 와 있다. 청와대의 주장처럼 '정권실세' 또는 '측근' 의혹은 익명의 바다에서 '개헤엄' 치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 친조카 노지원씨 의혹의 경우, 우전시스텍 관련 의혹이 제기됐지만 바다이야기 판매사인 지코프라임과의 상관성은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이 말한 정책 오류, 그게 뭔데?

a 서울 세종로 문화관광부 건물.

서울 세종로 문화관광부 건물. ⓒ 오마이뉴스 권우성

하지만 청와대가 중시하지 않는, 아니 덜 중시하는 문제가 있다. 노 대통령이 언급한 정책 오류다. 문화관광부는 경품용 상품권 발행업체 선정을 인증제에서 지정제로 바꿨다.

영상물등급위원회는 누가 봐도 사행성이 강한 오락기에 허가를 내줬다. 그 덕에 상품권 발행규모는 지난 한 해 28조원에 달했고, 지코프라임의 바다이야기 게임기는 6만 대 이상 팔려나갔다.

단순한 정책 오류로 이해하기엔 비상식적인 현상이 버젓이 나타났다. 그래서 언론은 의혹을 제기한다. 그런데 청와대는 일찌감치 '정책 오류'로 성격 규정했고, 게이트는 없다고 울타리를 쳤다. 이렇게 하면 귀책 사유는 문화관광부로 돌아간다.

그럼 문화관광부의 태도는 어떨까? 상품권 발행업체 선정제도를 변경할 때, 그리고 바다이야기가 영등위를 통과할 때 문화관광부 장관을 지낸 정동채 열린우리당 의원은 이렇게 주장했다.

"영등위가 독립기구이기 때문에 등급에 대해 문화관광부는 전혀 관여를 할 수 없었다."

현직인 김명곤 장관의 주장도 같다.

"문화관광부가 2004년 5차례에 걸쳐 영등위에 사행성 게임 재심의를 요청했지만, 바다이야기는 그해 12월 심의를 통과해 문화관광부 요청과는 무관했다."

그럼 영등위 입장은 뭘까? 바다이야기가 심사를 통과할 때 영등위원장을 지낸 김수용 영화감독의 말이다.

"문화관광부 쪽에서 재심의를 요청하기는커녕 영등위 심의가 너무 가혹하다는 불평을 자주 토로했다. 문화관광부 담당자들이 내 방에 와서 '게임업자들이 굶어죽을 판이다. 풀 건 풀어야 한다. 어떻게 만날 노, 노만 하느냐'는 등의 얘기를 자주 했다."

서로 네 탓 공방을 하고 있다. 왜일까? 노 대통령이 일찌감치 성격 규정을 해 버렸다. 정책 오류라고 했다. 오류를 범했으면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한다. '네'가 죽는 게 '나'가 사는 길이다.

상품권 '폭탄' 맞은 서민 민생이 더 큰 문제

애초부터 논의의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 사행성 성인오락기 문제의 핵심은 '생존'이다. 대통령 조카나 정권 실세, 관련 기관의 생존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28조 원 어치의 상품권을 사들인 서민들의 민생이 문제다. 사행 산업에 폭탄을 맞은 민생이 더 큰 문제다.

이런 지적이 '공자님 말씀'에 해당한다면 말을 돌리자. 왜 이제야 터졌을까? 경품용 상품권 문제가 제기된 게 어제오늘 일이 아니고, 골목마다 성인오락실이 들어선 게 최근의 일도 아닌데 왜 이제야 문제를 제기하고, 왜 이제야 문제 해결에 나설까?

대통령 친조카의 이름이 등장하는, 아주 드라마틱한 정치적 요소 때문이라면 문제가 있다. 저 멀리서, 자기들끼리 싸우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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