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인 세례' 갑자기 유명인사 됐네

[자전거여행 현장보고-중국편 27] 8월 17일 구이양-쿤밍 14일차

등록 2006.08.25 10:08수정 2006.08.31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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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주인집 꼬마아가씨가 그려 선물했다. 세상에 한 점 밖에 없는 그림!

주인집 꼬마아가씨가 그려 선물했다. 세상에 한 점 밖에 없는 그림! ⓒ 박정규

'왕바'에서 만난 중국인 학생들과 기념촬영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농구티셔츠를 입은 친구가 등을 보이면서 옷 위에 내 이름을 적어달란다. 매직이 없어 그냥 펜으로 이름과 이메일주소를 적어줬다. 세탁하면 모두 지워질 거지만, 함께 했던 즐거웠던 순간들은 지워지지 않으리라.

친구들이 간 뒤 이번엔 이웃집 꼬마가 작은 종이를 들고 왔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머뭇머뭇 거리고 있자, 주인집 아저씨가 종이를 주면서 '사인'을 해달란다. 정성스레 이름을 적어주자 이번에는 옆집 식당 아주머니가 어린아이 옷을 가지고 와서 거기다가 사인을 해달란다.

왜 많은 중국 사람들은 한국인 자전거 여행자의 흔적(사인)을 원하는 걸까? 한국인이라서? 그들과 같은 자전거 탄 사람이라서? 외국인이라서? 잘 모르겠다…. 하지만 단지 '기록행위'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들이 나의 마음에 '흔적'을 남겼듯이, 나도 그들의 마음에 '작은 흔적'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2006년 8월 17일 목요일. 구이양–쿤밍 14일차 / 맑음

07시 40분 기상.

아침은 가볍게 삶은 감자 두 개로 해결하고 다시 비포장 도로 위로. 갑자기 왼쪽은 포장도로, 오른쪽은 비포장도로인 곳이 나타났다. 망설일 이유 없이, 포장도로 건너갔으나 곧 비포장도로가 나타났다. 어제와 동일하게 좋은 길이 나올 때마다 이동하면서 계속 달렸다. 이런 걸 '메뚜기 주행'이라고 하면 어울릴 듯.

다행히 13km 지점에서 '포장도로'가 나왔다. 그것도 '내리막!' 신나게 1km을 내려갔다. 그러나 곧 오르막이… 2km가량 올라가자 다시 내리막이 나오긴 했는데, 자갈길이 파편처럼 흩어져 있는 '비포장도로'였다. 가만히 있어도 30km/h는 그냥 나온다. 4km 가량을 내려가면서, '치-이익 치-이익, 긁히는 소리'가 30번은 난 것 같다.

a 도로 공사장 한켠에서 소들에게 풀을 먹이고 있는 아이들

도로 공사장 한켠에서 소들에게 풀을 먹이고 있는 아이들 ⓒ 박정규


26km 지점. 비포장도로.


소와 아이들이 보인다. 한 아이는 자기보다 4-5배는 큰 소 등 위에 올라탄 채, 긴 작대기 하나로 소 등을 때려 가면서 풀을 먹이고 있다. 한 아이는 그런 아이를 지켜보며 웃고 있다. 나머지 가장 어려보이는 아이는 자신도 소 등에 올라가 보겠노라고, 여러 번 소 등을 향해 '뜀틀'을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번번이 다리 한쪽만 겨우 올린 채 떨어지기를 반복하고 있다. 한 번은 올라갔는데, 바로 '퍽'하고 떨어져 나와 아이들 모두 함께 실컷 웃었다.

비포장도로.


넓은 도로바닥을 '흰색 비닐'이 덮고 있고, 바람에 날아가지 않게 수많은 돌들이 비닐을 붙잡고 있다. 그 위로 가야 할지 잠시 망설이다가, 자전거 한 대 지나간다고 큰일이야 생기겠냐는 생각으로 서서히 페달을 밝아 서행하기 시작. 그 구간을 지나자, 이번에는 도로 너비만 한 큰 차량이 도로를 막은 채, 많은 사람들이 일하고 있다.

a 도로공사현장. 지나갈 곳이 없어 보였는데 길을 열어 주셨다.

도로공사현장. 지나갈 곳이 없어 보였는데 길을 열어 주셨다. ⓒ 박정규

갑자기 공사장에 나타난 자전거의 출현을 다들 신기한 눈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한궈(한국인)다' 라고 말하며, 지나갈 수 있게, 한쪽 길을 열어주었다. 조금 앞으로 나아가자, 이번에는 '하얀 안개(?)'가 시야를 가린다.

'압력이 강한 공기호수'를 이용해 '바닥먼지제거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로 인해 먼지들이 마치 '안개'처럼 길을 막고 있다. 크게 심호흡을 하고, 호흡을 멈춘 뒤 안개 속으로 전력질주통과. 다행히 구간이 짧아 금방 통과하고, 다시 일반적인 비포장도로 시작.

도로 한쪽에 텐트 같은 천막이 쳐 있다. 인부들이 잠시 쉬는 곳인 듯. 도로 언덕 위에서는 '벽' 만드는 작업이 한창이다. 그곳을 지나자, 비포장 도로를 모두 덮을 만한 '작은 자갈 산'이 있는 공사장 발견. 수많은 차량들이 그곳에서 '자갈'을 가득 채운 채 공사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a 수많은 자갈들의 본거지.

수많은 자갈들의 본거지. ⓒ 박정규


36.5km 지점. 드디어 '비포장도로 구간 끝!'

표지판에 '쿤밍'이라고 적혀있다. 아무래도 '국도 320번' 도로가 아닌 '고속도로'를 달려온 것 같다. 계속 길을 따라 직진했는데, 중간에 갈림길이 있었나 보다. 아무려면 어떤가? 무사히 길을 건너왔고, 이제 '포장도로'인데. 하지만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고속도로'를 타지 않겠다고 다짐했기 때문에, 인근 마을 '톨게이트'로.

39km 지점. 마을 시장 '거리 식당'.

아침 겸 점심을 이제야 먹게 되었다. 얼큰하고 시원한 '미센(쌀국수, 우동 면발)' 한 그릇 먹고, 시장 구경 시작. 슬리퍼 파는 곳이 있어서, 하나 구입(10Y). 빵 파는 곳에서 종류대로 빵 하나, 과자 하나씩 1kg 구입(5Y)하니 두 봉지 가득하다.

a 최단시간에 할 수 있는 헤어스타일을 연출 중인 꼬마

최단시간에 할 수 있는 헤어스타일을 연출 중인 꼬마 ⓒ 박정규

a 무지개보다 더 고운 빛깔을 간직한 실들.

무지개보다 더 고운 빛깔을 간직한 실들. ⓒ 박정규

시장에는 많은 사람들만큼이나 다양한 풍경들을 볼 수 있다. 보랏빛을 띠는 꽃, 맑은 노란빛을 띠는 꽃들을 팔고 있는 사람들. 빨, 주, 노, 초, 파, 남, 보. 무지개 빛깔보다 더 아름답고 다양한 빛을 지닌 '실'들.

'바주카포(원통 모양의 포신에 로켓탄을 재어 발사하는 휴대용 대전차 로켓포.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국이 처음으로 개발하여 사용하였다)'를 연상케 하는, 애연가들이 감탄할 만한 대형 담배필터들.

'재봉틀(바느질을 하는 기계)' 위에서 웃으시면서 바느질하고 있는 아주머니. 저렴한 거리 이발소에서 짧은 헤어스타일을 연출하고 있는 아이와 이발사.

a 애연가들이 좋아할만 한, 바주카포를 연상케하는 대형 담배필터

애연가들이 좋아할만 한, 바주카포를 연상케하는 대형 담배필터 ⓒ 박정규

a 웃으시면서 일하시는 아주머니

웃으시면서 일하시는 아주머니 ⓒ 박정규


18시 5분. 왕바(인터넷카페)

USB(이동식저장장치), 한글 읽고 쓰기 가능. 한참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는데…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컴퓨터 전원이 나가 버렸다. '정전'이란다. 그냥 숙소로 가기에는 이른 시간이라 마을 한 바퀴 돌기로.

말밥 주머니에 얼굴을 묻고 힘들어하는 말 발견. 말밥 끈이 짐 수레 연결 부위 '쇠사슬'에 걸려 버린 것. 팔이 있다면 쉽게 해결할 수 있겠지만, 이 친구는 다리밖에 없어서 아무래도 도와줘야 할 것 같다. 문제를 해결해주고 사진 찍고 있는데 주인이 왔다.

그냥 가려는데 '사진촬영 해도 좋다'고 말 얼굴이 잘 보이게, 말밥 주머니를 치워주셨다. 이왕 찍는 거 '짐수레' 위에 올라가서 찍어 달라고 부탁하니, '문제없단다.'

지나가는 학생에게 부탁해 사진 찍는데, 좋은 사진 얻기가 쉽지 않다. 찍고 내려와서 확인하고, 다시 올라가기를 5회 정도 반복 후에 괜찮은 사진 한 장을 얻었다.

a 말 모는 자전거 여행자

말 모는 자전거 여행자 ⓒ 박정규

다시 마을 구경. 앗! 왕바다. 그냥 가려다 자전거가 실내에 주차된 걸 보고 나도 모르게 안으로. 한국 친구와 '메신저'로 이야기하고 있는데, 어느새 뒤에는 중국 학생들 7, 8명이 구경하고 있다.

갑자기 한 친구가 말을 건다. 곧이어 다른 친구들도 이것저것 질문들을 하기 시작. 한국 친구의 질문에 대답하면서, 중국 친구들한테 답변하느라 정신이 없다. 한국 친구에게 중국 친구들이 지금 내 뒤에서 지켜보고 있다고 하니까, 이 친구 센스 있게 영어로 '안녕 중국 친구들'이라고 메시지를 보내왔다. 뒤에서 보던 친구들이 그 메시지를 보고 아주 좋아하며 자신들도 '반갑다'고 한다. 카페에서 나가려고 하는데, 이 친구들이 함께 촬영할 수 있느냐고 물어온다. '좋다.' 일단 나가자.

한 명씩 자전거 앞에서 멋진 포즈를 취하면서 모두 촬영 후에 좋은 곳이 있다고 함께 가잖다. 시장의 뭔가를 상징하는 '큰 문' 앞에서 이번에는 4, 5명씩 나누어서 촬영하자고 하니까, 갑자기 '윗도리'를 벗는다. 그리고는 보디빌딩 하는 사람들의 포즈를. 다른 친구들은 무술동작 포즈를. 즐거운 촬영 시간을 가진 뒤 친구들이 숙소까지 배웅해주었다.

갑자기 농구 티셔츠를 입은 친구가 등을 보이면서, '내 이름'을 적어 달란다. 매직이 없어서, 그냥 '펜'으로 이름과 메일주소를 적어주었다. 세탁하면 모두 지워질 거지만 함께했던 즐거웠던 순간들은 지워지지 않을 것이리라.

a 숙소 주인집 꼬마아가씨.

숙소 주인집 꼬마아가씨. ⓒ 박정규

친구들이 간 뒤 빨래하고 있는데, 이웃집 꼬마가 작은 종이를 들고 왔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머뭇머뭇 거리고 있자, 주인집 아저씨가 종이를 주면서 '싸인'을 해달란다. '문제없다'고 정성스레 이름을 적어주자, 이번에는 옆집 식당 아주머니가 어린아이의 옷을 가지고 와서 거기다가 '싸인'을 해달란다.

다시 한 번 '싸인'을 해드리고 숙소 방에서 쉬고 있는데, 주인아저씨가 '그림'이 그려져 있는 종이를 들고 오셨다. 그림 속에는 '꼬마 아가씨 세 명이 웃고 있고, 머리 위에는 좋은 뜻을 의미하는 '글자'가 적힌 붉은 등이 세 개 매달려 있었다. '주인집 꼬마아가씨가 나에게 주는 '선물'이란다. 가만히 있을 수 없이 꼬마 아가씨께 찾아가 감사의 말을 전하고 공책에 이름과 여행소개를 한국어로 적어주었다. 다시 방으로 돌아와 잠시 생각을 해봤다.

왜 많은 사람들은 한국인 자전거 여행자의 흔적(사인)을 원하는 걸까? 한국인이라서? 그들과 같은 자전거 탄 사람이라서? 외국인이라서? 잘 모르겠다… 하지만 단지 '기록행위'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들이 나의 마음에 '흔적'을 남겼듯이, 나도 그들의 마음에 '작은 흔적'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a 박정규 중국 자전거 종단 코스도

박정규 중국 자전거 종단 코스도 ⓒ 오마이뉴스 고정미



여행 수첩

1. 이동경로: 윈난 지우싱 – 윈난 소밍(고속도로 공사구간→마을 도로)

2. 주행거리 및 시간: 45.3km / 4시간 26분 / 평균속도 10.2km/ 누적거리 4,361km

3. 사용경비: 25.5Y

아침 겸 점심: 2Y / 왕바 180분(인터넷카페): 5Y / 빵, 과자 1kg: 5Y
오렌지주스 한 병: 3Y / 슬리퍼: 10Y / 삶은 감자 2개: 0.5Y

4. 섭취 음식

1) 식사
아침 겸 점심: 미센(얼큰 시원)
저녁: 빵과 과자 다수

2) 간식 4
- 물 600ml 2통, 삶은 감자 2개, 오렌지주스 한 병,
사과 6개, 인삼과(참외같이 생겼음) 2개, 과자 다수

5. 신체상태: 비포장도로 덕분에, 입안 왼쪽에 피로의 상징인 '검포도 한 알이 열렸다.'

6. 도로분석: 윈난 '지우싱' 숙소에서 비포장도로를 타고 13.1km 지점까지 달리자, 비포장 도로 시작.
1km 내리막, 2km 오르막 후, 다시 '비포장도로 시작'
16km-20km 시속 30km/h 가 나오는 자갈길 많은 비포장도로
20km-36.5km 정상도로가 잠시 나왔다가, 다시 비포장도로
20.7km 식당 상가와, 주유소, 구운 옥수수, 감자 파는 사람들이 있다.
36.5km-39km 비포장 구간 끝. 정상적인 고속도로 시작. 국도를 찾아 인근 마을 톨게이트로.
45.3km 윈난 '소밍' 마을 여관 도착.

덧붙이는 글 | 박정규 기자 홈페이지 '꿈을 위해 달리는 청년'(http://www.kyulang.net/)에서도 그동안 올린 생생한 자전거 여행기를 보실 수 있습니다. 

박정규 기자는 중국여행을 시작하면서, 현지에서 배운 중국어를 토대로 여행기를 작성하고 있습니다. 글 중에 표기한 중국 지명이나 중국어 표현들이 부정확할 수도 있습니다. 이 점 양해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박정규 기자 홈페이지 '꿈을 위해 달리는 청년'(http://www.kyulang.net/)에서도 그동안 올린 생생한 자전거 여행기를 보실 수 있습니다. 

박정규 기자는 중국여행을 시작하면서, 현지에서 배운 중국어를 토대로 여행기를 작성하고 있습니다. 글 중에 표기한 중국 지명이나 중국어 표현들이 부정확할 수도 있습니다. 이 점 양해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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