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지가 만들어 낸 젊은이들의 귀향

[섬이야기45] 전남 신안군 지도읍 선도마을 갯벌

등록 2006.09.01 10:50수정 2006.09.04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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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물었다, 세발낙지네."

배가 지나는 속도에 따라 재빠르게 낙지를 떼어내야 하기 때문에 순간 포착하기가 쉽지 않다. 뱃머리에 앉아 낚시 줄을 사리던 어민이 몇 차례 셔터를 누르는 순간을 놓친 것이 안타까웠던지 알려주는 소리다.


장마 통에 잠깐 갠 날 저녁, 어촌계장을 졸라 낙지잡이에 나섰다. 며칠 전 태풍으로 낙지배들을 모두 뭍으로 올려놓았던 어민들이 하나 둘씩 낙지잡이에 나서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다.

박일성(46) 선도어촌계장과 낙지주낙을 위해 나선 곳은 무안군 운남과 현경면, 신안의 지도읍으로 둘러싸인 탄도만이다. 여름 낙지는 굵은 것이 특징인데, 이 날 주낙에 붙어 올라온 낙지들은 발이 가는 세발낙지다. 여름을 지내고 9월쯤에 잡혀야 할 세발낙지들이 올라오기 시작한 것이다. 수온 탓일 것이라는 것이 어민들의 말이다.

신안군 지도읍에 속한 선도는 160여 호에 주민 400여 명이 될까 말까하는 작은 섬이다. 가장 큰 마을은 40여 호의 주동마을이며, 진변, 매계, 석산, 대촌, 북촌 등은 기껏해야 20여 호 쯤 될 듯싶다. 거주 인구에 비해서 많은 농지를 가지고 있어 낙지잡이에 나서기 전에는 김양식과 농사가 생업이었다.

5년 전부터 '선도 갯벌지키기'에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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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지도와 무안을 연결하는 방조제가 물길을 막기 전까지 선도를 둘러싼 조류는 곧장 칠산바다로 흘렀기 때문에 섬 가까운 곳에 천혜의 어장이 형성되었다. 한때 주민들 대부분 지주식 김 양식으로 생업을 대신하기도 했다.


그리고 1990년대 초반까지 20여 가구가 72ha에 1440척의 양식을 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몇 가구만 양식을 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연륙되면서 조류가 변하고, 다른 지역의 양식규모들이 기계화되고 대규모화되면서 지주식 김 양식은 더 이상 경쟁력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동안 무안과 목포의 어민들이 주낙을 이용해 낙지잡이에 나설 때 선도 주민들은 농사에 의지했다. 대신 선도갯벌은 목포, 탄도, 송현, 홀통 등 인근 지역의 어민들이 차지해 낙지를 잡았다.


하룻밤이면 30~40여 척의 낙지배들이 몰려들어 낙지를 잡아갔지만 주민들은 갯벌에 관심이 없었다. 당시 마을면허도 없었고, 낼 생각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속수무책이었다. 낙지잡이는 물론 김 양식 이후 양식어업에 관심이 없었다.

지금부터 10여 년 전, 박일성씨를 중심으로 선도 갯벌에서 낙지를 잡는 몇 명의 고이도 어민과 신월리 어민이 어장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리고 5년 전부터는 10여 명의 주민들이 힘을 합해 선도 갯벌지키기에 나섰다. 이렇게 선도어민들이 '갯벌지키기'에 나설 수 있었던 것은 '선도 갯벌'이 돈이 될 수 있다는 확신 때문이었다.

여기에 IMF 이후 고향을 떠난 젊은 사람들이 몇 명 돌아오면서 어촌계를 새롭게 구성하고 마을어업 면허도 확보해 힘을 보탰다. 당시 무안과 목포의 광산지역 등 낙지잡이 어민들의 탄도만에 자주 출현하면서 어민들과 갈등도 빈번해 해양경찰들이 출동하는 일도 잦았다.

고향 갯벌로 돌아온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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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선도를 떠난 젊은 사람들이 다시 고향을 찾은 것은 갯벌 때문이다. 정확하게 말한다면 '낙지' 때문이다. 고향에서 몇 사람이 낙지잡이로 돈을 번다는 소문이 고향을 떠난 사람들에게 알려지면서, IMF이후 벌이도 시원찮고 먹고 살기도 어려워지자 고향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선도갯벌을 무한정 허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초기에는 어촌계장도 고향을 떠난 젊은 사람들에게 돌아와 같이 낙지잡이를 하자고 권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엄격한 규칙을 만들어 갯벌을 관리하고 있다.

고향으로 돌아온 10여 명의 어민과 기존에 낙지잡이를 하는 사람을 모아 어촌계도 건실하게 만들고 어장의 질서를 잡아갔다. 예를 들어, 낙지잡이를 비롯해 마을어장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1년 이상 선도에 거주해야 하며, 그것도 외지에 적(집)을 두어서는 안 된다. 어촌계회의에서 가입을 허락해주지 않으면 1년 이상 거주한다 하더라도 어장 일에 참여할 수 없다.

그리고 가입이 허락되면 가입금(20만 원)을 납부해야 한다. 지금은 300여 ha를 마을공동어업으로 낙지, 갯지렁이, 해조류, 패류(고막, 바지락) 면허를 냈기 때문에 다른 지역 주민들이 선도갯벌에 들어올 수 없다.

선도 갯벌지키기에 함께 했던 일부 고이도와 신월리의 주민들은 행사계약을 맺고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지금은 어촌계원만 20여 명에 이른다. 100명 200명이 넘는 어촌계에 비하면 초라하기 그지없지만 마을 바로 앞 어장에서 낙지잡이를 할 수 있다는 점만은 어느 어촌계도 갖지 못한 자원이다. 이렇게 해서 1년이면 낙지잡이로 2~3천만 원의 소득을 얻고 있다.

한 밤에 갯벌에 밝히는 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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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낙지주낙을 하기위해서는 낙지배와 주낙이 필요하다. 낙지잡이 배는 선외기를 많이 이용하며 구입하는데 2~3천만 원 정도, 주낙은 1틀을 마련하는데 20만 원 정도의 비용이 들어간다. 어장 이용에 대한 내부 규칙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어민들은 낚시를 300개 이상 걸어서 작업을 했다.

낙지주낙의 모양은 150여 미터의 굵은 몸줄과 얇은 70여 미터의 아릿줄로 구성되어 있다. 몸줄에 같은 간격으로 아릿줄을 270개 정도 매달고, 아릿줄 끝에는 '다불'이라고 부르는 미끼를 끼울 수 있는 타일과 고무줄이 있다. 여수처럼 깊은 바다에서 낙지주낙을 할 경우에는 다불에 낚시바늘을 달아서 줄을 끌어 올릴 때 낙지가 떨어지는 것을 막는다.

어장이 넓고 작업장이 좋은 곳은 몸줄의 길이가 400여 미터에 낚시를 350여개씩 다는 경우도 있다. 낙지주낙으로 갯바닥을 훑으면서 작업을 하기 때문에 바닥에 김양식 말목이나 장애물이 있으면 작업하기 어렵다.

낙지잡이에 가장 적합한 물때는 조금(음력 초여드레, 스무사흘)을 전후해 사나흘 정도다. 밤에 먹이 활동을 하는 낙지는 조류가 세지 않는 조금철에 잡기 좋다. 특히 달이 뜨는 날이면 낙지가 더 많이 잡혀, 이를 '달사리'라고도 부른다. 바람이 많이 불거나 바닷물이 탁하면 많은 낙지잡이가 어려우며 갯바닥에 파래가 끼기 시작해도 낙지잡이가 수월치 않다.

낙지미끼로는 서렁게(칠게)를 이용하는데 하루저녁 낙지잡이를 위해서는 3kg 정도가 필요하다. 다불이라 부르는 타일에 두 마리의 서렁게를 고무줄로 고정시켜 준비를 해 두었다가 해가 지고 갯바닥에서 물이 선외기가 뜰 정도로 빠질 즈음에 낙지주낙을 시작한다.

'선도'가 낙지잡이에 적합한 이유

a 낙지잡이 주낙과 칠게가 달린 낚시

낙지잡이 주낙과 칠게가 달린 낚시 ⓒ 김준

a 낙지잡이 배와 어구

낙지잡이 배와 어구 ⓒ 김준

주낙의 양쪽 끝에는 불을 밝힌 전구를 스티로폼 위에 올려놓고 닻을 매단다. 닻 한쪽은 바다에 내려놓고 주낙을 길게 바다에 빠뜨린 후에 조심스럽게 다른 한쪽을 배에 올려놓고 10여 미터 앞으로 줄을 끈다.

일반 낚시처럼 몸줄을 어떤 속도로 끄느냐가 낙지잡이를 결정한다. 그리고 배위에 있는 닻을 바다에 넣고 몸줄을 따라 배를 이동해가며 아릿줄에 달린 낙지를 확인한다. 반대편 줄 끝에 가서는 다시 닻을 올리고 10여 미터 앞으로 줄을 끈다. 줄은 마치 갈지자(之) 모양을 그리며 앞으로 이동한다.

선도가 낙지잡이로 적합한 이유는 낙지잡이 장소가 멀지 않고, 잡은 낙지를 육지로 이동하기 쉽기 때문이다. 낙지를 잡기위해서 배를 타고 멀리 나가야 하는 경우, 기름을 많이 사용기 때문에 경쟁력이 떨어진다.

선도는 3되 남짓이면 낙지를 잡고 돌아올 수 있다. 그 만큼 비용이 적게 든다. 낙지잡이는 봄철에는 3월 중순부터 5월말까지, 가을철에는 8월부터 12월초까지로 각각 90~100여일 작업을 한다. 낙지 가격은 철마다 다르지만 금년의 경우 봄철 비쌀 때는 한 접(20마리)에 8만원에 거래되며, 평균 5만 5천 원에 판매되었다.

가을철에는 낙지가 많이 나오기 때문에 3~4만원에 거래된다. 어촌계장 박씨가 아내와 함께 이날 잡은 낙지는 모두 족히 60여 마리는 될 것 같다. 이날 낙지잡이는 깊은 곳 보다는 수심이 낮은 곳에서 더 많이 잡혔다.

낙지를 많이 잡을 때는 하루저녁에 수십 접을 잡기도 한다. 이렇게 잡은 낙지는 신월리를 통해서 밖으로 보내 판매한다. 어민 중 한사람이 모아서 탄도만 어판장이나 무안상회에 거래하기도 한다.

선도는 행정구역으로는 신안군 지도읍에 속하지만 주로 무안군 운남면 신월리를 중심으로 생활한다. 그렇지만 읍내에 일이라도 보려면 이들은 몇 개의 면의 경계를 넘어 지도읍으로 가야 한다.

먼저 배를 타고 무안군 운남면 신월리로 건너가야 한다. 그리고 현경면을 지나 해제면을 거쳐 지도읍에 이른다. 얼른 세어 봐도 세 개의 면을 지나야 읍내에 들어설 수 있다. 배를 타고 와서 군내버스를 두 번 갈아타야 가능한 일이다.

인간이 바다에 그어놓은 경계들

a 선도리 갯벌

선도리 갯벌 ⓒ 김준

압해도-운남면-고이도-선도-지도읍으로 이어지는 도로가 계획되어 있지만 언제 만들어질지 모른다. 아쉬운 대로 고이도-신월-선도로 이어지는 연결 다리라도 만들어 줬으면 좋겠지만, 희망은 잠시뿐 '권력이 있을 때도 못한 일을 기대도 안 한다'고 체념한다. 아마 국민의 정부시절을 회상하는 것 같다.

지도읍-선도-고이도-운남면으로 둘러싸여 있는 갯벌을 '탄도만'이라고 한다. 이곳 탄도만은 최근 '자율어업'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낙지연승, 즉 '낙지주낙'을 하는 인근 10여개의 어촌계를 하나로 묶어 '탄도만자율어업'이라는 이름으로 해양수산부의 지원을 받아 공동판매장과 위판장을 지어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활동이 높은 평가를 받아 상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같은 해역에서 같은 방법으로 낙지를 잡고 있지만, 선도 어촌계에는 이러한 혜택을 받을 수 없으며 공동브랜드도 사용할 수 없다. 인간들이 갈라놓은 경계 때문에 자율어업공동체에는 운남, 해제, 운남 지역의 어촌계로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자율어업이란 2005년부터 본격화된 사업이다. 정부주도 수산자원관리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어업주체인 어민들이 스스로 수산자원을 관리하는 방식으로 국가주도에 의해서 시작된 새로운 어촌운동으로 평가하고 있다. 자율어업이라는 이름으로 정부승인을 받으려면 바지락을 하든지 다른 품목을 선택해야 한다.

육지에서 금을 긋듯 삶을 나누고 선택을 강요하는 방식은 바다와 어민들의 삶에 맞지 않다. 바다의 생업은 경계가 없다. 삶이 그렇다. 그렇다고 선도 어민들에게 새로운 투자를 요구 할 수는 없지 않는가.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전라도닷컴' 9월호에도 게재되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전라도닷컴' 9월호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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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동안 섬과 갯벌을 기웃거리다 바다의 시간에 빠졌다. 그는 매일 바다로 가는 꿈을 꾼다. 해양문화 전문가이자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사진작가이기도 한 그는 갯사람들의 삶을 통해 ‘오래된 미래’와 대안을 찾고 있다. 현재 전남발전연구원 해양관광팀 연구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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