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부부가 장어를 팔지 않는 이유 "뒀다가..."

[바다에서 부치는 편지 18] 진도 굴포에서 만난 어민들

등록 2006.09.04 11:05수정 2006.09.04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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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포구에서 실랑이가 한참입니다. 아침에 통발로 잡아온 팔뚝 굵기 만한 장어를 팔라는 낚시꾼과 안 팔겠다는 어부의 아름다운 흥정이 한참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진도군 굴포 포구에서 낚시를 하던 사람이 어부가 잡아온 능성어 두 마리(6㎏)를 사서 나오다 함지박에 남아 있는 장어를 발견한 것입니다. 능성어도 시중가격에 비해 싸게 산 낚시꾼은 재미를 붙였던지 함지박 안의 장어에 눈을 떼지 못하고 있습니다.


능성어를 두 말하지 않고 싼값에 넘긴 부부 어민은 장어만큼은 좋은 가격을 주겠다는 말에도 미동도 하지 않고 거절합니다. 무슨 사연이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굴포에 사는 이정수(66)씨 부부는 십여 년 전까지 이곳에서 김 양식을 했습니다. 김 양식은 무척 힘이 드는 일입니다. 김 양식으로 자식들 뒷바라지를 다 했지만 수술을 한 뒤로 김 양식에서 은퇴했습니다. 그리고 작은 배를 가지고 통발어업을 하고 있습니다. 통발어업도 남들에 비해서 규모가 작아 4줄(통발 50개 달림)을 놓고서 간재미, 장어, 문어 등을 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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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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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진도의 농민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대파가 주 소득원이며, 쌀농사는 자식들과 친척들 식량에 그칠 뿐 소득에 보탬이 안 된지 오래입니다. 작년에 대파 400여 평 남짓에 480만원의 소득을 올렸습니다. 평당 1만 2000원이면 대파농사로는 최고 금을 받은 것이라고 합니다. 어느 해에는 2000원에 넘겼다니까요.

반면에 쌀농사 1700평에서는 200만원을 만졌을 뿐이랍니다. 물론 식량을 하기는 했지만 농약 값과 비료 값 등을 제하지 않고 말입니다. 쌀값은 떨어지는데 이놈의 농약값과 비료값은 계속 오르고, 소문에는 소비자들이 수입쌀을 찾기 시작한다는 소리가 들려 이젠 쌀에는 기대도 안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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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이씨 부부가 팔지 않고 집으로 가져온 바다장어는 두 마리입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내장을 빼내고 잘 씻어 물이 빠지게 해서 건조시킵니다.


"어머니, 이 장어 언제 쓰시려는 겁니까."
"추석에 쓰제."

아, 차례 상에 올리려나 보다 생각했습니다.


"아이들이 오면 구워먹으려고."

어머니가 그렇게 낚시꾼에서 넘기지 않고 꼭 껴안고 가져온 장어는 추석에 고향을 찾은 자식들에게 먹이기 위해서였습니다.

"자제분은 어떻게 두셨어요?"
"아들 셋, 딸 둘."

장어 두 마리로는 어림도 없을 것 같습니다.

"댓 마리는 더 잡아야제. 그래서 모태(모아) 놓는 것이여."

이제 궁금증이 풀렸습니다. 추석에 고향에 찾는 자식들을 위해 부모님에 해놓은 별미, 장어구이를 위해서 아침에 잡아온 장어를 팔지 않고 가지고 왔던 것입니다.

이날 바다에서 가져온 생선은 능성어, 복쟁이, 장어, 문어가 전부였습니다. 물론 많은 고기는 아니었지만, 능성어는 낚시꾼에게 팔고, 장어는 자식들을 위해 갈무리해 놓고, 복쟁이는 다음에 쓰려고 두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문어는 점심때 두 부부와 같이 묵은 김치에 싸고 초장과 기름소금에 찍어서 먹었습니다. 어머님, 아버님 점심 잘 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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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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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동안 섬과 갯벌을 기웃거리다 바다의 시간에 빠졌다. 그는 매일 바다로 가는 꿈을 꾼다. 해양문화 전문가이자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사진작가이기도 한 그는 갯사람들의 삶을 통해 ‘오래된 미래’와 대안을 찾고 있다. 현재 전남발전연구원 해양관광팀 연구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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