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소설] 머나먼 별을 보거든 - 68회

새로운 만남

등록 2006.09.04 16:46수정 2006.09.04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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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놈을 뒤쫓아 가는 일은 이제 부질없어 보이네

추적기를 따라 길을 가던 아누가 탁 풀어진 소리로 말하자 짐리림은 마구 화를 내었다.


-그럼 여기까지 힘들게 걸어 온 일들은 다 뭔가? 차라리 탐사선으로 돌아가자! 앞이 안 보이는 답답한 상황은 이제 더 이상 견디기 힘들어!

아누는 짐리림의 짜증을 뒤로한 채 추적기를 살펴보았다. 추적기가 실패한 이유는 상대의 이동속도가 너무 빨라 거리를 좁히지 못한 탓이 컸기에 아누는 용의주도하지 못함을 스스로 자책했다.

‘차라리 그때 어떻게든 가까이에 두고 관찰하는 게 옳았는데.’

-이봐 아누! 내 말을 듣고 나 있는 건가? 왜 말이 없나?

짐리림이 크게 고함을 질러 대었다. 아누는 문득 배고픔을 느꼈다. 그러고 보니 짐리림은 배가 고플 쯤에는 항상 크게 화를 내곤 하였다. 눈이 먼 이후로 할 수 없이 아누에게 의존하게 된 짐리림이 자신의 약함을 내보이지 않으려고 차마 먼저 배가 고프니 식사를 하자는 말을 바로 꺼내지 못함을 솟은 짐작할 수 있었다.


-여기서 쉬고 가자.

아누는 배낭에서 비상식량을 꺼내며 그 수를 확인했다. 이번에 식사를 마치면 이제는 겨우 십 회 분의 비상식량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식량은 얼마나 남아있지?

아누는 잠시 망설이다가 짐리림에게 말했다.

-아직 여덟 번은 남아있어.

아누의 말에 짐리림은 코웃음을 쳤다.

-거짓말! 내가 속으로 셈을 해보니 열개 정도만 남아있어. 그렇다면 다섯 번씩 나누어 먹으면 끝인데 넌 일부로 굶을 작정이었나? 내가 불쌍해서?

아누는 말없이 비상식량의 봉지를 뜯어 짐리림에게 건네어 주었다. 짐리림은 식량을 우걱우걱 씹어대며 중얼거렸다.

-내가 멍청하게 눈이 멀지만 않았어도 배낭과 광자총을 챙길 수 있었을 텐데. 그렇다면 비상식량도 많아졌을 것이고 광자총으로 가이다의 동물을 사냥해서 겨우겨우 살아갈 수 도 있었겠지. 안 그래?

아누는 대꾸도 없이 멍한 눈으로 지평선을 바라보고선 쓸쓸한 마음에 홀로그램 영상기를 꺼내어 들고서는 음악기능만 활성화시켜 저장된 음악을 틀었다.

-뭐 하는 거야?

비상식량을 순식간에 다 먹어치운 짐리림이 눈앞에 홀로그램 영상기가 있다면 당장 때려 부수겠다는 듯이 손을 마구 휘저으며 짜증을 내었다.

-음악이라도 좀 들으면서 마음을 가라앉히자.
-하필이면 재수 없게 이 음악이람? 쳇!

아누는 짐리림이 왜 지금 흘러나오는 음악을 재수 없다고 여기는지 이해 할 수가 없었다. 그 음악은 고향별 하쉬에서 오래전에 살았던 저명한 음악가의 명곡이었기 때문이었다.

-좀 끌 수 없어!

아누는 짐리림이 무슨 말을 쏟아내어도 상관하지 않으려 애쓰며 행여 홀로그램 영상기가 짐리림의 손에 잡혀 던져질까 걱정이 된 나머지 그것을 멀리 가져다 놓고서는 소리를 최대로 높였다. 좋은 음악이 짐리림의 불편한 마음을 조금이라고 누그러트릴 수 있다고 믿고 있었기에 아누는 그것을 끄지 않았다. 짐리림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지만 음악소리가 너무 높아 아누의 귀에는 들리지 조차 않았다.

아누는 짐리림에게서 떨어져 하늘을 보고 땅에 누운 채 편안한 마음으로 음악을 감상했다. 하쉬에 두고 온 그리운 사람들과 자신의 처지가 맞물러 아누의 가슴은 음악에 젖어 뭉클해지기 시작했다. 사방을 허위허위 휘젓던 짐리림은 악을 쓰기도 지쳤는지 주저앉아 마지못해 음악을 듣고 있었다. 그리고 음악이 끝나갈 때쯤에 느긋하게 몸을 일으킨 아누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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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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