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정전'의 주인을 찾습니다

달내일기(54)-고서에서 발견한 어느 여인의 일기

등록 2006.09.08 10:50수정 2006.09.08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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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속 내용 2

속 내용 2 ⓒ 정판수


a 책의 표지

책의 표지 ⓒ 정판수

여름이 지나갈 무렵이면 반드시 하는 일, 아니 해야 되는 일이 있다. 책 정리다. 몇 권되지 않는 책이지만 여름 습기에 상한 것들이 더러 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요즘 나온 책보다 옛날 책이 더 심하다. 만약 제대로 보관해놓지 않으면 어떤 책은 쪽과 쪽이 맞붙어 떨어지지 않을 만큼 상한다.


어젯밤 책을 정리하던 중 그런 걸 발견했다. 서고(書庫)로 이용하는 방엔 습기가 차지 않도록 지을 때도 세심하게 배려했건만 워낙 긴 장마에 견딜 수 없었던가 보다. 문제는 습기로 상한 책 들 중에 무척 아끼던 책이 있었다. 그나마 다행은 곰팡이가 조금밖에 안 슬었다는 것.

이 책은 3년 전에 <오마이뉴스>에 올려놓은 글 ‘고서에서 발견한 어느 여인의 글’의 소재가 된 책이다. 지금부터 30년 전쯤 불교에 관한 지식을 얻으려 부산 보수동의 헌책방 골목을 뒤지다가 우연히 구한 '불교정전(佛敎正典)'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이 책은 표지를 책방에서 임의로 만들었고, 출판 연대를 적어놓은 맨 뒷장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제책(製冊) 형태도 ‘한식 제책(책을 만들 때 한쪽 면에만 인쇄된 것을 둘로 접어서 실로 꿰매는 방식으로 옛날 족보를 엮은 형태와 같음)’으로 된 아주 고색창연(古色蒼然)했다.

하지만 그때는 불교에 대한 지식의 습득에만 관심 있었을 뿐이라 다른 건 신경 쓰지 않고 한 장 한 장 넘겨가며 그 내용에 몰두했는데 채 몇 장을 넘기기도 전에 이상한 걸 발견했다. 둘로 접혀 있는 면 사이가 갈라져 있었는데 거기에 글들이 빽빽이 들어 차 있는 게 아닌가. 다른 장을 넘겨보았다. 무려 열 여 군데가 그리 돼 있었다. 면과 면 사이뿐 아니라 인쇄된 곳에서도 빈 공간이 많은 면에는 글로써 채워놓았다.

내용은 한 여인의 일기였다. 지금부터 40년 전쯤에 기록한 것 같았는데, 한글맞춤법은 군데군데 틀렸으나 한문에 대한 지식은 매우 풍부했다. 하지만 생활이 매우 어려웠던 듯 일기장을 아끼려고 면과 면 사이를 잘라내어 그 사이에 글을 쓴 것이리라. 물론 내가 이렇게 생각함은 내용을 읽으면서 얻은 결론이다.


이제 이 책의 주인을 찾아 돌려주련다. 일기 형태의 기록이기에 내가 갖고 있는 것보다 이 책의 주인이나 혹 돌아가셨다면 그 후손들이 갖는 게 훨씬 의미 있으리라. 내게는 그냥 한 권의 옛날 책일 뿐이지만 당사자들에게는 귀중한 삶의 기록이기 때문에.

속에 기록된 내용은 주인공(당시에 40대의 중년 여인이었을 것으로 추정됨)이 자신을 도와준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과 어려움 속에서도 아이들을 사랑으로 키우는 모정과 모처럼 얻은 직장(직업이 간호사로 추정됨)에서 있었던 가슴 아픈 사연들이 절절이 기록돼 있다. 한 쪽을 보자.


<四二九四年 十一月 十四日(十二月九日)>

年末(연말)에 經濟的(경제적) 打擊(타격)을 만이 받어서 죽을 지경이다
아해들이 옷이야고 울고 쪼어니 寒心(한심)할 지경이다
그러나 고맙게도 도와주시셔 ○○商會(상회) 金○○ 夫婦(부부)을 守護神(수호신) 가치 어깃다
나는 죽은 死線(사선)을 넘엇다
너무나 감사하다고 늣깃다
어떠한 히생이라도 하여도 돈을 모와야겟다

<四二九四年 十二月 二十四日>

高○○부터 大鮮(대선)소주 50 두루미 사주고 一金 五萬 얻엇다
徐○○ 氏 李○○ 여사의 아름다운 자비心에 간격의 눈물을 흘엇다
이것이 다 친구의 특택이다


이 글을 쓴 주인공과 글 속에서의 도우미들은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덧붙이는 글 | 제 블로그 ‘달내마을 이야기’에 나오는 ‘달내마을’은 경주시 양남면 월천마을을 달 ‘月’과 내 ‘川’으로 우리말로 풀어 썼습니다. 예전에는 이곳이 ‘다래골(다래가 많이 나오는 마을)’ 또는 ‘달내골’로 불리어졌답니다.

덧붙이는 글 제 블로그 ‘달내마을 이야기’에 나오는 ‘달내마을’은 경주시 양남면 월천마을을 달 ‘月’과 내 ‘川’으로 우리말로 풀어 썼습니다. 예전에는 이곳이 ‘다래골(다래가 많이 나오는 마을)’ 또는 ‘달내골’로 불리어졌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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