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소설] 머나먼 별을 보거든 - 76회

범 우주 동맹

등록 2006.09.18 16:51수정 2006.09.18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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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랫소리는 힘차게 절정을 이루다가 이윽고 시간이 흐를수록 조금씩 잦아들었다. 그 사이 언덕에 오른 아누와 짐리림은 지친 사이도들이 하나둘씩 그 자리에서 잠이 드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 건가?


짐리림의 물음에 아누는 한참동안 눈앞의 광경을 바라만보다가 뒤늦게야 대답을 해주었다.

-모두 잠이 들고 있네. 이 생물들은 잠이 많아.

주위가 어두워지자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는 네 다섯 사이도의 모습은 불꽃에 아른거리며 아누에게 더욱 기괴해보였다. 이윽고 거의 불꽃이 사그라질 무렵에야 단 두 사이도만 남겨두고 수백의 사이도들은 모두 잠에 빠져 들었다. 둘이 남은 사이도중 하나는 계속 단조로운 음과 몸짓을 열심히 하고 있었고 또 한 사이도는 앉아서 돌을 두들겨 대고 있었다. 비록 희미하게 보이기는 했지만 아누는 두 사이도 중에 춤을 추는 사이도가 어쩐지 낯설지 않았다.

‘내가 쫓던 그 놈인 거 같은데.’

추적기를 가져다 대면 알 수도 있었지만 뭔가 열광적인 분위기에 심취한 그 사이도는 어쩐지 아누로서도 함부로 가까이 할 수 없는 존재였다. 이윽고 두 사이도는 노래와 춤을 멈추고 하나로 엉겨 바닥에 쓰러졌다.


-끝난 건가?

짐리림의 물음에 답한 것은 그의 머릿속에서 울려 퍼지는 묘한 외침이었다.


-잘 듣고 잘 보았는가?

짐리림은 퍼뜩 놀라 아누가 있는 곳을 더듬었다. 놀란 것은 아누도 마찬가지였다. 귀에 들리는 소리는 분명 단순한 외침이나 다름없었지만 그 의미는 너무나 분명하게 아누와 짐리림의 머릿속에 전달되고 있었다. 하쉬에서도 자신의 상념을 다른 이에게 주지시키는 능력을 지닌 이들이 있기는 했지만 이는 그것과는 다른 것이었다. 그 외침은 단편적인 생각이 아닌 그 의미와 감정까지 담겨서 아누와 짐리림의 머릿속에 확실히 전달되고 있었다. 아누는 두려워하며 캄캄한 사방을 이리저리 주시했다.

-두려워 하지마라 멀리서 온 생명이여.

사이도들이 쓰러져 잠들어 있는 곳에서 한 생물이 천천히 걸어 나오고 있었다. 그 생물의 돌출된 눈두덩에서는 이글거리는 두 눈이 아누를 똑바로 쏘아보고 있었다. 그 생물의 적개심 없는 의미전달에도 불구하고 아누는 더욱 두려울 수밖에 없었다. 가이다에서 의사소통이 가능한 생물을 만날 것이라는 예상은 전혀 하지도 못했으며 그 생물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 예상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무지에서 나오는 공포는 아누의 잠재된 생존본성을 여지없이 자극했다. 아누는 짐리림의 손목에 늘어진 끈을 잡고서는 소리쳤다.

-어서 뛰어! 살고 싶으면 뛰어!

아누가 손목에 묶인 끈을 무섭게 잡아채자 짐리림은 거의 넘어질 뻔 하면서도 역시 아누를 따라 필사적으로 달렸다. 거의 앞이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 속을 달린다는 것은 그들로서는 매우 위험한 일이었지만 그들의 공포심은 그런 사소한 위험 따위에 비견할 바가 아니었다. 아누는 힘을 다해 달렸지만 그의 다리는 생각만큼 바르게 움직이지 않았고 결국 얼마못가 허방다리를 짚고서는 볼썽사납게 땅바닥에 꼬꾸라지고 말았다. 그 바람에 뒤에서 끈에 매달려 따라오던 짐리림 역시 몇 걸음을 뒤뚱거리다가 아누를 덮치며 넘어지고 말았다. 아누와 짐리림이 한데 엉겨 허우적거리는 사이 수상한 가이다의 생명체는 여유 있게 다가와 의미를 전달했다.

-두려워 할 것 없다고 했다. 난 너희들과 대화하고 싶다.

겨우 마음을 진정시킨 아누가 마르둑을 떼어놓은 뒤 자신의 의미가 전달될지를 의심하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넌 우리가 어떤 생명체들인지 알고 있는 건가?

가이다의 생명체는 이빨을 살짝 드러내어 보였다. 아누는 그것이 상대를 안도시키기 위한 ‘웃음’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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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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