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소설] 머나먼 별을 보거든 - 78회

범 우주 동맹

등록 2006.09.21 16:48수정 2006.09.21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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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누의 말에 ‘가이다’는 좀 더 명확하게 의미를 전달하려 애를 썼다.

-난 네가 하는 말 중 상당수를 알아들을 수가 없다. 우주, 탐사선, 행성, 보호 장구 이런 게 다 뭐란 말인가? 우리는 아직 이곳에만 머물러 있는 생명일 뿐이다. 다만 확실하게 말해줄 수 있는 건 오래전 너희들은 이곳에 발을 들여 놓은 적이 있다는 것뿐이다. 너희들은 그 사실을 모르는가?


아누와 짐리림은 ‘가이다’의 말을 믿을 수 없었지만 한편으로는 혼란이 일기도 했다. 만에 하나 앞서 간 탐사선 중 하나가 이러한 행성을 발견했다면 통보를 했을 테지만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보면 사실을 은폐하고 다른 일을 꾸몄을 지도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시간과 공간의 괴리로 인해 자신들이 탐사를 떠난 시점에서는 그러한 사실이 알려지지 않은 것일 런지도 몰랐다. 하지만 아누와 짐리림이 아는 한에서는 가이다가 있는 곳으로 탐사선을 보낸 적은 한번도 없었다.

-우리는 모르는 사실이다.

-그런가? 먼저 온 너희 하쉬행성의 생물들은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 발을 디뎠다. 하지만 그들은 얼마가지 못했어.

아누는 ‘가이다’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이는 않았다. 가이다는 다시 아누와 짐리림의 주위를 맴돌았다.

-그들이 뭘 하려고 하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그들이 발을 디딘 곳은 이곳의 생명들이 발을 디디기도 꺼려하는 곳이었지. 땅속의 열기가 치솟아 오르고 땅이 밑으로 꺼지는 곳이었으니까. 그들은 얼마 되지 않아 땅 밑에 묻히고 말았다.


-믿을 수 없는 말이야.

짐리림이 중얼거리자 ‘가이다’는 우뚝 걸음을 멈추고 보이지 짐리림의 코앞까지 얼굴을 쑥 내밀었다. 짐리림은 ‘가이다’가 내뿜는 더운 숨결을 느끼고서 흠칫 고개를 뒤로 젖혔다.


-너희들이 그곳까지 가서 땅을 파보면 금방 알 수 있다. 거기까지 새처럼 날아갈 수 있다면 말이다.

아누는 확인할 수 없는 사실에 대해서는 자신의 의문을 일단 뒤로 돌리기로 했다.

-가이다, 네가 원하는 것을 말해보지 않겠나? 우리가 할 말은 이제 없다. 너희들의 터전을 침범한 우리를 해치려고 나타난 것인가?

-너희들이 지금 우리 생명들을 해치고 있는 것들과는 다른 것들이라는 것쯤은 짐작하고 있었다. 무리에서 이탈한 너희들을 없애는 거야 언제든지 가능한 일이었고 실제로 눈이 먼 쪽은 그런 험한 꼴을 당할 뻔한 것 같더군.

짐리림은 문명조차 가지지 못한 생물에게 모욕을 당했다는 사실에 속으로 분한 마음이 잠깐 들었지만 ‘가이다’는 이조차 간파하고 있었다.

-눈이 먼 너는 우리를 경멸하는군. 이곳은 우리들이 가혹한 시련을 견디고 가꾸어 온 곳이다. 너희들에게 호락호락 내어주지는 않는다. 너희들이 여기서 살아가고 싶다면 당장 우리 생명들을 해치는 저들을 응징하라. 너희들에게 힘을 빌려주겠다. 저들을 데려가라.

-저들이 내 말을 따르겠는가? 난 이제 막 저들이 음악에 깊이 반응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뿐이다.

‘가이다’는 아누의 의문에 금방 답하지 않고 발걸음을 옮겨가며 조금씩 그들에게서 멀어져 가며 의미를 전달했다.

-너희들은 어차피 저들을 이용해 너희 동료들을 치려고 하지 않았나? 난 좀 더 빨리 길을 열어준 것뿐이다. 저들을 이끌려 하지 말고 서로 도와라. 음악과 춤으로 그들과 함께 대화하라. 그리고 조금이라도 빨리 너희들의 동료들이 꾸미고 있는 짓을 막아라. 그건 모두를 망치는 짓이다…….

‘가이다’는 이윽고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아누와 짐리림은 더 이상 그를 찾지 않고 조용히 ‘가이다’가 남긴 말의 의미를 곱씹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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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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