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소설] 머나먼 별을 보거든 - 82회

그 곳

등록 2006.09.28 16:42수정 2006.09.28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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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둑은 네팔의 수도 카르만두를 마지막으로 1년간에 걸친 세계 순방을 무사히 마쳤다. 그의 마지막 인터뷰는 에베레스트 산을 배경으로 비교적 조촐하게 진행되었다. 세계의 각 선진국들은 화려한 행사가 곁들어진 송별회를 준비하며 유치경쟁을 했었지만 마르둑은 그 모든 것을 거절했다.

“저는 그저 지구인들이 모든 것을 사랑하며 아끼는 마음을 가지기를 바랄 뿐입니다.”


마르둑은 지구인들에게 짤막한 평화의 메시지를 남긴 채 화려한 송별회도 마다하고 히말리야 산맥을 아래로 조용히 우주선을 타고 우주 저 멀리로 떠나갔다. 마르둑이 전에 간청했던 것과는 달리 아무런 여운 없이 떠나버리자 남현수의 마음 한구석에는 풀리지 않는 의문이 쌓이기 시작했다.

‘왜 마르둑은 구태여 나를 불러서 그런 짓을 했던 것일까?’

사실 남현수의 발언 자체는 놀림감이 될 정도였고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아도 될 일이었음에도 마르둑은 이를 놓치지 않았다. 마르둑과 함께 본 7만 년 전의 광경은 남현수가 학술적으로 추정하던 것과는 다른 것이었고, 외계인의 방문이라는 황당한 상황이 벌어진 터였다. 그렇다고 그 이야기 속에 일부 사람들이 주장하듯이 초고대 문명에 외계인이 관련되었다는 징조 따위는 없었다. 오직 호전적인 외계인과 원시적인 음악이나 웅얼거리는 고대인류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남현수는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마르둑이 무엇을 얘기하고자 하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마르둑 자신도 해답을 찾고 있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남현수는 그 말을 올곧게 믿을 수 없었다. 어쩐지 앞뒤가 맞지 않는 혼란스러운 얘기였기에 따로 함구령이 내려진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남현수는 마르둑을 만난 얘기를 누구에게도 하지 않았다. 이상한 것은 마르둑을 만난 사실을 알고 있을 정부 관계자들도 남현수를 불러 무슨 얘기가 오고 갔는지 물어보지 않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렇기에 외계인 마르둑이 떠난 지 석 달, 전 지구촌을 들썩이게 했던 외계인 열기가 서서히 가라앉을 무렵에 외교 보좌관 김건욱의 방문은 남현수에게는 뜻밖의 일이었다.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김건욱은 활짝 웃으며 남현수의 연구실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아니...... 저 어쩐 일로 오시게 되었습니까?”

김건욱은 자리에 앉지도 않은 채로 불쑥 봉투하나만을 내밀었다.

“이것을 전해드리러 왔습니다.”

남현수가 봉투를 열어보니 비행기표와 신용카드가 나왔다. 남현수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의미로 김건욱을 쳐다보았다.

“마르둑씨가 기다리고 계십니다.”

“뭐라고요?”

남현수는 그 말이 믿기지가 않아 자신도 모르게 크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김건욱은 빙긋 웃으면서 검지를 곧추세워 입술에 갖다대었다.

“아무 말씀하지 마시고 갔다 오시기 바랍니다. 자리를 비우는 동안의 일은 대학 측에 다 얘기해 놓았습니다. 국익을 위한 일이니 반드시 협조 부탁드립니다. 참, 그 신용카드는 내일부터 사용이 가능합니다. 지불은 저희 쪽에서 해드리는 것이니 필요하신 게 있으면 마음껏 쓰십시오.”

김건욱은 할 말을 끝낸 후 서둘러 문을 나서 버렸다. 남현수는 서둘러 뒤따라 나서며 김건욱을 불렀지만 김건욱은 뒤도 돌아다보지 않고 서둘러 모습을 감추고 말았다.

‘뭐 이런 경우가 있나? 국익? 그런 건 개나 갖다 주라고 하지.’

남현수는 김건욱이 주고 간 비행기표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출발은 사흘 뒤였고 인천공항에서 방콕 국제공항까지 간 후 나이로비 국제공항으로 가는 비행기로 환승을 해야 하는 만만치 않은 여정이었다. 남현수는 느닷없는 해외여행을 가이드 없이 가는 것이 불편하기도 했고 국익까지 들먹이며 마르둑을 만날 것을 은근히 강요하는 김건욱의 태도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남현수가 더욱 기분 나쁘게 여기는 점은 세간에는 벌서 고향별 하쉬로 돌아간 것으로 알려진 마르둑이 아직도 지구 어딘가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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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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