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봐 욕심 비우니까 저절로 채워지잖아"

짐 자전거에 얽힌 추억과 21단 새 자전거가 굴러 들어온 사연

등록 2006.11.01 14:44수정 2006.11.01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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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틈만 나면 자전거를 타는 우리집 아이들

틈만 나면 자전거를 타는 우리집 아이들 ⓒ 송성영


“인상아 니 친구한티 전화 왔다!”
“인효하고 자전거 타러 갔는데.”
“이렇게 어둑어둑해져 가는디 자전거는 무슨?”


밖은 어둠이 짙게 깔리기 시작했는데 자전거를 끌고 나간 녀석들이 여태 집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입니다. 요즘 두 녀석에게 한창 자전거 바람이 불었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곧장 자전거를 끌고 집 밖으로 나가 저녁이 다 돼서야 땀을 뻘뻘 흘리며 돌아옵니다. 엄마에게 붙들려 숙제에 매달리는 날에도 어둑어둑한 동네 길을 나설 정도입니다.

얼마 전까지 녀석들에게는 ‘꼬마 자전거’가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5년이 지난 ‘꼬마 자전거’는 하루가 다르게 커 가는 녀석들의 체구에 비해 너무나 왜소해졌습니다. 녀석들은 틈만 나면 자신들의 몸집에 맞는 새 자전거를 사달라고 졸라댔습니다.

중고 자전거라도 한 대 사줘야 할 것 같아 인터넷을 기웃거려 보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백만 원, 이백만 원대의 자전거도 있었던 것입니다. 혹시 십만 원대를 잘못 기재한 것이 아닌가 싶었는데 진짜로 그런 자전거가 있었습니다. 그동안 자동차에 의지해 살아가면서 자전거를 멀리해 왔던 것입니다.

처음 접한 짐자전거... 막걸리 통을 배달하던 친구

a 대전 어머니집 담벼락에 누군가 세워둔 짐자전거, 짐자전거 타고 막걸리 통을 실어왔던 어린시절을 떠오르게 했다.

대전 어머니집 담벼락에 누군가 세워둔 짐자전거, 짐자전거 타고 막걸리 통을 실어왔던 어린시절을 떠오르게 했다. ⓒ 송성영

내가 자전거를 처음 배운 것은 큰 아이 인효만 할 때였던 ‘국민학교’ 5학년 무렵이었습니다. 대전의 변두리인 고향 동네에 신작로가 마악 뚫리고 아직 시내버스가 들어오기 전이었습니다. 신작로에는 어쩌다 하루에 두세 차례 금산으로 향하는 직행버스가 주먹만한 돌멩이를 퉁겨가며 먼지 풀풀 날리고 지나칠 뿐 하루 종일 자동차 몇 대 구경하기 힘든 시절이었습니다.


내가 처음 접한 자전거는 짐 자전거였습니다. 그 시절 우리 동네에는 늘씬하게 잘 빠진 자전거는 거의 없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동네를 오락가락하는 거의 모든 자전거가 대부분 짐 자전거였습니다. 오래 되면 빵 껍질처럼 칠이 부풀어 올라오는 시커먼 짐 자전거뿐이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 집에도 무지막지하게 생긴 그 짐 자전거가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동네 아저씨들과 함께 그 묵직한 짐 자전거를 한 손으로 번쩍 들어올리는 힘 자랑의 용도로도 쓰이곤 했는데 어린 내가 끌고 다니기에는 너무나 벅찼습니다.


그런데 친구 녀석이 그걸 배우겠다고 낑낑거리며 그 무지막지하게 생긴 짐 자전거를 끌고 다니더니 어느 날 보란 듯이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를 내달리는 것이었습니다. 나보다 덩치가 작고 힘도 세지 않은 녀석이 말입니다. 그리고 몇 개월 후부터는 짐받이에 막걸리 통까지 턱하니 싣고 다니는 것이었습니다.

녀석의 막걸리 배달은 내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나는 평소 엄두도 못 냈던 짐 자전거를 팔목과 무릎이 짓까지도록 넘어지고, 자빠지고, 꼬꾸라지고 엎어져 가며 죽어라 끌고 다녔습니다. 그렇게 힘겹게 배워 나 역시 자전거 짐받이에 큼직한 막걸리 통을 싣고 다니는 ‘효자 노릇’을 할 수 있었습니다.

친구네 집과 우리 집은 껌이나 건빵, 오징어 땅콩을 파는 구멍가게 겸 막걸리 잔술을 파는 ‘왕대포 집’이기도 했습니다. 막걸리 양조장은 큰 시냇물을 사이 둔 건너 마을에 있었습니다. 사실 우리가 직접 막걸리 통을 싣고 올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한꺼번에 대여섯 개의 막걸리 통을 위태롭게 싣고 다니던 배달부 아저씨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쩌다 막걸리 배달부 아저씨의 사정이 좋지 않거나 갑작스럽게 막걸리를 담아 놓았던 항아리가 말끔하게 비워졌을 때, 때마침 아버지나 형이 집안에 없을 때 짐 자전거를 끌고 양조장으로 나서게 되는 것입니다. 막걸리 한 통을 싣고 집에 돌아오면 얼굴은 온통 땀과 흙먼지로 범벅되어 때 구정물이 줄줄 흐르곤 했습니다.

그 친구는 ‘자전거 면허’뿐만 아니라 훗날 자동차 운전면허증 역시 나보다 10여 년쯤은 먼저 땄습니다. 나는 그 친구와 어려서부터 결혼하기 전까지 친구들 중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는데 지금은 모 방송국의 중견 카메라맨이 되어 있습니다. 요즘은 인기 탤런트가 나오는 방송 드라마를 찍고 있다고 합니다.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지 않기 때문에 잘 모르겠지만 어쩌면 그 친구는 짐 자전거에 자신의 머리통보다도 몇 배로 큰 막걸리 통을 싣고 먼지 풀풀 날리는 비포장도로를 달렸던 어린 시절 자신의 모습을 촬영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내가 글을 통해 어린 시절을 회상하듯 그 친구는 자전거에 얽힌 우리들의 어린 시절을 카메라에 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굴러 들어온 21단 짜리 새자전거

a 우리동네 빡빡머리 세살짜리 영주 녀석도 덩달아 신이났다.

우리동네 빡빡머리 세살짜리 영주 녀석도 덩달아 신이났다. ⓒ 송성영

도시생활을 청산할 무렵 나는 우리 집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등하교 할 수 있는 산골마을을 상상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의 등하교 길은 위험하기 짝이 없습니다. 녀석들이 동네 길에서 벗어나 큰 도로로 접어들어야 비로소 학교로 가는 길이 나오는데 그 도로는 자동차 전용도로나 다름없습니다.

자동차들이 씽씽 내달리는 차도, 바로 옆에 폭 좁은 인도가 있긴 하지만 사람이 걷기조차 위태롭습니다. 면 소재지로 접어들면 더욱 더 위험천만합니다. 학교 앞까지 상가들로 길게 늘어선 2차선 도로에는 인도조차 실종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본래 인도가 있었는데 주변 상가들이 야금야금 먹어 치운 것이 분명했습니다. 땅값 비싼 도시도 아니고 널리고 널린 게 땅덩어리인데 도대체 무엇 때문에 자전거도로는 고사하고 인도조차 없이 숨통 막히게 살아가는지 참말로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생각해 보면 자동차 몇 대 구경하기조차 힘들었던 우리의 어린 시절 울퉁불퉁한 자갈길, 비포장도로가 훨씬 더 안전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 집 아이들은 도시로 나오기만 하면 여전히 졸라댔습니다.

“자전거 타고 학교 가게 새 자전거 사줘.”
“학교는 위험해서 안돼! 그리고 뭐든지 새 것을 사게 되면 아빠는 그만큼 힘들게 일해서 돈을 벌어야 하고, 너희들은 그만큼 아빠하고 놀 수 없어, 또 자꾸만 새것을 구입하게 되면 그만큼 자연이 파괴되는 겨, 그리고 세상에 새 것이라는 게 없는 겨, 뭐든지 새것을 사용하는 바로 그 순간부터 헌 것이 돼잖어, 조그만 기다려봐 틈실한 중고 자전거 알아보고 있으니께.”

자신들의 체형에 맞는 새 자전거를 사달라고 졸라대는 우리 집 아이들에게 막걸리 통을 싣고 짐 자전거를 탔던 아빠의 어린 시절을 얘기해줬지만 쉽게 먹혀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녀석들이 대전 할머니 댁에서 하룻밤을 묵고 오면서 싹 달라졌습니다. 더 이상 새 자전거 타령을 하지 않았습니다.

“아빠 새 자전거 없어두 돼, 중고 자전거 있으면 그거 사줘!”
“징말?, 짜식들 인저 철들었구먼.”

녀석들은 할머니 댁에 오면 집에서는 별 관심을 갖지 않는 텔레비전을 실컷 보곤 하는데 그날 인도의 인력거, ‘릭샤’를 끄는 사람들의 애환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보게 된 것입니다. 다 낡은 인력거를 생명줄처럼 맨발로 끌고 다니며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는 인력꾼들의 삶을 눈물 나게 본 것입니다. 그걸 가슴 시리게 보고 나서 녀석들은 새 자전거를 사 달라고 졸라대는 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를 깨닫게 된 모양입니다.

할머니 댁을 다녀온 그날 밤, 대전에서 고종사촌 형님으로부터 뜻하지 않은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누가 자전거를 줬는데 우리 집 아이들은 관심이 없는 것 같아서… 필요하면 가져 가.”

그 다음날, 고종사촌 형님에게 ‘누가 줬다는 자전거’를 가져왔습니다. 포장도 뜯지 않은 21단짜리 새 자전거였습니다. 나는 자전거를 조립하면서 눈이 휘둥그레진 아이들의 들뜬 마음을 진정시키며 기분 좋게 한마디 던졌습니다.

“거봐라 니들이 욕심을 비우니까 저절로 채워지잖아!”

덧붙이는 글 | 생태 전문 격월간지 <자연과 생태> 11월-12월호에 송고한 원고를 수정해서 올립니다.

덧붙이는 글 생태 전문 격월간지 <자연과 생태> 11월-12월호에 송고한 원고를 수정해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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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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