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소나기 피할 처마가 필요했다

[김종배의 뉴스가이드] 6자회담은 '위기관리' 주유소

등록 2006.11.01 09:16수정 2006.11.01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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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2단계 제4차 6자회담 이레째인 2005년 9월 19일 낮 댜오위타이에서 전체회의가 열리고 있는 모습.

2단계 제4차 6자회담 이레째인 2005년 9월 19일 낮 댜오위타이에서 전체회의가 열리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성연재


이 점부터 명확히 하자. 6자회담은 북핵 해결장일까? 아니다.

6자회담은 주유소다. 북한이나 미국 모두 제 맘대로 내달리다가 동력이 달리면 들르는 곳이 6자회담이었다. 북한은 핵보유를 선언하고, 핵실험을 강행해 위기가 고조되면 6자회담장을 찾았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9·19 공동선언이 채택된 지 하루 만에 북한의 금융계좌 동결 조치를 내놔 판을 깨고, 대북 제재조치를 선도하다가 벽에 막히면 6자회담을 강조하곤 했다.

6자회담은 해결의 장이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위기관리 창구다. 상황이 뇌사상태로 치달을 기미가 보여야 열리는 산소 호흡실이다.

이 점을 전제해 놓고 북·미·중의 6자회담 재개 합의를 대하면 뒷길이 대충 보인다. 북한이나 미국 모두 위기를 관리할 때가 온 것이다.

부시 행정부의 처지는 다급했다. 중간선거를 앞두고 민주당에 계속 밀리고 있었다. 가뜩이나 상황이 좋지 않은 터에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했다. 당연히 미국 내에서 대북정책 실패 책임론이 제기됐고 부시 행정부는 더더욱 궁지에 몰렸다.

유엔의 대북제재 결의를 끌어내긴 했지만 그것으로 북한을 굴복시키지 못할 것이란 점은 미국의 여야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다.


소나기를 피할 처마가 필요했다. 그런 점에서 6자회담은 안성맞춤이다. 제재 카드로 북한을 6자회담에 끌어냈다고,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완전히 실패한 건 아니라고 홍보할 수 있는 거리로 손색이 없다.

똑같은 이유로 북한도 6자회담에 복귀할 필요가 있었다. 미국의 대북정책 분수령은 두 개다. 하나는 중간선거이고, 다른 하나는 대선이다. 발등의 불은 역시 중간선거다. 미국 내에서 일고 있는 대북정책 실패 책임론에 힘을 실어줘 부시 행정부를 압박해야 하고, 다른 한편으론 부시 행정부의 퇴로를 열어줘야 한다.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 변화가 굴복이 아니라 조정의 결과인 것처럼 꾸며야 실리를 얻을 수 있다.


다른 곳에서도 실리를 챙겨야 한다.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한다고 해서 유엔의 대북제재가 중단되지는 않는다. 제재 이유는 6자회담 복귀 거부가 아니라 핵실험이다. 상황이 바뀌는 건 없다. 미국도 그렇게 말하고 있다.

이 상황에 정면으로 맞설 이유가 없다. 틈새를 벌리면 된다. 중국이다. 중국만 잡으면 유엔의 제재는 무력화되고 북한의 버티기 심줄은 질겨진다.

방법은 위신을 세워주는 것이다. 중국 주도로 6자회담이 재개되는 모양새를 연출해주면 된다. 6자회담 재개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부시 미 대통령은 중국에 감사하다고 했고 중국은 표정관리에 나섰다. 이제 중국이 북한에 성의를 보일 차례다.

중국이 움직이면 남한이 따라 움직일 수 있다. 중국이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안 내용을 '독자적으로' 해석해 제재 강도를 낮추면 남한도 묻어갈 수 있다.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하기로 한 마당에 남한이 굳이 앞장서서 대치구도를 강화할 이유도, 그럴 필요도 없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내면 된다.

6자회담 재개는 새로운 시작일 뿐이라는 말은 그래서 나온다. 북한이나 미국, 더 나아가 중국이나 남한 모두 북핵 문제를 풀 실마리를 찾았기 때문에 6자회담을 재개하는 게 아니다. 북핵 문제가 더 꼬이는 걸 막기 위해 재개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현상 유지, 위기 심화 방지가 6자회담 재개 이유다.

마지막 계산이 남았다. 6자회담 재개로 현상이 유지되면 누가 득을 볼까? 북한이다. 유지되는 현상 한 가운데에 북한 핵무기가 들어서게 된다. 미국은 인정할 수 없다고 손사래 치고 있지만 사정이 그리 간단치 않다.

6자회담장에 앉는 순간 미국은 딜레마에 빠진다. '불가역적인 방법으로' 폐기해야 할 북한 대량살상무기에 당연히 핵무기를 포함시켜야 하는데, 그걸 입에 올리는 순간 핵 보유국 지위를 사실상 인정하는 결과를 빚는다.

북·미·중은 6자회담을 '조속히' 재개하기로 했지만 기약하기 힘들다. 미국에선 빨라야 11월 말, 어쩌면 12월이 될지도 모른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이유는 뻔하다. 6자회담장에 앉는 순간 곤혹스러워지는데 어쩌겠는가. 가급적 중간선거 전에는 6자회담 재개 사실 자체만 부각시키는 게 좋다.

북한으로선 급할 게 없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면 시간도 벌고 여지도 넓힐 수 있다. 미국 대선이 끝날 때까지 위기가 심화되는 것을 방지하면서, 미국의 차기 정부가 북한의 핵 보유국 지위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여건을 조성할 수 있다.

시작단계부터 삐걱 거릴 6자회담이다. 속도와 성과를 기대하는 건 무리다. 소걸음은 고사하고 게걸음을 걸으며 느릿느릿 진행될 것이다. 가끔 널도 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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